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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향한 한걸음 '웨어러블 로봇' 시대가 온다

현대차그룹, 2020년 보행 보조용 상용화 목표<br>의료용·라이프케어링용·산업용 동시 개발한다





‘로봇(Robot)’이라는 용어가 세상에 등장한 건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 1920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1890∼1938)가 발표한 희곡 ‘R.U.R.(로섬의 만능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로봇의 어원은 ‘강제된 노동’이란 의미의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했다.

지난 2012년 런던 마라톤대회에서 클레어 로마스라는 여성은 무려 17일 만에 풀코스를 완주했다. 영국의 보석 디자이너였던 그는 2007년 낙마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장애 환자들의 재활을 연구하는 자선단체 모금을 위해 런던 마라톤대회에 출전했다.

전 세계 매스컴은 이 아름다운 도전에 찬사를 보냈다. 그녀가 42.195km의 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던 건 함께한 가족의 사랑과 ‘리워크(ReWalk)’ 덕분이었다.

리워크는 이스라엘 리워크 로보틱스사가 만든 ‘웨어러블 로봇’이다. 척추가 손상된 환자들을 걷게 해주는 이 제품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받았다. 실제 착용한 환자들은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게 해준 이 로봇의 이름을 ‘자유(freedom)’라고 부르고 있다.

이처럼 웨어러블 로봇은 편리함을 넘어 인간의 행복을 위한 기술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미 미국과 일본, 이스라엘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중국도 웨어러블 로봇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아 각종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톱 클래스의 로봇 기업들도 대부분 상용 웨어러블 로봇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도 이들의 핵심기술 확보 경쟁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기술력을 갖춘 신생벤처를 거액에 인수 합병하는 등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내 웨어러블 로봇 산업의 앞길은 여전히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한국 로봇기술은 선진국에 뒤처져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잠재력만큼은 충분하다.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늦게 뛰어들었지만 가시적인 성과물도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이 의료, 생활, 산업용 웨어러블 로봇을 동시에 개발하고 있고, 학계에서도 글로벌 톱 수준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신기술의 등장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웨어러블 로봇이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될 날이 순식간에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반신 마비 환자의 보행을 돕는 웨어러블 로봇 ‘H-MEX 1.5’를 착용한 현동진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 인간편의연구팀 로봇파트장.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이 상용화를 목표로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과 재활을 돕는 웨어러블 로봇을 만들어 ‘삶의 질’을 높이려 하고 있다. 이미 현대차그룹은 2020년 보행 보조 웨어러블 로봇의 상용화를 목표로 시제품을 만들어 놓은 상태다. 포춘코리아가 현대차그룹의 웨어러블 로봇 개발 산실인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를 찾아가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8월 17일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를 찾았다. 까다로운 보안 절차를 거친 뒤 ‘인간편의연구팀 로봇파트’ 연구실로 들어갔다. 연구원들 중 일부는 1인용 전동식 이동기구인 ‘세그웨이’를 타고 넓은 연구실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학원 실험실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연구실에는 컴퓨터와 각종 공구, 계측 기기는 물론, 러닝머신과 근력 운동 기구처럼 생긴 장비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배낭처럼 생긴 등판에 금속 다리가 달린 웨어러블 로봇 몇 종류가 눈에 띄었다. 거치대에 매달려 있는 웨어러블 로봇을 살펴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H-MEX 1.5 모델입니다. 하반신 마비환자의 이동을 돕는 웨어러블 로봇이에요.” 현동진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 인간편의연구팀 로봇파트장이었다.

웨어러블 로봇은 인간의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거나 신체 결함을 보조하기 위해 ‘몸에 착용하는 로봇’을 말한다. 이 때문에 ‘외골격형 착용 로봇’이라고도 부른다. 웨어러블 로봇 개발은 착용자의 신체 기능을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의 활동을 보조하거나 산업 현장에서 중량물을 처리할 때, 혹은 군대에서 전투임무를 수행할 때 활용할 수 있다.

현동진 파트장은 현재 현대차그룹의 웨어러블 로봇 개발을 이끌고 있다. 미국 UC버클리 대학교에서 제어와 동력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웨어러블 로봇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마윤 카제루니 교수의 지도 하에 웨어러블 로봇 과제를 수행한 바 있다. 이후 그는 메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로봇으로 주목받았던 ‘치타’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말이 총총걸음으로 걷는 형태를 모방한 ‘트롯’에서, 발을 교차하며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겔롭’으로 보행 방식을 전환한 제어 알고리즘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그룹은 2010년 국책 과제로 시작된 ‘착용식 근력증강로봇 기술 개발’ 사업을 주관하며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완료된 이 사업을 통해 현대자동차는 전기식 근력증강 웨어러블 로봇을, 현대로템은 유압식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했다.

