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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규 산업연구원장 "원샷법 전업종 확대..상시 구조조정 시스템 만들어야

[서경이 만난 사람]

현정부서 구조조정 마무리 못하면 업종전반 수술대에

조선·해운 등 과잉공급업종만 대상으로 하면 효과 반감

노동·교육개혁 병행...M&A 활성화·신산업 육성 시급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이호재기자.




“우리 기업들을 보면 입으로는 ‘어렵다’고 되뇌지만 위기에 대한 절박감이 떨어집니다. 흡사 점점 물이 데워지고 있는 비커 속 개구리와 같은 처지라고 할까요. 걱정은 하지만 아직은 먹고살 만하다며 혁신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번 정부에서 구조조정을 해내지 못하면 조선·철강·유화 등 업종 전반이 해운업처럼 만신창이가 돼 수술대에 오를 수 있어요.”

지난 20일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에서 만난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구조조정 국면에 놓인 기업들의 안이한 현실 인식을 꼬집었다. 비커 속의 온도가 생존을 위한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는데도 파업 결의에 나서고 있는 조선업종 등의 현실이 오버랩 됐다. 유 원장은 상시적 구조조정 체계의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장 여건만이라도 구조조정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바꿔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20대 국회에서 과잉공급업종에만 적용되는 ‘기업활력제고를위한특별법(일명 원샷법)’의 적용 대상을 정상업종으로 전면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 원장은 “특히 정치권에 만연된 반(反)기업정서가 선제적 기업 구조조정을 막고 있다”며 “‘대기업 지원 반대’라는 허울뿐인 명분에 집착해서는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고 말했다. 민간 연구기관 출신으로 지난 5월부터 산업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유 원장에게 격변기에 휩싸인 우리 산업의 현주소와 해법에 대해 물었다.

/대담=이상훈 경제부 차장 shlee@sedaily.com

-우리 경제가 산업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번만 피하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구조조정이 특수한 시기에 일어나는 위기적 현상은 아니다. 시장이나 기업 차원에서 경쟁력 유무에 따라 변화가 항시 일어난다. 지금 구조조정은 ‘부실’ 구조조정이다. 평상시 선제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행되지 못해 기업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이번 부실 구조조정이 주는) 시사점은 산업 구조조정이 원활히 일어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산업 구조조정이란 안으로는 기존 산업에서 부가가치를 더 낼 수 있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산업 내’ 구조조정뿐 아니라 더 많은 부가가치를 내면서 고용효과가 큰 새 먹거리를 찾는 ‘산업 간’ 구조조정이라는 두 측면에서 검토하는 것이다.

-조선·해운 등 과잉공급업종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새로운 부가가치를 내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아야 한다. 가령 업종별로 조립·가공에 치우쳤던 것을 연구개발(R&D)이나 디자인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분야의 비중을 높여나가야 한다. 조선만 해도 범용선은 이제 안 된다. 후발 개발도상국이 쫓아오기 때문이다.

해운은 이미 위기에 봉착해 수술 단계에 와 있다. 조선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주력산업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큰 게 문제다. 세계 경제의 기조적 저성장으로 수요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인도 등 신흥 개도국은 투자를 계속하기 때문에 과잉공급 체제가 굳어지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 기업이 사전에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업종 전반이) 해운처럼 부실기업 정리에 급급하게 된다.

-구조조정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비판이 많다.

△정부가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예전 1970~1980년대 정부가 주력산업을 육성하던 시대에는 정부 주도 산업 구조조정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권한과 장치가 없다. 해운도 사전적으로 구조조정이 안 됐고 그게 금융회사로 넘어온 뒤 다 부실화해서 비로소 정부가 관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 역할은 산업별 수급구조나 미래 발전 방향 등을 조사·연구해 기업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사전적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놓았어야 하는데 그게 미비했다. 다시 말해 기업이 부실화하기 전에 기업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쪽으로 정부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또 구조조정이 완성되려면 고용과 관련된 노동개혁, 그리고 노동수급에 따른 교육개혁도 병행돼야 한다.

-사전 구조조정을 위한 여건이라는 게 원샷법 같은 것을 말하나.

△그렇다. 그런데 답답한 대목은 정치권에서 원샷법을 ‘대기업 특혜법’이라며 유효한 수단들을 많이 무력화시켰다는 점이다. 주력산업 구조조정은 결국 대기업 구조조정이다. 철강은 포스코, 자동차는 현대·기아자동차, 반도체는 곧 삼성이다. 쉽게 말해 (과잉공급업종에 한정한 원샷법은) 인식과 실체에 괴리가 있다. 구조조정은 곧 대기업인데 대기업 특혜라고 다 빼버리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20대 국회에서 전 업종으로 (원샷법 적용을) 확대 개편해야 한다. (그것도 없이) 정부더러 구조조정을 하라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반기업정서가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다는 얘긴가.

△기업 인수합병(M&A)을 보자. 아직도 우리나라는 M&A라고 하면 적대적 M&A만 생각한다. 원활한 사업 구조조정이 되려면 M&A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 M&A는 중소기업을 키울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사모펀드를 키워 자본시장을 육성해야 한다. 그런 역량을 키우면 우리가 해외에서 활동할 수도 있다.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채권단의 무능, 정치권의 개입, 회계법인과 부실 경영진 간의 짬짜미 등 난맥상이 심하다.

△감사를 맡기는 회사와 회계법인의 관계를 보면 본질적으로는 감사를 하는 쪽이 갑이어야 한다. 하지만 회계도 수주산업이다 보니 그렇지 못하다. 오너 시스템의 기업 지배구조도 문제다. 전문 경영인에 권한이나 판단, 그리고 책임을 더 실어줄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 중심 구조조정도 부작용이 많다. 금융기관에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계열사로 편입하면 경영인으로 주로 재무담당자가 간다. 재무적으로 ‘클린 컴퍼니’가 될 수 있지만 사업은 망가진다. 사업과 산업을 모르기 때문에 사정이 계속 악화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수출 상황도 어렵다. 언제쯤 나아질까.

△글로벌 경기와 맞물린 문제라 예측이 어렵다. 다만 두 가지 측면에서 짚을 필요는 있다. 우선 제품을 고부가가치화해야 한다. 그리고 수출지역을 확대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해외에 나가 경제협력 방안을 많이 마련했다. 얼마 전 아프리카 순방을 따라 갔는데 여기에 참여한 중소·중견기업인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은 이번 순방단에 참여하게 돼 기업 대외 신인도가 높아져 해외시장을 뚫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더라. 방문 이후 당시 업무협약(MOU) 맺은 것들을 구체화해 중소기업의 수출길을 열어줘야 한다. 수출 지원체계도 원스톱으로 좀 더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신산업 육성도 잘 안 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서비스업을 육성하고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가치 유망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그런데 서비스업이 완전히 규제산업으로 묶여 있다. 기존 이익을 향유하는 기득권 집단 때문이다. 의료가 대표적이지 않나.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풀어나가고 그다음에 국회와 협의해 국가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공감대를 갖는 게 중요하다.

신기술 R&D는 효율성 문제가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율은 세계 1위지만 R&D가 사업화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성과 측면은 여전히 미흡하다. 효율성을 더 높여야 한다.

/정리=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유 원장 약력

△1960년 서울 △1982년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1998년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2007~2013년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 경제연구본부장 △2011~2012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 △2013년~2016년 5월 국민경제자문회의 지원단장 △2015년~ 저출산 고령화 사회위원회 분과장 △2016년 5월~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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