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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돌 그리고 건물의 '자유분방한 질서'...사대부 삶을 담다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이야기] <11> 中 대표 정원 '쑤저우 졸정원·유원'

쑤저우, 과거 경제·문화 중심

지금까지 약 200개 정원 남아

졸정원 대부분 1860년대 재건

연못·회랑 주위의 경치 '명품'

유원, 좁지만 '정원 장점' 압축

"인문·자연환경이 빚어낸 작품"

쑤저우 졸정원의 방문객들이 ‘소비홍(小飛虹)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연못과 돌·건물의 자유분방한 질서가 중국 정원의 특징이다.




베이징의 궁궐 자금성이나 시내 사합원에서 알 수 있듯 중국 주택 건축은 엄격한 직선과 대칭, 위계성이 특징이다. 이는 정형화되고 과시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렇게 꽉 짜인 틀 속에서만 사람이 살 수는 없는 법. 중국 정원의 자유분방함이 출현한 이유다. 부드러운 곡선, 비대칭, 불규칙성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식 정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연못과 돌·건물 등의 나름대로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룬 전통 정원은 특히 사대부 삶의 한 단면을 상징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인정한 4대 전통 정원으로는 허베이성 청더의 피서산장, 베이징의 이화원, 장쑤성 쑤저우의 졸정원·유원이 있다. 그중 2곳이 지방인 쑤저우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거꾸로 말하면 쑤저우가 중국 정원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피서산장이나 이화원은 베이징에 수도가 들어서면서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개조된 것이다.

중국에서 쑤저우식 정원이 유명한 것은 이 지역에 집중된 경제력과 관련이 있다. 중국 정치·경제의 중심은 처음에는 산시성 시안이었는데 이후 북방 민족들의 침공으로 일반적으로 ‘강남’으로 일컬어지던 양쯔강 하류로 이동한다. 그 중심이 쑤저우와 항저우다. 온화한 기후와 기름진 토지, 그리고 이를 운용할 인재들의 축적은 강남을 천년 동안 중국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명나라 이후 정치의 중심이 베이징으로 이동하지만 경제·문화의 중심은 그대로 남았다.

쑤저우와 항저우 가운데서도 보다 양쯔강 하류에 가깝게 있던 쑤저우에서 중국 문화가 개화한다. 쑤저우는 중국 정원 문화의 중심이 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쑤저우에는 약 200개의 정원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졸정원과 유원이 가장 유명하다. 쑤저우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원은 송나라 때 만들어진 창랑정이다.

졸정원은 강남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정원의 대표 격이다. 이 자리에 정원을 만든 최초의 인물은 당나라 때 시인인 육구몽이었다고 한다. 원나라 때는 절터였다. 이후 명나라 때 감찰어사라는 직책에 있다가 억울하게 물러난 뒤 낙향한 왕헌신이 1530년 정원을 조성했다. 당시 정원 면적은 13만㎡가량이었다고 한다.

졸정원이라는 이름이 특이한데, 이는 진나라 때 시인인 반악의 ‘한거부’라는 시의 “축실종수 소요자득 관원노소 이공조석지선 차역졸지위정야(筑室種樹 逍遙自得 灌園弩蔬 以供朝夕之膳 此亦拙之爲政也·방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한가롭게 지내고 채소를 키워 팔아 끼니를 해결하니 이것이 못난 사람의 다스리는 일이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무능한 관리에게는 정원 가꾸기가 유일한 ‘정치’라며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다.

다만 하찮다는 이름과 달리 왕헌신은 16년에 걸쳐 강남 최대의 정원을 완성했다. 정원은 시대를 거치며 영욕을 겪었고 현존하는 건축물은 대부분 1860년대에 재건된 것이다. 그나마 상당 부분의 공간이 이후 다른 용도로 쓰였고 지금 졸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공간은 5만 2,000㎡에 불과하다.



그래도 기본 골격은 명나라 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정원을 구성하는 요소는 연못, 정자, 회랑, 다리, 가산(假山), 차경 등인데 이것이 졸정원에는 최대한도로 발휘돼 있다. 졸정원의 핵심은 정원 면적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연못이다. 원향당 등 연못 주위의 건물은 물론이고 다리와 회랑을 거닐며 바라보는 경치가 명품이다.

쑤저우 유원에서 관리원이 연못에 떨어진 낙엽을 걷어 올리고 있다.


이와 함께 쑤저우의 정원에서 유원도 빼놓을 수 없다. 유원은 크기만 보면 졸정원의 절반 정도인 2만 3,300㎡다. 명나라 때인 1593년 서태시가 주택으로 세웠으나 주인이 수차례 바뀌며 19세기 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됐다. 유원은 중국 정원의 구성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 이들의 장점을 압축시켰다.

정원 전체에 연못이 고르게 퍼져 있는 졸정원이 건물 용도를 중심으로 세 부분으로 나뉘는 것과 달리 유원은 연못·건물·원림 구역으로 별도로 구성돼 있다.

졸정원·유원을 대표로 하는 쑤저우 정원은 베이징의 정원 구성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화원·원명원 등 왕실 정원이나 개인들의 정원 모두 사실상 쑤저우 정원의 복사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화원의 뒷부분은 아예 쑤저우제(소주가)라는 이름이 붙은 공간이 있다.

쑤저우 정원은 인문 및 자연환경의 결합이다. 연못이 많은 것은 ‘중국판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쑤저우 자연환경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와 함께 태호석 등을 이용해 가산을 만든 것은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공자의 말을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베이징의 자금성 부근에도 호수가 있고 이 호수 굴착에서 나온 흙으로 가산(경산)을 조성했다.

/글·사진(쑤저우)=최수문 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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