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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성당건축 고정 관념 깬...'용인 보정성당'

돌기둥이 하늘로 치솟은 듯 … 고딕양식과 현대적 감각 조화

서남쪽에서 올려다본 보정성당 전경. 육면체를 겹쳐 붙여놓은 듯한 벽면을 세로로 길게 난 창들이 분할하며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다.




보통 성당 건물하면 떠올리는 것은 빨간 벽돌 소재에 검은 첨탑 위 십자가, 낮은 담과 정원의 성소 같은 전형적인 모습이다. 규모가 큰 개신교 교회가 대부분 현대적인 외양을 갖춘 것과 달리 가톨릭 교회는 규모에 무관하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고정관념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콘크리트 골조에 한옥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지어진 서울 용산 천주교 순교성지의 새남터성당을 비롯해 새로운 형태의 건물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성당이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보정성당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 관계자는 “성당 건축에 기본적인 원칙이 있고 교구별로 설계단계에서 심의를 거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것을 걸러내는 수준”이라며 “요즘에는 기존 종교적인 관념을 넘어 지역과 주민 의견에 맞춰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수직성과 빛 그리고 중량감

정육면체 외벽에 세로로 길게 낸 창

보는 방향따라 달라지는 입체감 이채



지난 2012년 봉헌미사를 올린 경기 보정성당은 서울 강남에서 차로 30여분, 지하철 분당선 보정역에서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골프장인 한성CC를 등지고 자리 잡고 있다.

기자가 본 성당의 첫인상은 사각 돌기둥을 뭉쳐놓은 듯 만만치 않은 중량감, 덩어리(mass)의 무게감이었다. 외벽에 세로로 길게 낸 창과 ‘줄눈’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육면체 단위의 단단한 질감이 전반적으로 건물을 이 땅에 잡아주고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입체감이 이채롭다.

정면에서 보면 성당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서서히 솟아오르면서 그 정점에 십자가가 설치돼 있다. 십자가는 마치 쌓아올린 제단 위에 꽂힌 깃발 같았다.

설계자인 한철수 시건축 소장은 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수직성과 빛, 그리고 존재감(중량감)을 기본 요소로 삼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하늘에 대한 갈망’,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 건축양식의 그 수직성이다.

그는 “유럽의 1,000년이 넘은 성당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수직성”이라며 “인간의 하늘에 대한 갈망이 하늘에 닿을 듯한 ‘고딕양식 지붕’으로 표현된다면 반대로 빛은 종교적 감응 이전에 (계시처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신성에 대한 교감의 전초”라고 설명했다.

성당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인 성전으로 이어지는 계단. 가장 밝은 서쪽 면에 배치하고 한 방향으로 길게 동선을 빼 답답함을 없앴다.


●기존 모습과 다른 새로운 성당

밝고 쾌적한 커뮤니티 공간 확보 위해

성당 핵심공간 성전 과감하게 3층으로

그가 설계를 맡게 된 것은 성당 측의 요청이 먼저였다. 2009년 당시 신축을 준비하던 성당 건축위원회 위원이 서울 신사동 도산대로 변에 있는 ‘의화빌딩’을 눈여겨본 것. 의화빌딩은 한 소장이 설계한 작품. 흥미로운 것은 의화빌딩의 경우 육면체를 불규칙하게 쌓아올린 듯한 독특한 외양. 사람들에게 익숙한 국내 성당 모습과는 쉽게 연결되지 않을 형태다.

현상공모를 통해 설계업체로 선정된 후에야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기존 성당 건물 형태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성당 건축위원회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성당을 만들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는 것. 설계를 맡은 한 소장에게는 ‘성당에 대해 정말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면 어떤 모습일지 알고 싶다’는 당부가 더해졌다.

크게 성전과 사제관, 커뮤니티시설로 구성되는 성당에서 그가 성전 다음으로 중점을 둔 것은 커뮤니티 공간이다. 땅값이 비싼 서울·수도권에서는 별수 없이 커뮤니티 공간이 지하에 배치된다. 성전으로 향하는 신도들의 접근성에 대한 배려가 크지만 성전 위에 다른 시설을 배치한다는 것이 역시 부담스럽기 때문.

