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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제주 돌담의 수난





2003년 태풍 매미가 한반도에 상륙했을 때 제주도에 분 바람의 최대 속도는 초속 60m로 기록됐다. 태풍의 초속이 15m면 간판이 떨어지고 40m면 사람이 날아간다. 철탑이 휘어질 수 있는 초속 60m의 태풍이 몰아쳤는데도 제주도에 널려 있는 돌담의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은 파풍효과(破風效果) 덕분이다. 바람이 돌담을 이루는 돌과 돌 사이 구멍으로 통과하면서 잘게 부서져 힘이 약해지는 원리다. 오늘날 큰 건물을 지을 때 가운데에 구멍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보기 좋게 하는 의미에 앞서 바람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생긴 모습을 보면 뻥 뚫려 있어 약간만 힘을 줘도 무너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배경에는 쌓기의 예술이 있다. 제대로 쌓은 돌담은 한쪽 끝에서 잡고 흔들면 돌담 전체가 흔들리기는 하되 무너지지는 않는다. 이렇게 하려면 돌담을 쌓을 때 돌의 뾰족한 부분을 위쪽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 즉 요철(凹凸)의 들어가고 튀어 나온 부분이 하늘을 보게 한 뒤 그곳에 다시 돌을 지그재그로 올려 돌과 돌이 적당히 맞물리도록 쌓는다.



돌담을 만드는 데 쓴 돌은 주위에서 주워온 것이 아니다. 바위투성이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하나하나 캐어내 옮겨 쌓은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그렇게 오랜 세월 힘든 노동을 참고 견디며 척박한 토양을 밭으로 일궜고 그 경계에 돌담을 쌓아 흙과 씨앗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았다.

최근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한 가정집 돌담의 돌을 가져가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 관광객들이 돌을 하도 가져가 돌담의 일부가 이미 사라졌다고 한다. 사실 이 집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역은 돌을 무단 반출해가는 관광객들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져가면 돌담이 제아무리 ‘흑룡만리(黑龍萬里·검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담의 길이가 1만리에 달한다)’라고 한들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예쁜 꽃일수록 그저 바라볼 뿐 만지지도 꺾지도 말아야 한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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