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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 로봇서 3D프린팅까지...IT로 무장하는 글로벌 제조업
산업 기업 2018.01.23 17:10:28전 세계적으로 제조업에 정보기술(IT)을 결합한 산업 융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성장동력 산업 찾기에 나선 세계적 기업들이 기존의 주력 산업에 IT를 접목해 파급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제조업 혁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다. IT 융합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지난 2010년 1조900억달러에서 2020년 3조7,800억달러로 연평균 13% 성장이 예상된다. IT 기술 기반의 혁신은 제조업을 재도약시키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를 증빙하듯 미국·일본·독일 등 최근 주요 국가들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제조업 간 융합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가 차원의 신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제조업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지만 양질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분위기다. 가능한 모든 산업에 스마트공장과 3차원(3D)프린팅 기술, 가상현실(VR) 기술 등을 적용하려 노력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오토바이 제조사 할리데이비슨은 VR 고글을 끼고 구매자가 직접 원하는 차량을 만들면 그것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스마트공장 시스템을 도입한 후 오토바이 한 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21일에서 6시간으로 줄였다. 일본은 제조업용 로봇을 개발·상용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본의 야스카와전기 회사 공장에서는 양팔 로봇이 박스 포장을 열고 내용물을 꺼내는 일련의 로봇 작업을 진행한다. 야스카와전기는 로봇의 팔 끝에 레이저 센서, 힘 센서를 부착해 조작 능력을 향상시켜 고난도의 작업에 맞도록 지속적인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일본의 산업용 로봇 연간 출하액은 3,400억엔으로 세계시장 점유율 약 50%에 달한다. 가동 로봇 수도 약 30만대로 세계 1위다. 이 같은 ‘로봇화 전략’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쟁력을 주도할 일본의 대표 정책으로 꼽힌다. 중국은 제조업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내세운 ‘중국제조2025’ 정책을 내놨다. 핵심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10대 산업은 △차세대 IT △고급 디지털제어 공작기계 및 로봇 △항공우주설비 △해양공정설비 및 첨단선박 △선진 궤도 교통설비 △에너지 절약 및 신재생에너지 자동차 △전력 설비 △농업기계 설비 △신소재 △바이오의약 및 고성능 의료기계다. KOTRA 난징무역관에 따르면 중국은 전사적자원관리(ERP)에서부터 제품수명주기관리(PLM), 공급망관리(SCM), 고객관계관리(CRM) 등 여러 관리 소프트웨어를 IT화하고 있다. 자본을 앞세워 미국·독일 등 세계 유수의 기술기업들과 제휴를 맺으며 제조업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5년 내에 중국 자체 기술력이 세계 상위권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 기업들도 자동차와 IT, 위치정보와 반도체, 센서, 제어 기술 등을 융합하며 제조업 혁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성장 전망이 밝다. 성하경 전자부품연구원 본부장은 “IT와 전통 산업을 융합하면 기존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산업이 탄생할 수 있다”며 “ICT의 발전으로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가능해지고 제조업 연관 서비스 활동 비중이 증가함에 따라 ICT 융합을 강화하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조선·건설 등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이 IT와 융합한다면 생산성 증가와 고용 창출은 물론 수출 유발 효과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 생산성 저하 등 고질적 병폐에 발목...2년 후엔 印에도 밀릴 판
산업 기업 2018.01.23 15:23:41세계적인 컨설팅·회계 기업 딜로이트와 미국 경쟁력위원회는 매년 각국의 제조업 경쟁력 순위를 내놓는다. 전 세계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가 지표로 쓰인다. 이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 중국·미국·독일·일본에 이어 5위에 올랐다. 세계적인 제조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하지만 딜로이트와 미 경쟁력위원회는 오는 2020년에는 한국이 5위 자리를 신흥 강국 인도에 내주고 6위로 밀릴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함께 내놓았다. 미국과 독일·일본 같은 전통적인 제조 강국들이 견고하게 제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오고 있다. 이미 미국·독일·일본 ‘제조 3강(强)’ 체제는 중국의 급부상으로 깨진 지 오래다. 주요국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제조혁신을 시도하는 가운데 노동 생산성 저하 등 고질적인 병폐에 발목 잡혀 고전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제조업 변방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1~2015년 우리나라의 13대 주요 수출품목 가운데 자동차를 필두로 철강·선박·디스플레이 등 10개 품목의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이 일제히 하락했다. 디스플레이가 -4.7%포인트로 하락 폭이 가장 컸고 선박(-3.3%포인트), 자동차(-0.5%포인트), 석유제품(-0.4%포인트)도 점유율이 하락했다. 이런 배경에는 ‘세계의 제조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이 있다. 13대 품목 전체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점유율은 0.4%포인트 하락했지만 중국은 3.1%포인트 늘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중국이 흡수한 결과다. 수출 점유율 하락에서 볼 수 있듯 반도체와 같은 기술장벽이 높은 첨단 정보기술(IT) 분야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업종이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문병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의 기술 추격이 워낙 빠르다 보니 국내 산업계가 느끼는 위기감이 크다”면서 “세계 시장에서 중국과의 수출 경합도가 올라가는 가운데 조선과 철강 같은 분야에서는 이미 경쟁력이 역전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이 같은 선전에는 정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은 사실상 모든 산업 분야에서 ‘굴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 국무원이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가 대표적이다. 2025년까지 로봇과 자율주행 등 10개 미래 핵심산업에서 대표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게 요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은 핵심인재 육성과 연구개발(R&D), 글로벌 시장 진출이 모두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여기에 막대한 자금 지원까지 뒷받침되고 있어 시장에서 영향력이 더 크다”고 우려했다. 중국에 ‘중국제조 2025’가 있다면 일본에는 2016년 발표한 ‘일본 재흥전략’이 있다. 2020년까지 명목 국내총생산(GDP) 600조엔 달성을 위한 액션플랜 성격으로 아베 신조 정권 출범과 동시에 야심 차게 추진되고 있는 전략이다. 일본은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자율주행과 첨단 로봇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다는 전략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첨단기술을 통해 과거 영광 재연에 나선 것이다.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 독일은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치고 올라오며 추격자들을 따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찌감치 제조 방식에 데이터 분석 등 스마트 플랫폼을 적용한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추구하며 녹슬지 않은 제조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파격적인 세(稅) 감면혜택 등을 제공하며 세계 각지에 나가 있던 자국 제조기업들을 불러들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쇠락한 미국 제조업을 대표하던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 등 ‘러스트 벨트’는 최근 활기를 되찾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조 선진국들이 정부의 지원하에 민간 중심으로 제조업 부활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한국 기업들도 한동안 소홀했던 고부가 첨단기술 역량을 키우려는 노력이 있어야 제조 강국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젊은층 발길 끊긴 중소제조업체...수출 중심으로 매출구조 바꿔야