지난해까지 현대차그룹의 웨어러블 로봇 개발 주체는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와 현대로템 두 군데로 나눠져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웨어러블 로봇 양산을 위해 올해 ‘현대자동차 현대로템 로봇 협의체’를 만들었다. 그렇게 한 데에는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는 선행 기술을 개발하고, 현대로템은 생산과 품질관리를 담당하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웨어러블 로봇 개발 방향을 크게 세 가지로 설정했다. 하반신 마비 환자를 걷게 도와주는 의료용 로봇, 근력이 약한 사람의 활동을 도와주는 라이프케어링용 로봇, 그리고 산업 현장 근로자들이 쓸 수 있는 산업용 로봇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H-MEX)과 라이프케어링용(H-LEX), 산업용(H-WEX) 로봇을 모두 개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대로템을 통해 군사용 웨어러블 로봇을 연구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를 중심으로 상업용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군사용 웨어러블 로봇은 민감한 보안사항 때문에 개발 사실을 숨기고 있는 국가들이 많다.


하반신 마비 환자를 위한 H-MEX 1.5
현동진 파트장이 직접 H-MEX 1.5를 착용하고 작동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발과 다리, 허리를 H-MEX 1.5에 부착된 벨트에 맨 뒤 버튼 네 개가 달린 지팡이(클러치) 두 개를 집어들었다. 현동진 파트장은 말한다. “H-MEX 1.5의 무게는 15kg 정도지만 스스로 서 있고 발판 위에 사람이 올라서는 것이라 무게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반신 마비 환자들은 몸의 균형을 잡고 의지할 수 있는 클러치가 필요합니다. 로봇이 스스로 서 있지만 그래도 넘어질까 불안해하거든요. 이 클러치를 통해 환자가 로봇을 직접 제어하게 됩니다.”

“지잉~ 지잉~.” 전원을 누르자 허리 뒤쪽에 장착돼 있던 배터리가 작동하면서 로봇 다리가 펴졌다. 현동진 파트장이 상체를 약간 기울여 왼발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클러치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오른쪽 다리의 무릎이 굽혀지면서 걷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다소 어색한 감은 있었지만, 로봇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다시 오른발 쪽에 무게중심을 싣고 버튼을 누르자 이번에는 왼쪽 다리가 움직였다. H-MEX 1.5는 이런 식으로 걸음을 떼어 나갔다. 그 후 현동진 파트장은 바닥에 공구상자를 두고 계단을 오르는 움직임을 선보였고,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시연을 마치자 현동진 파트장이 H-MEX 1.5를 벗었다. 그는 갑자기 스스로 서 있는 H-MEX 1.5를 양팔로 잡고 밀었다. 옆으로 밀리던 H-MEX 1.5는 금세 균형을 잡으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현동진 파트장은 말한다. “사람이 밀어도 쉽게 쓰러지지 않아요. 하반신 마비 환자를 위해 로봇 스스로 균형을 잡게 만들었으니까요.”

H-MEX 1.5는 시제품(프로토타입)이다. 기술 보강과 임상실험을 거치고 가격을 낮춘 뒤 2020년 쯤 양산 모델(H-MEX 2.0)을 시중에 내놓을 계획이다. 연구실에 함께 있던 박상인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 인간편의연구팀 로봇파트 책임연구원은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올해 9월부터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약 3개월간 임상을 거칠 계획입니다. 이후에는 임상 리포트를 작성하고, 전기적, 소프트웨어적 안정성 평가를 거쳐 사용자 매뉴얼을 작성하게 됩니다. 그 다음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인증을 받으면 시중 판매를 할 수 있습니다. 최소 2~3년 이상 걸리는 과정입니다.”

현대차그룹에서 개발 중인 H-MEX는 의료보조기기로 판매할 계획이기 때문에 식약처에서 인증을 받아야 한다(의료기기는 보건복지부에서 인증을 받는다). 현대차그룹은 이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 한양대병원과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의 재활의학과와 임상 협업 체계도 구축했다.

H-MEX 1.5를 만드는데 든 비용은 인건비를 빼고 1억 원 정도다. 하지만 양산을 통해 생산량을 늘리고 보험적용을 받게 되면 가격이 40% 이상 낮아질 것이라는 게 현동진 파트장의 설명이다. “당장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연구 ·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공유가치창출(Created Shared Value · 사회적 약자와 함께 경제적 이윤과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 공유하는 경영활동) 차원의 접근이기도 해요. 장애인이나 노인들의 신체활동을 도와 그들도 사회에서 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자는 거죠.”

