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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1년] 수술대 오른 방역체계…인프라 구색 갖췄지만 갈 길 멀어

메르스 의심 환자 병원 무단이탈

지카 확진까진 1주일 걸리기도

초기대응·방역체계 여전히 구멍

전문인력 늘리겠다 공언했지만

지자체 등 인력확보 절반에 그쳐

비용 부담에 격리실 확대도 꺼려

"감염관리 앞장땐 인센티브 줄것"

정부 당근책에도 현장선 시큰둥





#지난달 13일 발열 등 호흡기 질환 증상 등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의심됐던 아랍에미리트(UAE) 국적의 A(22)씨는 의료진의 격리 권고를 무시하고 서울의 한 대형병원을 무단으로 이탈했다. A씨는 일행과 함께 숙소로 돌아갔고 보건당국의 격리조치가 이뤄지기까지는 무려 8시간이나 걸렸다. A씨를 의심환자로 분류한 병원은 바로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EOC)에 신고했고 EOC는 지역 보건소에 초기대응을 주문했지만 당시 선거일 투표소 관리 업무에 투입됐던 직원이 현장에 나갔을 때는 이미 A씨가 병원을 벗어난 뒤였다.

#지난 3월 21일 국내 첫 지카(Zika)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B(43)씨가 발열 증상이 나타나 전라남도 광양 소재 한 의원을 찾은 시점은 그로부터 3일 전인 18일이었다. 이 병원은 환자가 지카 발생국인 브라질을 다녀왔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보건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21일 발진 등의 증상이 추가로 보여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신고가 이뤄졌고 B씨는 같은 날 유전자 검사 결과 지카 확진자로 밝혀졌다. 지난달 발생한 국내 두 번째 지카 환자 C(20)씨 역시 첫 방문 병원의 신고 누락, 보건소의 주말 휴무 등으로 확진까지 무려 일주일이 소요됐다.



우리나라에 첫 메르스 환자가 나온 지 20일로 만 1년이 됐다. 메르스 사태는 마지막 감염자가 안타깝게 숨을 거둔 지난해 11월25일까지 무려 190일간 대한민국 전반을 할퀴고 지나갔다. 186명의 환자가 힘겨운 투병을 하며 한국은 세계 2위 메르스 발병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으며 감염자 중 38명은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사회·경제적 손실은 자그마치 30조원으로 추산된다. 초기대응 실패, 허술한 방역체계 등이 낳은 인재(人災)였던 메르스 사태로 국가 방역체계는 지난해 9월 수술대에 올려졌다.

개편된 방역체계는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고 있다. 24시간 감염병 신고 접수, 정보 수집, 즉각 지휘 통제를 담당하는 EOC를 질본 내에 설치하고 의료기관도 감염병 의심환자의 해외 여행력을 의약품처방조제지원시스템(DUR)을 통해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방역체계 인프라는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춰가고 있지만 운용 측면에서는 아직 허점이 보이는 게 현실이다.

실제 A씨의 사례에서는 의료기관의 신고, EOC의 접수, 보건소의 현장 출동 메커니즘이 끝단에서 매끄럽지 않았다. 적지 않은 보건소 직원들이 지자체 업무가 바쁠 때는 그 업무에 투입되고 있는 현실도 이 같은 상황을 낳는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B씨의 경우 지카 발생국인 브라질서 귀국한 뒤 의원을 처음 찾았을 때 DUR가 제대로 업데이트돼 있지 않아 B씨의 브라질 방문 사실을 알려주지 못했다. C씨 역시 DUR가 C씨가 필리핀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말해준 것은 아니다. 필리핀은 지카 산발적 발생국가로 당시 DUR를 통해 알 수 있는 의심환자 방문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낀 것이라 볼 수 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방역체계 인프라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 인프라의 핵심은 전문 인력과 시설이다. 보건당국은 9월 방역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당시 정규직 2명, 공중보건의 32명 등 모두 34명에 불과했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역학조사관 수를 올해 초까지 89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그 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 중앙은 30명 목표에 25명은 이미 뽑았고 5명은 현재 채용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는 정원을 채우지 못한 곳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대략 절반 정도 목표 인력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감염병 환자를 격리해 치료할 수 있는 음압격리병상의 확대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개편안에는 당시 396개인 음압격리병상을 오는 2020년까지 1,434개로 늘리겠다는 내용이 포함됐었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벌써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형병원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지침대로 음압병상을 만들려면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4억원까지 들어가고 유지 비용도 만만찮다”며 “음압병상은 가동률도 낮아 병원 입장에서는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의료기관의 감염병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수가 개편 등을 통해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감염 관리에 앞장서는 병원에 감염·예방 관리료를 지급하는 등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다.

이밖에 메르스 사태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정보 공개가 매우 신속해졌다는 점이다. 보건당국은 메르스 때와 달리 지카 확진자가 방문한 병원명 등을 즉각 공개하고 있다. 일각서는 지나친 공개주의가 자칫 불필요한 의료기관의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전문성을 갖춘 인재 양성, 컨트롤타워의 위상 강화, 음압병상 설치 등을 위한 정부의 지원 등을 근본적인 대책으로 꼽는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역학조사관을 2년 계약직으로 뽑는 것은 전문 인력 양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며 “5∼10년 뒤를 바라보고 전문가를 길러낼 수 있는 장기적인 인력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위축된 질본에 보다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민간병원이 정부 지원 없이 음압병실을 설치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송대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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