산업 기업 2018.01.23 15:23:36부산의 한 임가공업체에서 6개월째 근무 중인 A(28)씨는 최근 진지하게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계약대로라면 평일 근무는 오전8시부터 시작하지만 기계를 예열해두라는 지시에 30분 먼저 공장에 나와야 한다. 일이 몰릴 때면 갑자기 특근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집에서 쉬다가도 공장으로 헐레벌떡 뛰어오는 일도 부지기수다.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일하고도 월급통장에 찍히는 돈은 180만원이 채 안 된다. A씨는 “특근을 해도 추가 수당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 잡히는 일이 없어 당장은 어렵겠지만 기회가 되면 아예 다른 직종으로 옮기려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중소제조업체의 근로조건에 진절머리를 내며 발길을 끊는 청년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 수준, 근로시간, 작업환경, 복리후생환경 등 근로조건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 호감도는 46.8점으로 지난 2016년의 49.0보다 더 떨어져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가장 큰 원인이다. 열악한 현실에 처한 중소업체가 당장 손에 잡히는 인건비 등을 쥐어짜다 생긴 결과라는 분석이다. 제조업체 사장들은 원도급업체의 납품단가를 맞추다 보면 적정 이윤을 취하기 어렵다고 항변한다. 공장을 돌려야 하는데 납품업체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단가를 낮추려 하니 근로조건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호소다. 실제 중소제조업체 중 하도급 거래 기업의 비중은 50%에 육박하지만 10곳 중 4곳이 적정한 수준의 납품단가를 받지 못한다. 제값을 받지 못하면 영업이익률이 떨어져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B업체의 박모 사장은 지난해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판결이 난 당일 납품단가를 10% 내리라는 공문을 받았다. 이 업체는 기아차와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업체에 납품하는 2차 협력사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데 쓰일 반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박 사장은 “기아차가 패소하면서부터 그 부담이 우리처럼 작은 작업장에까지 전가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현실이 됐다”며 허탈해했다. 원청의 일방적인 요구에 휘둘리는 곳은 B업체뿐만이 아니다. B사와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다른 2차 협력업체들도 납품단가 인하 요구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1차 협력업체의 경우 납품받아야 할 물량을 쪼개 작업자 10인 미만의 여러 2차 협력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하는 곳은 안산 말고도 서울이나 시흥에도 있다”며 “우리만 콕 찍어 공문을 내려보낸 것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원청-1차 제조업체-2차 제조업체’로 이어지는 수직적 구조에만 의존하면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제조업체의 경우 거래 단계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기술경쟁력이 떨어진다. 1차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2차 협력업체가 단가 인하 요구를 거절한다면 다른 업체를 통해 손쉽게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2·3차 협력업체들 대부분이 납품할 물량을 미리 만들어놓은 탓에 단가 인하 요구에 날을 세우기도 어렵다. 2·3차 협력업체들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수요를 예상한 다음 물량을 사전에 대량으로 생산해둔다. 이 때문에 거래가 갑자기 끊기면 생산비를 회수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B업체 관계자는 “10년 넘게 한 곳하고만 거래해 당장 다른 업체에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계약이 끊기는 순간 생산해둔 제품은 고철 덩어리가 된다”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업체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국내 대기업 납품 비중이 50%를 웃도는 매출구조를 수출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나 석유화학을 제외한 대기업 성장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신규 일자리와 부가가치 창출을 대기업에 의지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업체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원해 독자적 기술력을 갖추게 하는 한편 중기 수출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성장 의욕 꺾는 규제] '이념의 틀' 갇힌 노사정책 ..반시장 구도에 기업 해외로
산업 기업 2018.01.21 17:17:44“각종 규제에 이념이 녹아 들어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대기업은 빈부격차의 주범으로 몰려 규제 완화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이들을 위해 설계된 정책들이라는 게 시장 현실과 유리된 것이 많아 오히려 중소기업에 독이 되고 있어요.” 국내 대기업의 1차 하청업체로 15년간 경영을 이어온 B중소기업 사장의 진단은 규제정책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정부 정책 때문에 시장 부작용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B사도 법인세·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피해가 예상된다. 우선 대기업이 올해 물량의 납품단가를 10% 낮췄다. 원청 대기업의 과세표준이 2,000억원을 넘어 이들이 내야 하는 법인세율이 22%에서 25%로 뛰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도 가뜩이나 힘겨운 이 기업의 허리를 휘게 하고 있다. 4대 보험을 포함해 1인당 70만~80만원 정도 비용이 더 들어 한 달에 인건비만 2,000만원 이상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설상가상 원재료를 사오던 국내 대기업도 최근 가격을 올렸다. 인건비 인상액은 지난해의 두 배로 커졌는데 원재료 비용은 뛰고 납품단가는 되레 낮아진 셈이다. 이 회사 사장은 “현장을 모르고 이념을 잣대로 한 규제는 기업을 멍들게 만든다”며 “부의 편중 문제는 단순히 노사, 대·중소기업 간 대립 구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업이 혁신에 나설 수 있도록 시대착오적인 노동시장 보호막을 없애야 하는데 정규직화 등으로 고용 유연성은 더 나빠지고 기업 부담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사업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내놓은 제조업 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지난해 2·4분기만 해도 99를 기록했지만 올 1·4분기는 92로 떨어졌다. 그만큼 경기가 위축될 것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는 얘기다. 규제가 시장에서 약자를 도와주기 위한 방편처럼 활용되면서 산업발전이 지체되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적지 않다. 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다수 정책이 어려움에 봉착한 좀비기업의 연명을 돕도록 설계돼 있어 잠재력이 높은 어린 기업이 성장궤도에 들어서는 것 자체를 막고 있다”며 “이해관계자의 이권 관철로 규제 완화가 안 돼 의료산업 등 서비스 분야는 발전 자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시장적 정책의 여파로 해외로 눈을 돌리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300억달러 수준이던 해외투자 금액은 최근 500억달러까지 뛰었다.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에 투자한 금액(229억달러)의 두 배 수준이다. 