현재 웨어러블 로봇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시장성이 큰 분야는 의료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이 확산 되면 신체 마비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이동과 재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공간의 제약을 덜 받으면서 재활치료를 할 수 있고, 물리치료사의 업무를 덜 수도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미국 헬스케어 전문 조사기관인 윈터그린 리서치는 의료 및 재활 용도의 로봇(웨어러블 로봇 포함) 시장 규모가 지난 2013년 4,330만 달러에서 2020년 18억 달러로 대폭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시장조사업체 ABI리서치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웨어러블 로봇 산업 규모가 2014년 6,800만 달러에서 연평균 39.6%씩 성장해 2025년에는 18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 연구원들이 ‘H-MEX 1.5’의 동작 범위를 미세조정하고 있다. 2. 리워크 로보틱스가 만든 웨어러블 로봇 ‘리워크(ReWalk)’를 입고 2012년 런던 마라톤대회를 완주한 클레어 로마스의 모습.


그룹 차원의 로봇 개발 나선 현대차
웨어러블 로봇은 사람의 몸동작을 관찰해 움직인다. 만약 큰 힘을 내는 웨어러블 로봇이 착용자의 의도와 다른 동작을 취하게 되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 웨어러블 로봇의 완성도는 착용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 정확한 동작을 취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H-MEX 1.5는 사람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 ‘압력감지 센서’를 사용한다. 압력감지 센서는 발 받침대에 붙어 있다. 만약 착용자가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을 취하면 센서가 압력 변화를 느끼고, 이 신호에 따라 로봇이 다리를 따라 들어주는 식이다. 압력감지 방식은 제어가 간편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정경모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 인간편의연구팀 책임연구원은 말한다. “웨어러블 로봇 착용자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연구는 여러 각도로 진행되고 있어요. 대표적인 것으로 근육에서 나오는 미세한 전기신호를 읽는 것과 뇌파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연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죠. 그런데 웨어러블 로봇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려면 두 가지 방법 모두 불편한 점이 있어요. 전기신호를 읽기 위해선 착용자의 몸에 난 털을 밀고 전극 패치를 붙여야 합니다. 뇌파를 읽기 위해선 머리카락을 깎고 머리에 전극을 붙여야 해요. 사람 몸에서 나오는 전기 신호들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죠.”

정경모 책임연구원의 설명처럼 머리에 헬멧이나 헤어밴드를 쓰고 뇌파를 컴퓨터로 해석해 사람의 동작을 미리 분석해내는 방법은 사실 수년 내에 실용화 되기 힘들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난 2014년 열린 브라질 월드컵 개막식에선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이 방법을 차용한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시축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연구책임은 뇌과학 권위자인 미겔 니콜레리스 미국 듀크대 교수팀이 맡았다. 그러나 개막식까지 보행기능을 완성하지 못했고, 시축자는 경기장 주변에서 다리를 움직여 공을 한 번 툭 건드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동작 예측’ 방법도 웨어러블 로봇에 적용되고 있다. 사람이 무릎에 힘을 얼마나 주고 있는지, 무릎과 발목, 고관절의 각도는 얼마나 구부러졌는지를 측정한 후 다음 동작을 예측해 정확하게 함께 움직여주는 방식이다.

동작 예측 기술은 완성도 높은 웨어러블 로봇 상용화를 앞당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 연구진도 이 방법을 쓰고 있다. 로봇 등판에 들어 있는 컴퓨터가 관절의 각도를 감지한 다음 이 각도의 변화에 따라 어느 정도 동작을 예측하고 힘을 보내준다. 현동진 파트장은 “가까운 미래에는 동작예측 방식이, 먼 미래에는 뇌 신호 측정 방식이 보편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현동진 파트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 고객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모빌리티(이동수단)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미래 비전입니다.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여러 한계와 문제점으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내자는 겁니다. 물론 고령화 사회가 됨에 따라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로봇 분야에서 선도적인 기술 리더십을 구축하려는 이유도 있죠.”