하지만 지하에 위치한 커뮤니티 공간은 채광·환기 부족으로 어둡고 눅눅해지기 쉽고 그만큼 평상시에는 가기 싫은 곳이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고려를 반영해 보정성당의 성전은 3층으로 올라갔다. 대신 가장 볕이 좋고 밝은 서쪽에 성전까지 바로 이어지는 넓은 완만한 계단을 배치했다.

덕분에 학습관이나 각종 모임 장소가 2층으로 올라갔다. 1층에는 신도·비신도 할 것 없이 오가며 어울리는 로비 공간과 사무·편의시설이 차지했다.



한 소장은 “1층은 아직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도 부담 없이 들어와 어울릴 수 있는 ‘회색지대’로서의 공간”이라며 “교리문답이나 소모임을 가질 수 있는 크고 작은 공간은 2층 동쪽과 공원 방향으로 배치해 밝고 쾌적하다”고 설명했다.

성당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인 성전.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해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제단 뒷벽면을 물들이고 있다.


●절제된 성전…빛으로 채운 제단

천장·벽면 유리로 햇빛 끌어들인 성전

종교 건축물 위한 고민의 흔적 엿보여



성당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성전에 들어선 것은 오후3시가 넘어선 시각.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어두운 저편 제단 뒷벽 십자가상에서 빛을 쏟아냈다. 서쪽 벽면에 길게 낸 창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붉게 푸르게 물들이는 대로 천장 유리에서 쏟아지는 자연 그대로의 빛과 어우러진다. 기도하는 자리는 어둡지만 벽면은 밝다. 동서 벽면에 블라인드처럼 길게 늘어뜨린 나무 재질의 루버가 천장 유리로 들어오는 빛을 끌어들이고 있어서다.

한 소장은 역시나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성전이었다며 “유리로 된 천장과 벽면 유리로 오후의 빛을 제단에 끌어들였지만 그 연출이 과도하지 않도록 신경썼다”며 “역으로 기도에 방해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자리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도 보이지 않게 했다”고 말했다.

놓치기 쉽지만 설계자가 종교건축물로서 고민한 흔적이 하나 더 있다.

조금만 유심히 보면 성당 서편으로는 건물을 두르는 수로 같은 바닥분수가 조성돼 있고 이를 건너 성당 건물에 들어서게 돼 있다. 설계자가 의도한 것은 세속과 성역을 가르는 종교적인 경계의 의미다. 기독교에서의 물이란 새롭게 태어나는 ‘세례’를 떠올린다. 성당에 들어서는 한 걸음, 스스로 신자임을 한 번 더 각인하는 의미에서다. /용인=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성가대와 유아방이 위치하는 2층.


■설계자 인터뷰 - 한철수 시건축 소장

“새로운 울림 줄 수 있어야 사람에게 가장 좋은 건물”



“가장 좋은 건물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울림을 줄 수 있는 건물이죠. 물론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건축가 자신만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구조물로서의 기능성, 건축주의 요구, 도시계획적인 배려, 공공성 등을 모두 정리하고 솎아낸 후에야 자신만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죠”

한철수(사진) 시건축 소장은 건축물로서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만족시키면서도 독자적인 건축철학을 담은, 감동을 주는 건물을 강조했다. 그런 그가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한 프랑스 롱샹성당. 동부의 시골 마을에 지어져 300명 정도 수용할만한 작은 성당이지만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프랑스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이다.



“성당에 도착해서 외부에서만 3시간 가까이 구경했을 정도로 감탄했습니다. 자연 채광과 촛불만으로 만들어내는 성당 내부의 빛도 좋았지만 구석구석의 형태나 비율이 완벽했죠. 계단 핸드레일 같은 디테일까지 본질적이면서 기발하다고 할까요. 사진으로는 1,000분의1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죠.”

그런 그는 자신이 설계한 보정성당에 대해 ‘실패하지 않은’ ‘괜찮은’ 정도라고 평가했다.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판단의 순간을 거칩니다. 종교적인 건축물이라고 해도 건축가의 주관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기존 성당건축의 관행과 ‘성당답다는 것’, 그리고 신이라는 존재에서 오는 어떤 지켜야 할 것들과 건축가로서의 주관·자아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교회건축은 건축가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작업입니다.”/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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