글로벌화 진전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을 밀어붙인 탓이 크다는 게 기업들의 목소리다. 경기도에서 센서를 만들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수출하는 C기업도 최근 생산시설 이전을 고민하고 있다. C기업은 이미 인도네시아에 생산공장이 있는데 한국 공장의 물량을 대폭 줄이고 인도네시아 공장을 증설하거나 베트남에 신설법인을 두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더해 법정 근로시간이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면 이를 감당할 방도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C기업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인도네시아 공장 직원 한 사람의 생산성이 한국 공장 서너 명은 된다”며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중심으로 생산공장을 재편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C기업이 예측하는 베트남의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1~4구역 평균)은 한국보다 9.9%포인트나 낮은 6.5%다. 법인세도 4년간 완전 면제되고 이후 9년간은 50%가 감면돼 조건이 좋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유턴 기업)도 줄고 있다. 2014년 22곳에서 지난해 3곳(7월 기준)으로 줄었다. 기업들은 전반적인 고비용 구조, 인력수급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국내 복귀를 꺼린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00년대 초 국내 설비투자액의 10%가 해외투자로 나갔지만 최근에는 이 비율이 30%까지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경직된 고용시장 등을 개혁하지 않으면 기업의 국내 외면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양금승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하고 법인세를 올려 경기와 고용이 살아날 것 같으면 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이 반대로 하고 있겠느냐”며 “한쪽만 보고 마련한 기업 정책의 피해는 결국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과 그 노동자들이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성장 의욕 꺾는 규제] '핀테크' 외치지만...세계 100대 기업 중 韓은 달랑 하나
경제 · 금융 금융가 2018.01.21 17:13:39정보기술(IT) 강국을 자랑하는 한국의 지난해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서비스) 산업은 지난해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KPMG가 선정한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에 간편송금 ‘토스(toss)’를 서비스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국내 핀테크 기업 중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국내에서 핀테크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지난 2014년 이후 3년 만에 겨우 이룬 성과였다. 이전까지는 우리나라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러시아·칠레·필리핀 기업들이 줄줄이 선정됐지만 한국 기업은 전무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명단에 추가로 진입할 국내 업체는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토스의 경우 기존 전자금융업의 테두리 안에서 간편송금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해 플랫폼 회사로 우뚝 섰지만 아예 새로운 분야에서 핀테크 업체가 등장해 사업을 일궈내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바로 정부 규제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자본금 규제다. 정부는 지난해 소액 해외송금업을 제도화하면서 전문업체에 최소 10억원의 자본금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기존에 소액 해외송금을 하고 있던 업체들은 본업을 미룬 채 투자 유치에 나서야 했고 그 사이 자본금이 많은 신규 업체들부터 인가를 받기 시작했다. 금융권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회사가 기존 금융사에 준하는 정도의 자본금이나 보안 수준을 갖추는 게 가능하느냐”며 “역설적으로 가상화폐거래소도 금융권에 준하는 규제를 받았으면 이렇게 커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치’가 사실상 고착화된 금융 분야에서 만연한 기업들의 정부 눈치 보기도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에 한몫을 하고 있다. 핀테크 업체가 새로운 분야의 기술을 개발해 금융사에 들고 가면 금융당국에서 문제가 없다고 보는지 확인하라고 요구하는 게 관행이라는 것이다. 이때 금융당국은 신기술을 기존 법령에 근거해 해석함으로써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협업이 무산되기 일쑤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핀테크는 독자적인 영역도 개척하지만 기존 금융사의 업무를 효율화하는 측면도 있는데 협업을 하게 되면 금융사가 모든 책임을 떠맡는 구조”라며 “금융사 입장에서는 아직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은 실험일 따름인데 문제 발생에 따른 책임을 크게 진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선제적으로 예측이 가능한 투명한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예컨대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먼저 그에 알맞은 법적 기준 등을 마련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규제 샌드박스(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주는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법률 전문가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불확실한 규제 환경 때문에 법률 자문에 비용은 물론 시간도 엄청나게 쓰고 있다”며 “당장 포괄적인 사후 규제 방식을 도입할 수 없다면 개별 기업의 애로를 파악해 적극적으로 조치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신산업 가속페달 '팀재팬'] 애완로봇 등 AI강국 뽐내고...블록체인도 생활속으로
산업 IT 2018.01.21 16:53:43지난 11일 일본 도쿄 시부야의 모디쇼핑몰. 소니의 인공지능(AI) 애완견 로봇 ‘아이보(Aibo·짝꿍)’ 출시 행사는 ‘로봇 강국’인 일본의 단면을 보여줬다. 아이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눈을 마주치면 깜빡거리기도 하고 칭찬하거나 쓰다듬으면 귀를 쫑긋 세우며 머리와 꼬리를 흔들고 옆으로 드러누웠다. 멍멍 짖는 것은 물론 두 발로 서기도 하고 입에 손가락을 대면 깨물기도 했다. 로봇 느낌이 들지만 28개의 관절을 활용해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샤신 도테 구다사이(사진 찍어 줘)’라고 말하면 카메라로 촬영해 ‘마이 아이보 앱’에서 볼 수도 있다. 소니 관계자는 “눈으로 물체를 파악하고 소리로 듣고 주인을 알아보는 훈련을 한다”며 “정보를 클라우드에 보내 다른 아이보가 파악한 것도 습득, 지능이 나아지게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소니가 1999년 아이보를 처음 선보였다가 경영난으로 2006년 단종한 뒤 이번에 AI를 탑재하며 컴백한 것은 일본 경제의 힘찬 부활의 날갯짓을 보여주는 듯했다. 디지털 시대 들어 삼성전자에 밀렸던 소니가 기술개발을 통해 잇따라 신제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도 지난해 11월 관절 32개와 10개의 손가락을 가진 원격 조정 로봇을 내놓는 등 일본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로봇에서 미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역시 4차 산업혁명의 총아인 자율주행차에서도 닛산·도요타 등 자동차사는 물론 ZMP 등 벤처기업도 가속도를 내고 있다. ZMP는 지난달 도쿄시내에서 시속 20㎞의 속도로 무인주행에 성공했고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공항에서 경기장까지 운행할 계획이다. 일본의 4차 산업혁명 열기는 신주쿠의 가전제품 매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0일 방문한 신주쿠의 8층짜리 가전 프랜차이즈 매장인 비크 카메라(Bic Camera)에서는 비트코인이 결제수단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일반 전자제품은 물론 드론과 AI 안마기 등도 즐비했는데 비트코인에 붙던 8% 소비세 면세 혜택에 5% 추가 할인 혜택을 준다는 안내판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일부 고객이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해 비트코인으로 계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점원인 나카무라(中村)씨는 “59개 비크 카메라 점포에서 얼마 전부터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살 수 있게 됐다”며 “할인 혜택까지 있어 점차 이용자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비크 카메라 외에도 코지마·소프맵 등의 가전매장과 마루이 등 백화점 체인에서도 비트코인 결제가 이뤄지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식당, 옷가게, 호텔 등 비트코인을 받는 곳만 1만개 이상에 달할 정도다. 