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이신우 칼럼] 중국인에게, 한국인에게

한국의 사드 배치 겨냥한 중국외교

자신의 질서 강요하는 覇道 지향적

'굴종적 눈치보기' 우리 자세도 문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공간에서는 늘 그렇듯 힘센 자들끼리 서로의 능력과 한계를 시험하고자 하는 유인이 작동하게 마련이다. 특히 신흥 강국일수록 실력에 대한 자부심은 넘치는데 그럼에도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의식이 사나운 언어나 폭력적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중국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한국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발표하자 중국 관영 인민일보가 “덕에 의지하면 성하고 힘에 의지하면 망한다”는 역사의 법칙을 잊지 말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정작 이 말을 하고 싶은 쪽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일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이래 중국 왕조의 역사를 관통해온 두 가지 정치 이념이 있다.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다. 왕도는 강대국의 우월성을 영토 확장이나 고압적 외교에서 찾지 않고,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한 선린외교를 추구한다. 반면 패도는 권세와 힘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남에게 자신의 질서를 강요한다.

그렇다면 작금의 중국 외교는 어느 쪽일까. 중국은 지금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 등을 험악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국제분쟁 해결 기구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불복 의사를 분명히 했다. PCA는 유엔해양법협약을 근거로 하며 중국 역시 이 협약의 회원국이다.

한반도의 사드 배치에도 중국의 패도적 질서관이 노골적이다. 사드 배치가 불가능하다면 한국은 핵 개발로 건너뛸 수밖에 없다. 그것을 중국만 모를까. 그럼에도 중국 관영 언론은 한국의 사드 배치가 “중러의 전략적 안전을 훼손한다”면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비외교적 언사까지 내뱉고 있다. 심지어 “(북)조선의 핵 보유에는 평양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심층적인 원인도 있었다”며 동정론을 펼치기도 한다.

그럼 ‘북핵과 미사일이 한반도 및 동북아의 전략적 안전을 훼손한다’는 지적에는 뭐라고 답할 생각인가. ‘한국의 사드 배치에는 서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심층적 원인도 있었다’는 반박 논리는 예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약하면 주변국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 국제정치의 생리다. 그렇다고 사납게 굴어도 남들이 꺼리는 법이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2개국(G2) 국가다. 그러면 그럴수록 누운 풀처럼 자신을 낮출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인민일보가 주장하는 덕치(德治)의 기본 아닌가.

오늘날 지구촌 사람들 보기에 눈에 거슬릴 정도로 중국에 굴종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나라를 들라면 아마 한국을 떠올릴 것이다. 객관적으로 한국에 비해 국력에 약세를 보인다고 할 수 있는 필리핀이나 베트남도 이토록 자기비하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한국은 처지가 다르다고 말한다. 한국은 중국에 대해 무역의존도가 큰 만큼 경제보복을 당할 여지가 더 크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국에 경제보복을 가하기 어려운 무역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중국 수출입의 장기 변동추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 부품·소재 등 중간재 비중은 78.1%나 된다. 설비재까지 합하면 거의 100%다.

중간재나 설비재는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이나 중국 내 수출 기업들의 수요 때문에 수입하는 것이다. 무역보복에 노출될 수 있는 소비재는 고작 2.6%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판에 일부 정치인들은 경제보복론을 떠올리면서 국민 불안감을 선동하는 데 앞장선다.

다른 이들은 중국의 무력 반발을 이유로 사드를 배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한국은 전략무기를 배치할 때마다 중국 측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왜 중국을 향해 우리더러 외부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살라는 것이냐는 말도 하지 못하는가. 사드 배치를 무산시키는 것은 곧 한미동맹의 와해를 의미한다. 동북아 지정학에서 한미동맹 해체와 한국의 중립화야말로 중국 외교 전략이 추구하는 첫 번째 목표다. 그럼 두 번째는?

‘안보는 재화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안보를 잃으면 우리가 획득한 생산력, 문명과 자유, 그리고 독립마저 힘이 우세한 측의 손아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충고다. /이신우 논설실장 shinwo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