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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속 오늘] 노르웨이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 인류 역사상 최북단 지점 도달

1895년 4월 8일, 직접 설계한 ‘프람호’ 타고 북극 항해

난센 도전 정신, 정치 외교사에도 한 획 그어...난민 지위 개선

프리드쇼프 난센이 1895년 4월 8일 지구 최북단에 도달했다. /출처=UNHCR(유엔난민기구)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정부가 붕괴된다. 볼셰비키 혁명과 이은 내전으로 유럽과 미국으로 이주한 난민은 100만 명이 넘었다. 당시 러시아 난민 대다수는 레닌에 의해 국적이 박탈돼 여권을 갖지 못했다. 여권이 있어야 타국에 입국할 뿐만 아니라 피난국에서 체재허가, 사회보장, 노동허가 등이 보장됐다. 이에 당시 국제연맹 난민고등판무관이었던 프리드쇼프 난센은 1922년 52개국 승인을 받아 ‘난센 여권’을 도입해 난민을 도왔다. 난센 여권은 국제 연맹이 국적이 없는 난민들을 위해 발행했던 최초의 국제적인 신분증이다. 45만명의 난민의 이주를 지원한 그 공로로 1922년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26년에는 난센 우표를 발행해 난민 정착 기금을 지원하는가 하면 난민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마련했다. 이는 난민법의 근간이 됐다. 유엔은 그의 인도주의적 업적을 기려 ‘UN난센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1863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동물에 관심이 많았다. 동물학, 해양생물학, 해양학, 지질학, 인류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구자였다. 동물학자를 꿈꾸던 그는 21세 때 바다표범잡이 어선에 올랐다. 이 때 그의 꿈은 그린란드를 횡단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889년 그린란드 만년설 횡단을 시작으로 1893년 북극을 탐험, 북극 개발과 연구에 관한 보고서를 썼다.



그는 멈추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북극점(북위 90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1890년 자신의 탐험 계획을 노르웨이 학회에 제출했다. 시베리아에서 북극해로 흐르는 해류와 빙하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반대했다. 북극점 근처는 얼음으로 덮여 항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난센은 얼거나 얼음덩어리와 부딪혀도 부서지지 않는 배 ‘프람호’를 직접 설계했다. 프람은 노르웨이어로 ‘전진’이란 뜻이다. 국회 지원을 받아 1893년 6월 프람호는 돛을 올릴 수 있었다. 그는 약 2년 간 항해 끝에 배에서 내렸다. 북위 84도 4분 지점이었다. 얼음에 둘러 싸여 더 이상 항해를 할 수 없게 되자 그와 스키선수 출신 요한센 대원은 썰매로 갈아 탔다. 썰매 여행을 한 달 동안 계속한 1895년 4월 8일, 그 둘은 북위 86도 14분까지 이르렀다. 식량 부족으로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인류 경험으로는 최북단 지점이었다.

그들은 이후 서쪽으로 가려다 표류했고 영국 탐험대의 구조로 3년 3개 월 만에 본국에 돌아온 난센은 국민 영웅이 됐고 정치 영역에도 본격 입문했다. 이후에도 동물학과 해양학, 탐험사에 관해 수많은 논문을 남겼으며 외교가로서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분리되는 데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김진희인턴기자 jh694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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