시세 변동이 심하고 거래 완료에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홍보 효과도 있고 중국 관광객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14년 거주했던 이관섭 블록체인연구소 대표는 “일본이 지하철에서 별도 카드를 쓰거나 현금을 쓸 경우 환승할 때 재구매해야 하는 등 정보기술이 한국보다 뒤떨어진 측면이 있다”면서도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 등 신산업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에서 기회가 있다고 보고 앞서 도입하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은 블록체인 기술의 금융, 공공행정, 물류 시스템 적용을 확대하는 등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1990년대 초반 거품이 꺼진 후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일본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서고 있다. 자동화 확산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지난해 11월 2.7%로 1993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2011년 이후 5년 연속 적자였던 무역수지도 2016년부터 2년 연속 흑자로 돌아섰다. 일본 정부는 최근 2020년까지 AI와 사물인터넷(IoT) 기업들에 현행 30%인 법인세를 20%로 대폭 낮추겠다고 밝혔다. “일본이 강점을 갖는 AI와 로봇에서 규제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 아베 신조 총리는 5년 넘게 저금리 기조와 엔저, 법인세율 인하 등을 추진하며 규제 개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새로운 제품·서비스가 출시될 때 기존 규제를 면제하도록 했다. 앞서 2013년에는 도쿄·오사카·오키나와 등 17곳을 차례로 국가전략특구로 지정해 드론·원격의료 등 신사업을 자유롭게 추진하도록 했다. 기업들도 합종연횡을 통한 ‘팀(Team) 재팬’ 구성으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 “에너지와 온난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며 도요타·닛산·혼다 등 11개 연합군이 오는 2030년까지 수소충전소를 900개가량 설치하기로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최재용 4차산업혁명연구원장은 “일본이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을 기울인 시점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AI·IoT·로봇·자율주행차·핀테크 등에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한발 앞서가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주도권 경쟁에서 일본은 물론 중국에도 밀리는 우리나라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해외 현장에 나가 트렌드를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고광본선임기자 박홍용기자 kbgo@@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신산업 가속페달 '팀재팬'] M&A때 파격 혜택...日제약사 덩치 키워 글로벌 도약
산업 IT 2018.01.21 16:48:14300여개 제약사에 매출 80조원(일본) Vs. 600여개 제약사에 매출 20조원(한국) 일본 제약 산업은 규제 개혁으로 수혜를 가장 많이 본 분야로 꼽힌다. 한국보다 인구가 2.5배 많은 일본이 제약 산업에서 4배까지 격차를 벌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1990년대 중반 도입된 산업재생법을 바탕으로 산업생태계를 새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는 1,500여개에 달하는 제약사가 난립했고 신약 개발이 아닌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 출시에 사활을 걸었다. 경쟁사보다 점유율을 늘리려는 마케팅 경쟁은 불법 리베이트로 이어졌고 일본 제약 산업은 급격하게 경쟁력을 잃어갔다. 무리한 경쟁이 수익성 악화를 낳고 이것이 다시 연구개발(R&D) 투자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일본 정부는 불법 리베이트를 처벌하는 ‘극약 처방’ 대신 제약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생태계 조성’을 표방하며 산업재생법을 도입했다. 신약 개발에 나서거나 인수합병(M&A)을 단행한 제약사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비를 지원한 것이 대표적이다. 내수 시장을 둘러싼 출혈 경쟁에 나섰던 일본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M&A에 눈을 돌렸다. 곧이어 다케다·다이이찌산쿄·아스텔라스·교와하코기린·다나베미쓰비시 등의 대형 제약사가 탄생했고 자연스레 영세 제약사들이 퇴출돼 10여년 만에 일본 제약사는 300여개로 줄었다. 덩치를 키운 일본 제약사들은 글로벌 제약사를 상대로 M&A에 나섰다. 일본 최대 제약사로 꼽히는 다케다는 2005년 미국 바이오벤처 시릭스를 2억7,000만달러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08년 88억달러에 미국 바이오 기업 밀레니엄을 품에 안았다. 지난해 초에는 백혈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미국 아리아드까지 52억달러에 인수해 글로벌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케다의 연매출은 지난 2015년 기준 161억달러로 글로벌 19위다. 다케다를 비롯해 매년 글로벌 50대 제약 기업에 이름을 올리는 일본 제약사도 열 곳에 달한다. 국내 최대 제약사인 유한양행의 매출이 1조5,000억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격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신약 개발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일본 제약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급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 글로벌 의약품 상위 100개 중 11개가 일본 제약사의 제품이다. 80조원에 달하는 일본 제약 산업은 단일 국가로는 미국과 중국에 이은 글로벌 3위다. 공격적인 M&A로 신약 개발을 앞당기고 신약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다시 R&D에 투자하는 선순환구조가 일본 제약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이라는 얘기다. 아키라 가와하라 일본제약공업협회 글로벌담당 이사는 “한국 제약사들도 최근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엇비슷한 제품을 갖고 가격 경쟁에 주력한다는 점에서 출혈 경쟁을 일삼았던 1990년대 일본 제약 시장과 흡사하다”며 “일본 제약 산업이 단기간에 글로벌 무대에서 통하는 역량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규제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신약 개발을 위한 생태계 조성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쿄=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 '경직된 정규직화'에 코너몰린 기업 … 결국은 일자리 축소