많은 전문가들은 “대규모 조립장치 설비 기반을 가진 자동차 업계가 로봇 개발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동차와 로봇 모두 많은 부품이 필요한 조립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급격한 관심을 끌고 있는 자율주행차량의 경우, 센서와 액추에이터(전기, 유압, 압축공기 등을 이용하는 구동장치), 위치 제어 알고리즘 같은 다양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는 로봇 개발에도 고스란히 쓰이는 기술들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는 제네시스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차량으로 서울 강남의 영동대로를 1km 달리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당시 시연을 통해 주행 차선 유지, 서행 차량 추월, 기존 차선 복귀 등 실제 주행 환경 속에서 적용 가능한 기술을 선보였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자율주행차를 선보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자율주행과 관련해 현대차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2만 862건에 이르고 있다. 이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최근 전기차 개발 확산 움직임도 자동차 회사의 로봇 개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래에는 ‘누구나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말한다. “3D 프린터로 차체를 만들고 전기동력 시스템을 사 넣으면 자동차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엄청나게 많은 전기차 제조사가 등장할 수 있다는 거죠. 한 마디로 자동차 사업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이건 자동차 회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에요.” 물론 아직은 먼 미래의 얘기지만,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만큼 실현 가능성이 높은 전망이다. 따라서 자동차 회사도 다른 사업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 인식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이 기존에 가진 설비와 기술력을 응용할 수 있는 로봇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웨어러블 로봇 상용화 나선 로봇 선진국들
최초의 웨어러블 로봇은 1960년대 미국 GE가 개발한 ‘하디맨(Hardimen)’으로 알려져 있다. 하디맨을 입은 착용자는 4.5kg의 힘을 이용해 110kg의 물건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무려 25배나 되는 강력한 파워를 냈던 셈이다. 하지만 650kg에 달하는 무게와 불안정한 동작 때문에 실용화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후 웨어러블 로봇은 센서, 제어, 소프트웨어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군사, 의료, 산업 분야로 널리 발전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웨어러블 로봇 개발은 1990년대 말 들어 시작됐다. 미국 국방성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이 군사용 웨어러블 로봇 개발 프로젝트를 발주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후 미국 방위산업체인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온이 실전 배치가 가능한 수준의 군사용 웨어러블 로봇을 선보였다. 록히드마틴 산하의 엑소바이오닉스가 개발한 ‘헐크(HULC)’를 착용하면 90kg짜리 군장을 메고 시속 16km로 산악지대를 달릴 수 있다. 엑소바이오닉스는 이 기술을 이용해 재활치료용 ‘엑소(Ekso)’와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산업용 ‘포티스(FORTIS)’를 개발했다.

선두 주자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웨어러블 로봇을 이끄는 국가로 일본과 이스라엘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은 혼다와 도요타가 그 중심에 서 있다. 혼다는 지난 2000년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로봇 ‘아시모(ASIMO)’를 선보인 뒤 로봇 기술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3년에는 노약자를 위한 보행 보조 웨어러블 로봇 ‘보행 어시스트(Honda Walking Assist)’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제품은 허리 쪽에 붙어있는 센서로 보행 패턴을 인식해 적절한 타이밍에 허벅지를 밀어 힘을 덜 들이고도 걷게 해주는 로봇이다.

도요타도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도요타는 올해 초 로봇 ·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세우고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출신 길 프랫 박사를 초대 소장으로 선임했다. 구글의 로봇 제작업체인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올해 5월 인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직립보행이 가능한 2족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ATLAS)’를 개발했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는 업체다.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올해 2월 아틀라스의 작동 모습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175cm의 키와 81kg 무게를 가진 아틀라스는 실내와 험지에서 모두 작동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영상 속 아틀라스는 센서를 이용해 스스로 문을 열고, 장애물이 가득한 눈 덮인 산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걷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요타는 “2019년부터 집안 청소, 노인 및 유아 돌봄 보조 등에 사용되는 가정용 로봇의 양산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라며 “일반 가정에 월 9만 엔에 이 로봇을 임대할 것”이라고 밝혀 업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쓰쿠바 대학의 교내 벤처로 출발해 2004년 설립된 사이버다인도 로봇 개발 실력을 뽐내고 있다. 사이버다인이 개발한 ‘할(HAL)’은 1998년 처음 개발돼 오랜 기간 성능 개선을 거쳐왔다. 착용자의 피부에 붙인 센서로 근육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예측한 뒤 모터가 다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옮기도록 도움을 준다. 미국 FDA 의료기기 승인을 받은 이후 일본 후생노동성은 할을 의료보험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스라엘에선 리워크 로보틱스가 웨어러블 로봇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리워크 로보틱스가 내놓은 ‘리워크(ReWalk)’ 역시 미국 FDA 의료기기 승인을 받은 재활용 웨어러블 로봇이다. 2012년엔 하반신 마비 환자가 리워크를 착용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웨어러블 로봇이 상용화 되기엔 아직 기술과 시장성 면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비싼 가격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엑소바이오닉스가 개발한 헐크는 대당 25만 달러, 재활 로봇 엑소는 대당 10만 달러, 리워크 로보틱스가 만든 리워크도 7만 달러에 달하고 있다. 가장 싼 축에 속하는 사이버다인의 할도 최소사양 제품이 2만 달러에 이르고 있다. 장재호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부품을 착용자의 체격이나 특성에 따라 맞춤 제작해야 하는 것도 가격이 비싼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의료용이나 생활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의 경우 앞으로 양산 체제를 갖추고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소비자의 부담이 줄어들 겁니다. 웨어러블 로봇 가격이 지금의 3분의 1 정도로 떨어지면 대중화가 가능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어요.”




