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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만남 A to Z] '건담'을 조립하며 꿈을 꾸는 어른들의 이야기

김대영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 대표 겸 아티스트 인터뷰

“건담 파는 가게가 오덕후(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가 변형된 인터넷 용어. ‘덕후’라고도 한다.)들만 가는 곳이라고요? 여기는 어른들이 꿈을 꾸는 공간입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가장 많이 사준 장난감이었다. 이것들을 조립할 때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나이를 먹어 대학을 다니고, 회사생활에 고군분투할 때도 프라모델 조립은 가장 큰 취미이자 위로가 됐다. 그리고 어느날 운명처럼 건담 프라모델(건프라) 가게를 운영하게 됐다.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프라모델 판매 가게인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이하 ‘건담작업실’). 이곳을 바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성인들의 취미공간, 꿈의 아지트로 만들고 싶다는 김대영 건담작업실 대표 겸 아티스트를 서울경제썸이 만났다.





김대영 건담작업실 대표 겸 아티스트


‘건담 작업실’ 대표이며, 동시에 ‘자작나무’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3D아티스트입니다. 고양이를 전문적으로 찍는 프리랜서 사진 작가이기도 하고, 캘리그래피 등을 활용해 글을 쓰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요.(웃음)



어릴 때부터 모형 조립하는 걸 좋아했고, 사회생활 하면서도 취미로 즐겼어요. 그러던 중 제 사무실 근처에 있던 한 건프라 매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고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가게 사장이 제 후배였던 거예요. 그 순간 뭐에 홀린듯 가게를 인수하겠다고 해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죠.



처음에 건담가게를 운영한다고 했을 땐 주변사람들이 한심한 눈빛을 지으며 만류를 하더라고요. “다 큰 어른이 장난감에 집착하느냐”고. “장난감가게가 돈이 되겠냐”고. 부자 되겠다고 시작한 게 아닌데 말이죠. 경제적 어려움도 있지만 그보단 장난감 좋아하는 어른들을 마냥 ‘철부지’로 여기는 사회적 시선이 힘들 때가 있어요.



건담 조립을 할 때면 온 신경을 집중하기 때문에 모든 걱정과 고민이 사라져요. 특히 도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유일무이한, 나만의 건담을 만들 수도 있는데요. 이런 창작의 기쁨, 도전 같은 것들이 프라모델의 매력 아닐까 싶어요.



지난해 건담작업실이 건담아티스트와 함께 진행한 ‘제타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작품들. ‘기동전사 건담’시리즈를 통해 탄생한 건프라는 수천가지에 달한다.


로봇의 손가락 관절까지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프라모델을 ‘건프라’라고 불러요. 건프라는 축소 비율에 따라 ‘등급’과 ‘가격’이 나눠지는데 최소 5,000원부터 비싼 건 30만원대까지 있어요. 이 중 초보자가 작업하기 좋은 크기는 작게 축소된 하이그레이드(HG) 제품이에요.



‘건프라 제작의 꽃’이라 불리는 도색과정은 고객이 상품을 통째로 들고와 전문적인 프라모델러에 의뢰하는 방법과 강의를 듣고 본인이 직접 작업하는 방법이 있어요.

인터뷰를 진행한 날에도 많은 일반인들이 곳곳에서 건담 강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요즘엔 강의를 듣고 직접 자기 건담을 만드는 게 인기인데요. 3시간씩 총 8회로 구성된 강의는 제품 개봉부터 표면 정리, 에어브러시, 도색, 스티커를 붙이는 것까지 완성되는 모든 과정을 배워요.



최근 키덜트(Kid+Adult, 어린이 취미를 즐기는 어른) 문화가 단순한 개인 취미 생활을 넘어 산업적으로도 특수를 맞은 것 같아요. 하지만 과거에도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많았어요. 어른이 장난감을 모으는 게 이상하게 보일까봐 숨겼죠. 요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사생활을 공개하고, 취미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키덜트 문화가 확산된 것 같아요.



제 어릴 적 꿈은 화가였어요. 무엇을 그리고 만드는 게 좋았죠. 대학에서 건축설계학을 전공하고, 컴퓨터그래픽회사 ‘블루라인’에 3D아티스트로 입사해선 CF 특수효과 작업을 맡았어요. 3D 장편 애니메이션 ‘우당탕탕 도깨비 대소동’의 아트디렉터로 참여한 경험도 있어요. 이후엔 쿠폰 매거진 <코코펀>의 디자인실장을 맡은 적도 있지요. 이런 17년 간의 경험들이 쌓여 지금 저만의 작업실을 꾸렸고, 직접 찍은 사진도 전시하고 책도 내고 그래요.