사회 사회일반 2018.01.08 16:57:58새해 첫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31일 한국GM 부평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 65명은 1월1일부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한국GM 부평공장이 일부 사내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면서 해당 업체에 소속돼 있던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지회는 한국GM이 비정규직이 맡고 있는 일을 정규직에게 돌리는 ‘인소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GM의 명분은 경영 위기 등이다. 지난 2014년 자본잠식상태에 빠진 한국GM은 그해 1,192억원, 2015년 7,048억원, 2016년 5,3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3년간 약 1조4,000억원에 달하는 누적적자를 냈다. 경영난에 따른 사실상의 구조조정이 비정규직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해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극도로 낮기 때문이다. 인건비를 줄여 경영 위기를 타개하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진 노동조합의 울타리 안에 있는 정규직보다 상대적으로 해고가 손쉬운 비정규직을 내칠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노동 유연화 없는 비정규직 철폐 인건비 감당 어려워 해고 불보듯 되레 고용 안정성 저해요인으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을 외친다. 친(親)노동 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대대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요구와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후 정부는 정규직 전환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간 부문의 비정규직 사용도 ‘사용사유 제한’ 제도 도입을 통해 극도로 제한할 방침이다. 사용사유 제한은 계절적인 인력수요 발생, 육아·출산휴가 시 결원 보충 등 법령에 열거되는 몇몇 이유에 해당하지 않을 때는 원천적으로 비정규직을 쓸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지지 기반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나 정규직 전환으로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고 일자리의 질적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 정규직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정규직 고용보호법제지수는 2.37이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치인 2.04보다 0.33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고용보호법제지수는 값이 높을수록 해고 등이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0.26)·캐나다(0.92)·영국(1.10)·일본(1.37) 등과 비교하면 앞 자릿수부터가 다르다. 한국보다 지수가 높은 국가는 독일(2.68)·이탈리아(2.68)·프랑스(2.38) 등 몇 개 나라밖에 없다. 이처럼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지 않은 채 비정규직을 없애는 정책은 노동시장의 수요자인 기업을 코너로 몰 수 있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기업이 도산하게 되면 결국 노동시장의 공급자인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20여년 전 외환위기 때 많은 근로자가 실제로 겪어야 했던 일이다. 기업이 해외로 공장 등을 이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정책이 오히려 고용 안정성 저해라는 기대 효과와는 정반대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방안은 현재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현 정부는 그나마 지난 정권이 정규직 근로자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 유연성 제고와 임금피크제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등 양대지침마저 폐기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용사회와 노동현장이 활기를 띠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잘하는 사람은 격려해주고 못하는 사람은 교육을 받도록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퇴출시킬 수도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현재처럼 능력이 있든 없든 한 시스템에 넣고 똑같이 월급 주고 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동 생산성 담론도 사실상 실종 단순 근로시간 단축땐 경제 타격 4차 산업시대 걸맞게 재정비해야 경직된 노동시장과 함께 노동개혁의 대상이 돼야 할 낮은 노동생산성에 대한 담론도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노동생산성 제고 이슈를 탐탁지 않아 하는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강성노조, 노동계를 자극하고 싶지 않은 정부 등의 입장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6년 기준 미국(63.3달러)의 절반 수준(33.1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OECD 평균(47.1달러)에도 크게 못 미친다.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노동생산성 제고는 필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특히 노동생산성을 개선하지 않은 채 단순히 근로시간만 줄이면 기업과 국가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상 2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법규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재정비하는 것도 노동개혁을 통해 풀어내야 할 과제다. 이 교수는 “이제 막 창업해 6개월 갈지, 1년 이상 갈지도 모르는 벤처기업에 처음부터 정규직을 뽑으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벤처는 비정규직을 쓸 수 있도록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공장’ 노동법으로 그런 유연성마저 허용하지 않는다면 벤처는 하지 말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 先 '임금·근로시간 유연화' 後 '일자리 질 개선'으로 가야
사회 사회일반 2018.01.08 16:57:46유럽 최대 경제 대국으로 유럽연합(EU)을 사실상 이끌고 있는 독일. 하지만 시계추를 20여년 전으로 되돌려보면 상황은 현재와 판이했다. 지난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경직된 노동시장과 높은 실업률 등은 10년 이상 독일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그 기간 경제성장률은 EU의 성장률을 크게 밑돌았다. 경제성장률이 -0.4%까지 치달았던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노사정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노동시장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 하르츠 개혁을 통해 해고절차 간소화와 파견 규제 완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했다. 개혁안은 노동계의 거센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을 강행하는 것은 좌파 사민당의 슈뢰더 전 총리에게 곧 지지세력과의 결별을 의미했다. 실제로 그에게 실망한 당원들 상당수가 당을 떠났다. 결국 슈뢰더 전 총리는 하르츠 개혁이 시행된 첫해인 2005년 실시된 선거에서 정권을 내놓아야 했다. 그렇지만 하르츠 개혁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독일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특히 2005년 무려 11.2%에 달했던 실업률은 2017년 3.8%로 떨어졌고 같은 해 65.5%였던 고용률은 2016년 74.7%로 높아졌다. 우리나라 노사정이 2015년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을 무렵 국내에는 이른바 하르츠 개혁 광풍이 불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는 물론 노사, 전문가들 상당수가 하르츠 개혁에 답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9·15 사회적 대타협을 ‘한국판 하르츠 개혁’의 시발점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대타협은 그로부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6년 1월 파기됐다. 정부가 양대지침 도입을 추진하자 한국노총이 대타협 파기를 선언한 것이다. 한국형 하르츠 개혁이 수포로 돌아가자 국내에서는 ‘미니 잡’ 양산 등의 하르츠 개혁 부작용도 집중 조명됐다. 그렇다면 하르츠 개혁은 한국이 더 이상 벤치마킹하기 어려운 모델일까. 전문가들의 대답은 ‘노(no)’였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先) 노동시장 유연화, 후(後) 일자리 질 개선이라는 하르츠 개혁의 수순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다 보니 일자리가 많이 늘었지만 그중 상당수가 근로조건이 열악한 것이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후 독일 정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열악한 부분을 보강함으로써 일자리 질은 개선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처음부터 노동시장을 경직시켜서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게 하는 것보다는 시장 동향을 봐가며 유연화한 다음 고용이 증가하면 정부가 일자리의 질 개선을 위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양대지침을 폐기한 현 정부에서 이뤄지기 쉽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성과자 퇴출을 기반으로 하는 해고 유연화도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노사정이 대화를 재개해 임금 및 근로시간도 유연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영기 한림대 교수는 “지금의 정부가 ‘쉬운 해고’ 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며 “정부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려 하지 말고 임금 유연화 등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노사정의 한 축인 노동계도 해고가 아닌 임금 유연화 논의에는 나설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앞으로 일하는 방식이 크게 변할 것”이라며 “일하는 방식에 대한 노동법적 규제, 특히 근로시간 등에 관한 규제는 유연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이 노사정 8자 회의, 신(新)8자 회의 등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틀을 제시한 데 대해 “체계를 변화시켜서라도 사회적 신뢰 자산을 쌓아가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사회적 대화를 대통령이나 정부와 노동계 간 교섭으로 변질시킬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佛, 노동개혁 지렛대로 사회제도 수술까지 '속도'
