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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곰팡이' 학교급식 이대로는 안된다

정상범 논설위원

직영 10년에도 비리오명 못벗어

단가인상보다 새는 비용 없애고

비싼 밥값 후대가 떠안지 않도록

무상급식제도 전면 재점검해야





한때 국내 산업계에는 단체수의계약이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기관에서 협동조합과 수의계약 방식으로 물품을 구매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조합이 가격을 협상하고 납품규모를 조절하다 보니 물량을 나눠 먹거나 연고주의가 판치는 폐단을 빚었다. 당연히 품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높은 납품단가에 따른 예산 낭비가 비일비재했다. 결국 정책과 시장의 실패로 결론 나면서 폐지되고 말았다. 강제적이고 획일적인 시장 규제가 낳은 폐단이 지나치게 컸던 탓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이 조달시장에서 특정 부문에 대한 지원을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규정하거나 가점을 부여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학교 급식비리도 불투명한 수의계약의 모양새다. 정부합동부패척결단이 전국의 급식납품 업체와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급식실태를 점검했더니 무려 677곳에서 위반사례가 적발됐다고 한다. 가족과 지인 명의로 유령회사 여러 개를 만들어 입찰에 참여하는가 하면 학교 관계자에게 상품권을 뇌물로 뿌리는 검은 거래가 판치고 있었다.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 그 자체인 셈이다. 조사를 진행했던 관계자들마저 갖가지 위반행위가 적발돼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정부는 물론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등 나름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학교급식이 지금의 직영체제로 바뀐 것은 올해로 10년째다. 지난 2006년 한 급식업체에서 집단 식중독 사건이 발생하자 위탁급식의 문제점이 부각됐고 2007년부터 학교급식은 직영체제로 전환됐다. 정부에서는 직영급식의 만족도가 향상되고 식중독 사건이 줄어드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연일 터져 나오는 비리와 사고로 학생들의 불안감만 키울 뿐이다. 10년 전 직영급식만 도입되면 사고가 없어지고 숱한 비리도 사라진다고 주장했던 정치권의 주장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당시에는 위탁급식을 운영해오던 학교장들이 비리의 주범으로 몰리며 치도곤을 당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제도이든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직영체제에 맞춰 개별 학교에서 일일이 식자재를 구매하다 보니 단가 부담이 높아지고 관리업무까지 가중되는 바람에 학교 측의 부담이 만만찮은 실정이다. 게다가 친환경 식자재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급식 단가를 맞추기 어려워 곰팡이로 얼룩진 감자가 ‘유기농’으로 둔갑해 아이들 식탁에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나오는 대책이라는 게 정부 보조를 늘려 식자재 단가를 대폭 올리고 친환경 급식지원센터를 많이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양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별도의 감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물론 모두가 필요한 과제이지만 직영급식 10년째를 맞아 성급하게 도입된 무상급식의 제도 전반에 대해서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당장 단가를 올리기보다 줄줄 새는 급식비용을 전면 재점검하고 지역마다 들쭉날쭉한 단가 책정문제도 종합적으로 되짚어봐야 한다. 친환경 무상급식도 도입취지야 좋지만 현실적으로 악용당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는 현실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잖아도 해마다 급증하는 복지예산이 내년에는 6.7%나 늘어난 130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증가 속도로 따지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1위다. 억눌렸던 복지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어 앞으로도 가속도가 붙을 게 뻔한 일이다. 명확한 대안도 없이 복지만 내세우다가는 우리 아이들이 시원찮은 밥을 먹고도 머지않아 값비싼 밥값을 치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 해 5조6,000억원의 예산을 퍼붓고도 아무도 만족 못하는 우리네 학교급식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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