저희 작업실 방문객은 청소년부터 50대 중년층까지 다양한데 주고객층은 30대 직장인들이에요. 여자분들이 30% 정도 되죠. 건담 제품 판매보다 강의료 수익이 더 많긴 한데 경제적 어려움이 많아요. 높은 임차료 때문에 가게를 이전해야 하기도 했지요. 요샌 대형 피규어 가게들이 많이 생겨 더욱 타격을 받고 있어서 차별화된 수익 모델을 고민 중이에요.





건프라 월드컵 한국 예선에서 3등을 수상한 ‘타이터스가 있는 디오라마’의 모습.


제가 아끼는 작품은 ‘타이터스(건담 모델의 한 종류)가 있는 디오라마(축소모형을 통한 재현)’에요. 로봇 전쟁으로 멸망한 세계에서 한 소년이 밝은 미래를 꿈꾸는 장면을 담았는데요. 이끼를 표현하기 위해 인조잔디를 뜯기도 하고 돌가루를 으깨기도 하면서 3주 정도 걸려 완성했어요. 이 작품으로 2012년에 열린 건프라 월드컵* 한국 예선에 나가 3등을 했어요.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오로지 저와 작품만을 고뇌했던 시간이라 더 소중한 순간이었어요.

*건담 제조업체 일본 ‘반다이’사는 1년에 한번 건프라 월드컵을 개최한다. 각 나라 예선에서 1~2등을 한 건프라가 출전할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건담 아티스트라는 말이 생소해요. 레고나 프라모델도 이제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창작콘텐츠라고 생각해요.

‘건담작업실’의 식구들. 좌측부터 이성동 프라모델러 실장, 김대영 대표, 우준희 프라모델러 모습.


지금 우리 회사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이성동 실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장이지만 과거에 제 고객이었어요. 그만큼 프라모델 작업은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이면서 아티스트들의 예술작업이기도 해요. 앞으로 전문 예술인으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죠.



프라모델 사이에 앉아 있는 ‘하로’의 모습


저와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가 있어요. 이름은 ‘하로’. 새끼 길냥이일 때 데려와서 지금 1살이죠. 최근엔 하로를 위한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일상 이야기와 사진을 올려요. 제 룸메이트이자 홍보매니저인 셈이죠.



저처럼 건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래서 2014년 11월, 국내 한 여행사와 연계해 ‘건담 투어’ 여행패키지를 기획했죠. 건담의 성지인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 가서 건물 6층 높이의 실물 건프라도 구경하고, 아키하바라(일본의 유명 전자상가)에 있는 건담 카페나 캐릭터 거리(스트리트) 등을 방문하는 3박 4일 여행 프로그램이에요. 지금까지 5회 진행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앞으로도 계속 운영할 계획이에요.



어느 날 부부가 같이 취미를 즐기고 싶다고 저희 작업실을 찾아왔어요. 여성분이 임신 중이었는데 페인트나 접착제 냄새가 태아에 좋지 않을 수 있어 남편만 강의를 들었죠. 여성분이 너무 아쉬웠는지 남편이 수업들을 때 항상 같이 와서 지켜보더라고요. 부부가 같이 취미생활을 하는 모습이 부럽더라고요.



요새 사람들이 평생 동안 해야 할 과업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가 쉽지 않죠. 취미생활이나 관심사 없이 사는 게 참 슬픈 일인 것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진정한 취미이고, 곧 삶의 낙이자 꿈이라고 생각해요.



건담작업실이 어른들의 다양한 취미 생활을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아지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일한 자! 즐겨라’라는 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당당하게 즐길 줄 아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김대영씨가 여행하며 종이컵에 끄적인 낙서흔적과 캘리그래피로 꾸민 건담.


제 취미이자 특기는 카메라와 수첩만 들고 여행하면서 ‘낙서’하는 거에요. 비행 중 받은 종이컵에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쓰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라요. 그 당시엔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지더라도 나중에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될 수 있거든요. 지금은 이게 꽤 많이 모여서 낙서 전시를 해볼까도 생각중이에요.

인터뷰가 끝나고 건담 제품들이 쌓인 선반 앞에서 다정하게 놀고 있는 하로와 김대영씨.


앞으로 낙서같은 인생을 살고 싶어요. 언제 어디서든 부담없이 할 수 있는 끄적거림. 마음이 가장 편안한 상태로 자유롭게 흔적을 남기면서 별 고민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네요. /정가람 인턴기자 garam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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