경제 · 금융 경제동향 2018.01.08 16:52:43지난해 9월 노동법 개정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말 세제개혁을 마무리한 데 이어 올해는 ‘노동개혁 2탄’으로 불리는 사회개혁에 착수하며 노동·세제·사회 3대 개혁을 일단락 지을 계획이다. 프랑스 최대 난제로 꼽히던 노동개혁의 성과로 마크롱 대통령의 추진력을 확인한 여론이 그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다른 개혁과제도 힘을 받는 모습이다. 노동개혁이 3대 개혁의 ‘마스터키’ 역할을 한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사회 프로젝트’로 명명한 사회개혁이 올해 정부의 핵심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부터 재교육 투자까지를 폭넓게 다루는 사회개혁은 노동법 개정을 넘어 사회제도 전반을 수정하는 과제다. 재취업자·청년층 직업교육에 연간 150억유로(약 19조 2,500억원)를 투자하고 연금제도에 그동안 소외됐던 농민·자영업자를 포함하는 내용의 개혁안에는 ‘일하는 프랑스’를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현지 일간 리베라시옹은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개혁 열차”라고 표현했다. 리베라시옹의 평가처럼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 시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취임 후 4달 반 만에 노동법 개정안에 서명하며 노동 개혁을 마무리한 후 세제개편안에 서명하기까지는 석 달 반이 걸렸다. 세제개혁에 대한 정치권의 반대가 노동개혁 때보다 거셌음에도 불구하고 개혁 추진 기간이 단축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마크롱표’ 세제개편안은 당초 사회당을 중심으로 ‘부자 감세’라는 비난이 일어 상원에서 두 번이나 부결됐지만 여당인 라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LRM)가 과반을 차지한 하원이 상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제개편안을 강행 처리한 것이다. 이처럼 마크롱 대통령과 LRM이 세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던 것은 여론의 지지에 힘입은 바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노동개혁으로 입증된 마크롱 대통령의 의지와 경기회복에 대한 여론의 높은 평가가 세제개편을 넘어 사회개혁 추진의 엔진이 됐다는 것이다. 마크롱의 지지율은 노동개혁이 마무리된 지난해 9월부터 반등하기 시작해 지난해 12월에는 50%대 중반으로 취임 초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최근 여론조사업체 입소스 조사에서는 프랑스에 지사를 둔 200개의 해외 기업 중 60%가 프랑스 경제에 대해 낙관적 평가를 내렸다. 이 비율은 2016년 24%에 불과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노동 유연화·규제 혁파로 성장·고용↑…다시 밝힌 '佛빛'
경제 · 금융 정책 2018.01.08 16:52:23프랑스에는 고용인원 49인 이하의 사업체가 22만8,191개다. 프랑스 기업 전체의 97.1%를 차지한다. 49명 이하의 기업이 왜 이렇게 많을까. 한 프랑스 기업의 사례에 답이 있다. 프랑스 파리 근교의 한 유리 제작업체는 거래처로부터 품질에 대해 호평을 받아 작업량이 늘었다. 하지만 사장은 49명인 직원을 더 늘리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고용인원 50명이 되는 순간 온갖 성가신 규제가 더해지는 프랑스 노동법 때문이다. 직원이 50명이 되면 기업은 노동자평의회(노동조합)를 3개나 만들어야 하고 과세 대상 영업이익을 노동자와 나누는 ‘이익공유제’도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경영 위기로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도 노동자평의회에 재조정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납부해야 할 세금의 종류도 늘어난다. 이쯤 되면 사업체 규모를 키우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파리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카트린 구에뉴는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고용하는 데 장애가 있다”며 “물론 기업을 성장시키고 싶지만 장벽이 존재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직원 50명땐 규제·세금폭탄에 ‘49명 이하’ 기업이 97% 차지 악명 높은 노동법 성장 족쇄로 프랑스에서는 이처럼 ‘프랑스병’에 걸린 기업들을 사라지게 할 대대적인 개혁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9월 관련 노동법이 개정돼 현장에 정착하고 있으며 현재는 노동개혁 2탄을 추진하고 있다. 선봉에는 지난해 5월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섰다. 3,324쪽에 달하는 노동법이 개혁 대상이다. 프랑스 노동법은 악명이 높다. 170쪽이나 되는 해고 규정, 420쪽에 걸친 건강·안전 규정, 85쪽 분량의 단체협상 규정, 수백쪽에 걸친 임금·특정산업 보호 관련 규정 등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누구도 해독할 수 없을 수준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 노동법을 고쳐야만 프랑스가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이러한 현실 때문이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유연화’다. 먼저 산별교섭 대신 기업별교섭·개별교섭을 강화했다. 50인 미만 기업의 노사는 산별노조와 교섭하는 게 아니라 기업별로만 교섭할 수 있게 했고 20인 미만은 개별 직원과 교섭이 가능하도록 했다. 부당해고 보상금 규모도 줄이고 50인 이상인 기업에 요구되는 의무도 축소한다.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0.2~1.2% 사이에 머물렀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17년 1.9%까지 올랐다. 2013년 이후 줄곧 10% 이상이었던 실업률도 내년에는 9.4%로 떨어질 것이라고 프랑스 통계청은 전망하고 있다. 수십년간 공전했던 노동법 개정을 안착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타이밍이 좋았다. 2016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시도했던 노동법 개정은 사회적 반대가 거셌다. 인터넷을 통해 진행된 개정안 철회 청원운동은 하루 평균 7만3,000여명씩 서명해 한 달도 안 돼 100만명을 돌파할 정도였다. 이와 달리 마크롱 정부의 노동개혁은 과반의 국민적 지지가 동력이 됐다. 지난해 9월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법 개정안 발표 직후 나온 오독사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2%가 ‘개정안이 통과되면 고용이 증대되고 기업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긴 경제침체가 국민들의 마음을 돌린 것이다. 기업별교섭 강화 등 개혁 시동 해고·단협 등 ‘규제 유연화’ 나서 노조와 끝없이 소통, 개혁 합의 노조도 달라졌다. 프랑스에서 규모가 두 번째로 큰 노조인 노동총연맹(CGT)은 지난해 9월 노동개혁에 반대하며 전국 총파업을 강행했지만 파급력은 크지 않았다. 프랑스의 제1, 제3노조인 민주노동연맹(CFDT)과 노동자의 힘(FO)이 참여하지 않으면서 규모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특히 급진적인 성향의 FO는 2016년에는 CGT와 함께 노동법 개정 반대시위를 주도했지만 이번에는 불참을 선언해 마크롱의 개혁에 힘을 실었다. 로랑 베르제 CFDT 위원장은 “프랑스는 지난 몇 년간 격렬한 노조 충돌을 거치면서 발전했다”며 “독일처럼 좀 더 합의에 기반한 노사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충분한 의사소통 과정도 주효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한 지 9일 만에 노조와 재계를 만나 8시간 동안 마라톤 면담을 했다. 지난해 5월 말부터 3개월 동안 50여차례에 걸쳐 노사와 만남을 가졌고 300시간에 걸친 노조와의 대화 끝에 개혁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 결과 FO는 이번 노동법 개정안이 기업협약과 산별협약의 위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지지를 표했다. /강광우·빈난새·변재현기자 pressk@@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마크롱표 개혁에 투자 불 붙는 佛기업
