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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큐레이터의 ART-B] 조영남 작품 저작권은 누구에?

박소정 아트에이전시 더 트리니티 대표





미술가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려 조수를 고용해 작업을 하는 것과 대작(代作)을 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를 두고 현대미술의 개념이 어쩌고 하면서 사변을 늘어놓는다면 어설픈 전문가라는 핀잔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사건이 터졌으니 무언가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술품 판매를 생업으로 하는 직업인으로서 교훈 하나는 찾아야할 의무감마저 든다. 여기까지 이야기만으로도 다들 감을 잡았으리라 본다. 맞다. 바로 요새 대한민국을 달구고 있는 ‘조영남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미술에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기법이나 방식인 작가 스스로의 붓질이나 조각뿐만 아니라 작가의 아이디어와 의도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는 맥락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 자신이 직접 붓질을 해서 작업을 한 것인 양 호도하는 행위까지 현대미술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품 그 자체만을 두고 생각하면 아이디어 제공자와 실제 작업자 중 누구의 역할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느냐는 문제와 마주친다. 소장자에게는 특히 중요한 문제이다.

검찰은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저작권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쪽이다. 1992년 ‘아메리카 고딕’이라는 중세시대 인물화에 대한 저작권 분쟁에 관한 판례가 근거다. 당시 미국 재판부는 의뢰인이 작업자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더라도 저작권은 실제 붓질을 한 사람에게 있다고 결론 냈다. 작업자의 개성과 실력에 따라 그림이 바뀔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씨를 기소해야 하는 검찰 입장에서는 최적의 판례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홍익대에서 예술과 법에 대해 강의 중인 캐슬린 김 변호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김 변호사는 1992년 ‘아메리카 고딕’ 판례에 대해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을 보호한다’는 기본원칙에 관한 판례라며 조씨 사건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존 발데사리와 마르틴 키펜베르거의 예를 들었다.

발데사리는 ‘의뢰된 그림’이라는 연작을 제작했다. 자신의 손이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사진을 다른 화가들에게 보내 유화를 그리게 하고는, 완성된 작품에 ‘○○의 작품’이라고 이름을 넣은 작업 방식이다. 이는 해당 작품의 저작자 표시가 아니라 작품 구성 요소에 불과하다. 즉 의뢰된 그림의 저작자는 발데사리이지 실제 그림을 그린 작업자가 아니다. 저작권은 아이디어를 제공한 자신에게 있다는 게 발데사리의 의도다.

키펜베르거도 마찬가지다. 그는 ‘친애하는 화가여, 나에게 그림을 그려줘’라는 연작 12점을 영화 간판 전문가에게 의뢰했다. 키펜베르거는 아이디어만을 제공하고, 자신이 선택한 사진을 모두 같은 크기의 그림으로 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여기서도 그림은 간판 전문가가 그렸지만 저작자는 키펜베르거다. 현대미술의 방식과 표현의 다양성을 역설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두 사례가 조씨 사건과 크게 다른 점은 발데사리나 키펜베르거의 사례 모두 자신이 직접 붓질을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허스트, 쿤스, 워홀과 같은 개념을 중시하는 현대미술가 모두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들은 작업자가 자신들이 아니라고 알리는 게 가장 중요했다. 박소정 아트에이전시 더 트리니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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