1. 미국 록히드마틴 산하의 엑소바이오닉스가 개발한 산업용 웨어러블 로봇 ‘포티스(FORTIS)’.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 2. 엑소바이오닉스가 개발한 ‘헐크(HULC)’. 90kg짜리 군장을 메고 시속 16km로 산악지대를 달릴 수 있다. 3.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2족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ATLAS)’. 직립보행이 가능하다.


기술 주도권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
선진국 정부는 자국의 (웨어러블)로봇 산업 지원에 일찌감치 팔을 걷어붙였다. 미국은 2011년 제조업 부활에 로봇을 활용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 ‘국가 로봇계획 프로젝트’에 서명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매년 로봇 연구 · 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2014년 총리 직속 기구로 ‘로봇혁명 실천부서’를 설치하고 ‘로봇 신전략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에만 로봇 예산으로 160억 엔을 책정하며 로봇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로봇 산업을 키우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SPARC 프로그램(각국 주력 산업과 로봇 기술 융합)’ 도입을 통해 현재 220억 유로인 로봇 시장 규모를 오는 2020년까지 500억~620억 유로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로봇산업협회는 국내 로봇 시장 규모를 2조6,466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제조용 로봇(1조9,672억 원)의 점유율이 74.3%를 기록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로봇 부품(3,409억 원) 12.9%, 서비스용 로봇(3,385억 원) 12.8%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국내 주력산업인 정보기술(IT), 자동차, 조선업은 자동화 공정을 도입하면서 생산성을 향상했습니다. 그 결과 제조용 로봇을 중심으로 국내 로봇 시장 규모가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 있었습니다.”

국내 로봇 산업의 앞길은 순탄하다고 할 수 없다. 우선 한국 로봇 기술이 선진국에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은 2014년 말 기준 미국의 로봇 기술을 100으로 봤을 때 국내 수준은 81.1 정도라고 평가한 바 있다(일본은 96.9, 유럽 93.2, 중국 68.4로 조사됐다).

지금은 미국과 일본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중국의 성장세도 무섭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해외 굴지의 로봇 기업을 인수해 빠르게 로봇 기술력을 따라 잡고 있다. 글로벌 산업용 로봇 시장은 독일의 쿠카(KUKA)와 스위스의 ABB, 일본의 야스카(Yaskawa)와 파낙(Fanuc) 등 상위 4개 업체가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은 가전업체 메이디가 올해 8월 독일의 산업용 로봇업체인 쿠카를 인수하며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중국 사모펀드 AGIC 캐피탈이 이탈리아의 산업용 로봇팔 제조사인 지마틱(Gimatic)을 인수하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중국은 2014년 세계 최대 산업용 로봇 시장으로 등극했지만, 아직은 자국 생산 비율이 낮은 편이다. 국제로봇연합회(IFR)는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 내 자체 생산 로봇의 비율이 33.3%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2013년 24.6%에서 크게 확대된 것이다. IFR은 올해 이 비율이 35.8%로 증가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도 로봇 산업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4년 6월 ‘세계 1위 로봇 강국 도약’을 천명한 바 있다. 오는 2020년까지 세계 로봇 시장 점유율 45%를 달성하겠다는 목표 하에 적극적인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국내 로봇 산업은 미국, 일본, 독일 등에 비해 기술 수준이 떨어지고, 후발주자인 중국의 추격도 받고 있습니다. 국내 모든 산업 분야의 고질적인 문제죠. 특히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이 낮아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고 있습니다. 제품이 제조용 로봇에 치우쳐 있는 것도 약점으로 볼 수 있어요.”

그러나 현동진 파트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기계적 성능은 국내 기술 수준도 매우 높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 기술을 가진 건 대단한 일이죠. 현대차그룹은 지속적인 R&D를 통해 부품 국산화는 물론, 완제품 수출까지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은 앞선 기술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선두 자리 굳히기에 들어갔다. 세계 최대 산업용 로봇 시장인 중국은 막강한 자본력으로 굴지의 업체를 사들이고 있다. 로봇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로봇 세상을 선도적으로 열기 위해선 우리도 정교한 성장 전략을 세우고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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