국제 경제·마켓 2018.01.08 16:51:19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노동·세제개혁에 힘입어 프랑스 기업들의 인수합병(M&A) 규모가 10년 만에 최대로 불어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을 인용해 지난해 프랑스 기업들이 참여한 M&A 규모가 총 2,091억유로(약 269조원)로 지난 2007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거래 규모 기준 상위 10개는 모두 프랑스 기업이 인수자로 나선 계약이었다. 지난해 12월 유럽 최대 부동산기업인 프랑스 유니베일로담코가 미국계 유통체인 웨스트필드를 247억달러(약 26조 3,800억원)에 인수해 세계 2위의 유통업체를 탄생시켰으며 프랑스 보안업체 탈레는 네덜란드 정보기술(IT)업체 제말토를 48억유로에 품에 안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마크롱 정부의 개혁으로 자신감을 얻은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며 당분간 대규모 M&A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런던의 투자은행인 자오위앤코의 요엘 자오위는 “마크롱 대통령이 몇 년간 안정적이고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평가했다. 질베르토 포치 골드만삭스 M&A 부문장도 “지금 프랑스에서는 최고경영자(CEO)의 낙관과 경제회복 등이 조합된 좋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며 당분간 프랑스 M&A 시장의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규제혁파 나선 미국] '네거티브 규제'의 힘...4차산업 주도하고 전통산업도 부활
국제 경제·마켓 2018.01.03 17:16:41미국 독립전쟁을 촉발한 티파티호(號)가 떠 있는 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배스강을 지난 시포트 지구에서는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타워크레인들이 새 건물들을 올리느라 분주하다. 하버드·MIT·터프츠 등의 대학들이 밀집된 미국 최대 대학도시 중 하나인 보스턴에 화이자·노바티스·존슨앤존슨·사노피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연구센터는 물론이고 대규모 창업 시설을 앞다퉈 설립하면서 부족해진 임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건설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시화하고 있는 정부의 신약 및 의료기기 개발 관련 규제 혁파는 보스턴 지역의 바이오 창업 생태계를 크게 진전시키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이 최신 기술을 응용한 신약 및 희귀약 개발을 폭넓게 인정하고 심사 기간도 대폭 단축하자 대학 연구소 등은 축적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상용화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불과 22개의 신약을 승인하는 데 그쳤던 FDA는 지난해 전년의 두 배가 넘는 46개의 치료제를 새로 승인했다. 보스턴 지역혁신 랩의 베키 도너 국장은 “규제 완화에 세금 감면, 법인세 인하 등 다중 혜택이 보스턴의 인재들과 만나 지난해에만 신생 바이오 업체가 130개 이상 설립됐다”고 전했다. 민형사상 법과 규율을 제외하면 어떤 것이든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을 근본으로 하는 미국의 규제 시스템은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혁파 움직임과 맞물려 미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이끄는 최강 엔진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쓰려는 순간부터 당국의 허용 여부를 가늠하고 수개월 동안 인가를 기다리기 일쑤인 한국의 ‘포지티브(Positive) 규제’와는 판 자체가 다르다. 정부 당국도 신상품이나 서비스를 함부로 규제할 수 없는 미국의 탈규제 시스템은 지금까지 없던 신기술을 개척하는 사업들이 태반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특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동부보다도 기업 자유도가 한층 높은 캘리포니아·워싱턴주 등 미 서부는 애플·구글·아마존·페이스북의 성공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유니콘(대형 스타트업) 1·2위인 공유택시 우버와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 등의 기업들을 배출하며 ‘규제 프리존’의 파워를 증명하고 있다. 네거티브 규제 덕분에 누구나 택시 영업을 하고 숙박업체 사장이 될 수 있는 우버와 에어비앤비 서비스는 기존 택시 및 숙박업계의 적지 않은 반발을 샀지만 혁신적 기술이 생산성 및 소득 증대, 비용 절감 등 1석 3조의 효과를 내자 이제는 거의 모든 주에서 제한 없이 허용되고 있다. 손수득 KOTRA 북미본부장은 “미국의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은 신기술에 계속 혁신을 더하기 쉽게 하고 스타트업들이 신규 사업을 업그레이드하며 경쟁하는 데 탁월한 생태계를 만든다”고 평했다. 미국은 주나 시 정부 등이 신산업 육성 등을 위해 자금 지원이나 토지 및 사무실을 제공할 때도 기업에 ‘그림자 규제’로 불리는 단서 조건을 걸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붐을 추월하기 위해 애쓰는 뉴욕시는 브루클린의 옛 해군 조선소 부지를 민간에 장기간 초저가에 제공하면서도 ‘사회와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는 기술’ 정도를 입주 업체들에 요구할 뿐 다른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스타트업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데이비드 벨트 뉴랩 창업자는 “뉴욕시는 금싸라기 땅을 거의 무상으로 35년간 줬지만 사업 종류나 규모 등 어떤 것도 간섭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미국의 기업 환경은 에너지 등 전통 산업의 르네상스를 이끄는 데도 기폭제 역할을 한다. 2000년대 초반 하루 원유 생산량이 600만배럴에 못 미쳤던 미국은 셰일혁명 덕에 올해 하루 생산량이 97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예상하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수입국이던 미국이 연간 1,000억달러 넘는 원유·가스 판매 수입을 늘리면서 더 이상 중동에 에너지 안보를 의존하지 않게 된 엄청난 변화는 셰일 개발이 집 한 채를 짓는 것보다 어렵지 않은 규제 환경 덕분이었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됐던 금융 규제의 흐름도 깨지고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월가 출신 인사들을 대거 백악관과 정부 요직에 기용하며 규제 철폐를 공언하면서 지난해 1~9월까지 JP모건·골드만삭스·웰스파고 등 미국 6대 투자은행의 투자 자산은 1,700억달러(약 185조원)나 늘어났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했다. 하루 20% 넘게 가격이 등락하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사기라는 주장이 적지 않지만 미 금융 당국은 좀처럼 규제에 나서지 않고 있다. 비트코인 규제에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지만 CFTC도 비트코인을 사고파는 거래 자체를 규제할 권한은 거의 없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설명이다. 앤서니 챈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금융규제법(도드프랭크법) 폐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금융시장은 규제 완화를 이미 실감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지난해 다우지수가 25% 넘게 상승한 것은 감세보다 규제 완화가 일찌감치 기업과 가계의 투자심리를 안정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스턴·샌프란시스코·휴스턴=손철 특파원·정혜진 기자 runiron@@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GDP대비 규제비용 세계 최고...글로벌 스타트업 70% 韓선 불법
