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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대통령 트럼프

손철 뉴욕특파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해 그가 공화당 경선 후보 17명 중 한 명일 때는 경선판의 불쏘시개 정도로 생각했는데 틀렸다. 올 초 공화당 경선이 4파전으로 압축됐을 때도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주 상원의원)나 테드 크루즈(텍사스주 상원의원) 같은 주류 후보들이 단일화해 말도 안 되는 ‘트럼프 카드’를 결국 솎아낼 줄 알았다. 보기 좋게 예측은 또 빗나갔다. 트럼프는 자신의 이름처럼 ‘으뜸패’가 돼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등극하자 “트럼프는 미국을 위험에 빠뜨릴 사람”이라고 대놓고 반대했다. 선거라면 져 본 적이 없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가 후임이 될 가능성에 대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나 있을 일”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코미디가 현실이 될지도 모를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인종차별적 막말에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트럼프를 향해 미국민들도 홀딱 벗긴 그의 누드상을 전국 각지에 세워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했지만 트럼프는 여전히 강력한 다음 백악관 주인 후보다.

이쯤 되면 트럼프가 아니라 미국 유권자들에게 실망하게 되고 ‘세계 최강대국 국민의 정치적 민도가 이것밖에 안 되나’싶다. 오죽하면 정치의 달인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트럼프 지지자의 절반은 개탄할 만한 집단”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급히 수습했을까. 미국민의 4분의1가량을 ‘형편없는 수준’으로 평가한 것이 클린턴의 본심인데 외국인 입장에서는 사실 트럼프 지지자 대부분을 향해 개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뭔가가 있다. 기존 정치권에 등 돌린 유권자의 분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트럼프의 식지 않는 지지의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자 클린턴이다. 퍼스트레이디와 상원의원·국무장관을 지낸 클린턴은 한국의 ‘여의도 정치’와 비슷한 ‘워싱턴 정치’의 대명사다. 민주당도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바닥 민심을 발판으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공화당과 달리 클린턴으로 상징되는 주류 기득권층이 먼저 쌓아놓은 벽에 막혔다.

클린턴은 여기에 고액 강연료 등으로 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인 ‘돈만 밝히는 변호사’로 부부가 함께 낙인이 찍혀 있다. 공화당의 유명 선거 컨설턴트인 릭 윌슨이 “만약 힐러리가 아닌 다른 후보였다면 25%포인트 차이로 트럼프를 앞서고 있을 것”이라고 실토할 정도다.



그나마 대통령감으로 능력에서 비교 우위를 지켰던 클린턴은 최근 2~3차례나 몸을 가누지 못하며 휘청거려 대통령으로 가장 중요한 자산인 건강까지 적신호가 켜졌다. 반면 트럼프는 잇따른 대형 테러 사건에 표심을 쉽게 끌 수 있는 강경한 반(反) 이민정책이 부각돼 재미를 보고 있다. 누가 봐도 못난 트럼프의 인성과 자질에 말 못하고 앓으며 인터넷 등 막후에서 소액 선거자금을 1억달러 넘게 밀어주는 데 만족했던 풀뿌리 지지자들이 “그래도 클린턴보다는 낫다”는 자신감으로 이제는 집 앞마당과 차에 공개 후원 팻말을 세우거나 붙이며 세를 키워가고 있다.

객관적으로 말해 최대 동맹국의 최고사령관이 바뀌는 승부의 결과를 알 수 없는 형국인데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기존 한반도 상황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후보가 차기 미 대통령이 될지 모르는 리스크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안보 격랑기에 별 대비가 없다. 외교부라 입은 있다. 미 대선 특성상 경합주의 승리 여부가 중요한데 여기서 클린턴이 아직 우위에 있고 설사 트럼프가 승리해도 미 의회가 중심을 잡을 것이라는 기대와 우리는 물론 중국·일본 등 어느 나라도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와 특별한 관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해명이다.

국가의 운명을 주사위 던지듯 불확실하게 관리하다 만일 트럼프 시대가 열리면 북한과 같은 출발선에서 대미 외교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얘기인지 ‘필사의 대책’보다는 ‘어쩔 수 없다’는 관료들의 보신주의에 수백·수천억원의 혈세를 해외에서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클린턴이 미국 첫 여성 대통령의 역사를 쓰더라도 트럼프 측과 확실한 라인 하나쯤은 확보하고 있었다는 비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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