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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큐레이터의 ART-B] 인류애를 입은 디자인

박소정 아트에이전시 더 트리니티 대표

‘IDEA 2016’ 금상을 수상한 아프리카의 심한 일교차로부터 아기들의 체온을 지켜주는 썬큐베이터. /사진제공=지오메트리 글로벌 코리아




한동안 뜸했던 아는 동생으로부터 카톡을 통해 연락이 왔다. 세네갈 현지 작가의 그림을 전시하면서 펀딩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1년 전부터 아프리카 세네갈의 작은 마을에 아이들 요리 교육을 하러 건너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살고 있는 세네갈 마을의 전통 가옥들이 우기에 무너져 내려 펀딩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고민을 한보따리 풀어놨다.

처음에는 펀딩 고민에서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집을 어떤 식으로 복구해야 잘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보여주기식 도움’을 피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까지 나왔다. 튼튼한 벽돌집을 지어주는 게 맞는지, 아니면 세네갈의 전통가옥에 철제를 뼈대로 보강하는 등의 방식이 맞는지 고민이라는 것이다.

고민하는 동생에게 ‘적정기술’을 이용한 디자인을 소개해 주었다. 적정기술이란 최첨단 기술 보다 기술이 사용되는 공동체의 여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배려해 만든 개념이다. 이 개념은 인도주의적 접근에서 시작됐지만 시장 지향적 관점의 전환을 맞으며 디자인 산업의 화두로까지 번졌다. 적정 기술 운동에 앞장서 있는 폴락은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 혁명”이라고 했을 정도로 거대한 파장을 낳고 있다.

동생이 살고 있는 세네갈의 마을에도 이미 적용 가능한 적정기술 해법이 있다. 세네갈의 전통 가옥인 ‘까즈’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나뭇가지나 지푸라기로 짓는다. 그래서 우기가 되면 쏟아지는 물폭탄을 못 버티고 무너지는 가옥들이 나온다. 나뭇가지 대신 튼튼한 흙벽돌로 집을 지으면 물폭탄을 버텨낼 수 있어 보였다. 벽돌은 구하기 어렵지만 흙벽돌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유압식 압축기를 이용해 흙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벽돌이 제조 되는 흙벽돌 제조기가 이미 나와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조기가 있으면 우기에도 허물어지지 않는 집을 비교적 편하게 지을 수 있다.

저개발국에서는 이런 식의 적정기술에 바탕을 둔 디자인이 크게 도움이 된다. 2009년 삼성증권의 광고에 등장한 ‘큐드럼’이 그 중 하나다. 큐드럼은 가운데 구멍에 줄을 연결해 손쉽게 굴리거나 끌고 갈 수 있게 만든 물통이다. 커다란 동그란 도넛 모양의 생수통을 떠올리면 된다. 적은 힘으로도 한 번에 많은 양의 물을 옮길 수 있다. 건축가이자 산업디자이너인 한스 핸드릭스는 매일 무거운 물동이를 지고 수 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아프리카 여성들과 아이들을 돕기 위해 큐드럼을 디자인했다.



지난해 칸국제광고제 금상 수상작 ‘럭키 아이언피시’는 귀여운 물고기 모양으로 디자인된 쇳덩어리이다. 스프나 국요리를 만들때 10분 동안 함께 넣고 끓이면 성인 1명이 하루 필요로 하는 철분 섭취량의 75%를 보충할 수 있다. 전 세계에는 철분 부족으로 빈혈을 겪는 인구가 무려 20억 명에 달하는데, 국민 중 절반이 빈혈로 고통 받고 있는 캄보디아의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들과 같이 약이나 보조제로 철분을 보충 받지 못하는 소외층의 해결 수단이 되어주고 있다.

지난달 시상된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중 하나인 미국의 IDEA 디자인어워드의 금상 수상작인 ‘썬큐베이터’도 적정기술 디자인의 한 사례다. 이 디자인 제품은 일교차가 심한 아프리카의 아이들의 밤을 지켜준다. 낮에 열을 흡수해 밤에 발산하는 방식이다. 놀랍게도 썬큐베이터는 한국의 한 광고회사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했다. 인류애를 품은 창의적 에너지를 발휘한 결과물이다.



적정기술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디자이너들만이 아니다. ‘레드닷’ ‘IF’ ‘IDEA’ 등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어워드에서도 ‘독창성’이나 ‘예술성’ 외 ‘사회적 문제 해결 능력’ 이나 ‘친환경’ 부분이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됐다. 전세계 광고계의 대축제인 ‘칸국제광고제’ 역시 ‘공익의 욕구를 주목하라’, ‘브랜드 가치에 사회적 가치를 연결하여 공유가치를 창조하라’ 등의 크리에이티브포인트를 수상 기준으로 정했다.

박소정 아트에이전시 더 트리니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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