경제 · 금융 정책 2018.01.03 17:15:26지난해 12월18일부터 대한민국 국민의 4분의1은 숨은 보험금 찾기로 몸이 달았다. 너나없이 금융위원회가 선보인 ‘내보험 찾아줌(ZOOM)’에 접속하려 하자 서버가 감당하지 못했다. 아직도 버벅댄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대다수는 “왜 이렇게 접속이 안 되느냐”며 볼멘소리를 했겠지만 엄청난 사업 기회를 발견한 창업가들도 많았다. 보험업과 핀테크가 합쳐진 인슈어테크 시장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눈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보험업과 관련된 창업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험사만 보험업을 경영할 수 있는데다 최소 필요 자본금이 200억원인 현행법이 발목을 잡아서다. 국내 보험 관련 스타트업들이 보험설계사와 단순 중개만 하는 수준의 사업을 하는 이유다. 벤처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보험 찾아줌’을 통해 인슈어테크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목격했지만 그것뿐이었다”며 “기존 사업자들의 논리에 빠진 규제가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두 날리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것뿐일까. 지난해 11월23일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은 현재 출퇴근 시간에만 허용된 ‘카풀(차량 동승)’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택시는 과잉공급되는데 수요는 줄어들고 여기에 ‘카풀’ 업체들까지 기승을 부리니 이를 막기 위해 법안을 제안했다. 한국에서 카풀 애플리케이션 업체의 수난사는 지난 2015년부터였다. 글로벌 카풀 1위 업체 우버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하려 했다가 운송 업계의 반발로 철수했다. 목적지와 탑승시간을 앱에 입력하면 경로가 같은 승객을 모아 운행하는 콜버스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최근에는 국산 카풀 앱 ‘풀러스’가 서비스 제공시간을 출퇴근 시간에서 24시간으로 확대하자 서울시가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운수 업계와 카풀 앱 업계, 기존 사업자와 새로운 도전자의 갈등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는 결국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로 공을 넘겼다. 결판을 내겠다며 마라톤 끝장 회의인 ‘해커톤’을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기대했던 화끈한 ‘한방’은 없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기존 사업자의 사업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신산업에 대한 수요를 규제로 막아서자 기업들이 나섰다. 지난해 11월 벤처기업협회 등 8개 관련 단체들로 구성된 혁신벤처단체협의회가 ‘혁신벤처생태계발전 5개년계획’을 내놓은 것. 이를 보면 한국의 중소기업 관련 규제는 8,291건에 달했다. 전체 등록규제(1만4,177건)의 58.5%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2022년까지 세계 2위 혁신 생태계를 만들고 4차 산업혁명 선도국가가 되려면 5대 선결 인프라와 12개 분야 160개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회사에 손실이 났다고 대표이사에게 배임의 죄를 묻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경영권의 위협을 받지 않고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혁신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을 보장해달라고 했다. 또 감사원이 과도하게 감사에 나서 공무원들이 혁신정책을 입안하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혁신 벤처 생태계의 모든 상황을 예측해 세밀한 정책을 세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니 민간의 정책 니즈를 그저 과감하게 수용해달라고 건의했다. 전문가들 역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을 ‘기술혁명’이 아닌 ‘규제혁명’이라고 말한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전 세계 70%의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창업했다면 불법 업체가 된다”며 “벤처기업들이 정부에 160개나 되는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한 배경도 바로 국내 기업들이 기술력은 되지만 제도 때문에 성장은 고사하고 창업부터 막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에서 견제하고, 옆에서 누르고, 뒤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규제 수준은 수십년간 제자리걸음이다. 이혁우 배제대 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발표한 ‘OECD 국가 규제비용 비교분석’ 논문에서 “한국은 폴란드·헝가리·멕시코·터키 등과 함께 2003~2013년간 규제비용이 추세적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1인당 규제비용이 최고 수준에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부처의 규제건의 수용률도 평균 39.1%로 낮은 수준이다. 특히 주요 경제부처인 기획재정부(30.4%), 금융위원회(32.6%), 공정거래위원회(34.4%) 등은 평균 이하다. 규제 완화가 세금감면보다 투자·고용 촉진에 효과가 더 크다는 분석 결과도 참고할 만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제조업 규제비용이 50% 감소할 경우 50년 후 투자와 자본량은 39.4%포인트 증가한다. 반면 전 산업의 조세(생산세)가 50% 감면된 경우 50년 후 투자와 자본량은 29.8%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김주찬 한국규제학회 회장은 “우리나라는 정부의 규제 틀 속에서 기생하는 기업만 살아남는 구조”라며 “기존 사업자들에게 규제개혁 과제를 요청하는 방식은 현재 규제 생태계 틀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신규 사업자를 위한 개선은 이뤄지지 않아 국가 지도자가 그 틀을 과감히 깨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규제혁파 나선 미국] 혁신 이끄는 실리콘밸리·美대학 산학동맹
국제 경제·마켓 2018.01.03 17:14:38세계 최고 명문 하버드대가 위치한 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남쪽으로 찰스강을 건너면 하버드의 천재들이 제2의 페이스북을 목표로 창업을 준비하는 요람이 있다. 일명 ‘하이(Hi)’로 불리는 ‘하버드 이노베이션 랩(Harvard Inovation lab)’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기술을 가진 대학생을 혁신적 기업가로 육성하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이곳은 하버드대를 중퇴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6년 전 후배들의 벤처 창업과 신기술 개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운영비를 부담하기로 하면서 출범한 곳으로 지금껏 배출한 75개 스타트업이 3억달러(약 3,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규제에서 자유로운 미국에서 4차 산업혁명 현장의 주역은 기업과 대학이다. 페이스북은 태평양과 인접한 미 서부 실리콘밸리에, 하이는 대서양을 눈앞에 둔 동부 끝자락 보스턴에 위치해 있지만 수억명의 페이스북 이용자와 빅데이터를 결합해 신사업을 설계하는 작업이 3,000마일(약 4,800㎞) 떨어진 미 대륙의 양 끝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보스턴 혁신 랩을 총괄하는 베키 도너 국장은 “하이는 페이스북 지원을 받지만 학생들은 구글·애플과도 자유롭게 협업을 한다”며 “하이는 물론 매사추세츠공대(MIT)나 보스턴대의 랩들도 여러 지역의 다양한 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매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하버드보다 앞서 혁신 랩을 설립한 MIT는 산학협력단이 엄격한 과정을 거쳐 매년 25개 유망 스타트업을 선발해 거액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칼 코스터 MIT 산학협력단 사무총장은 “기술이 특출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을 선별해 해외 사업 파트너도 구하고 있다”며 “올해는 서울과 도쿄에서 MIT 유망 스타트업들의 미래 기술과 비전을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뉴욕시가 지난해 공학에 경영학을 기본으로 접목해 설립한 코넬공대는 루스벨트 캠퍼스에 씨티그룹 등 금융회사 등을 아예 입주시켜 교수·학생과 핀테크(금융기술) 개발을 시작부터 함께 짜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코넬공대와도 제휴해 공동 학위 과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스탠퍼드·칼테크·UC버클리 등과 기업들의 산학동맹으로 일찌감치 성공 신화를 쓴 실리콘밸리에서는 일부 큰손 투자자가 직접 미흡한 교육 과정을 보강할 수 있는 대학을 설립해 주목받기도 한다. 테슬라·스카이프 등에 초기부터 투자해 대박을 낸 팀 드레이퍼 벤처네트워크 회장은 ‘히어로를 키운다’는 슬로건을 내건 드레이퍼대를 세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등 성공한 기업인을 학생들의 멘토로 직접 연결해주며 준비된 미래를 꾸리도록 독려하고 있다. /보스턴·샌프란시스코=손철특파원·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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