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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낯선듯 익숙한 공간...'도천 라일락집'

문묘 … 성균관 … 골목길 … 고즈넉한 풍경과 하나가 된 집

서울 창덕궁과 성균관대 사이 골목길에 있는 도천라일락집은 고(故) 도상봉 화백을 기념하는 장소이자 개인 주택이다. 성균관대와 밀집한 다세대주택들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제공=J. COURT 건축사사무소




고즈넉한 분위기의 창경궁에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인 대학로에 이르게 된다. 그 중간 지점에는 다가구주택들이 밀집한 주택가 골목으로 꺾어져 성균관대 캠퍼스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이 길이 캠퍼스를 둘러싸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는 고(故) 도상봉 화백을 기념하는 장소이자 개인 주택인 ‘도천라일락집’이 자리 잡고 있다. 도상동 화백은 이곳에서 1930년대부터 생활하면서 작업활동을 했다. 주택가 골목길에서 바라본 도천라일락집은 길 건너의 성균관대 문묘 건물과 다가구건물들로 이뤄진 풍경 가운데 하나다. 이질적인 두 가지 풍경 사이에서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무심코 지나치면 알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면 거주하는 사람, 주변 공간과의 조화를 위해 설계자가 고민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설계를 맡은 정재헌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는 “존재감은 없되 묵묵히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고 설명했다.





●존재감 있지만 튀지 않는 설계

붉은색 벽돌 1층과 고동색 벽돌의 2층

길 하나 건너 문묘와 다른 듯 닮은 느낌



도천라일락집은 ‘ㄱ’자 모양으로 벽처럼 세워진 2층 고동색 벽돌 건물과 그 옆에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소박한 느낌의 1층 건물로 구성돼 있다. 2층 건물은 주거 공간이고 1층 건물은 도상봉 화백의 작업실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나지막한 벽돌 담장이 서로 다른 모습의 두 건물 사이를 이으면서 중앙의 마당을 둘러싼다. 때문에 외부에서는 건물 내부의 창과 마당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 교수는 이러한 공간 배치와 관련해 “집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사람을 보호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그의 건축 철학을 언급했다. 거주 공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목적을 우선 고려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가 설계에서 고려한 요소는 장소가 지닌 역사적 의미다. 정 교수는 “도천라일락집 터는 조선시대에 임금이 창덕궁에서 성균관으로 이동하는 길에 위치해 있다”며 “문화재이자 시간성을 지닌 성균관과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 고민의 답은 길 건너편 성균관대 캠퍼스 안의 문묘와 도천라일락집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찾을 수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건물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이질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도천라일락집 2층 건물의 고동색은 건너편 문묘와 담장의 기와 색과 닮았다. 1층 건물을 이루는 벽돌의 붉은색도 문묘에 사용된 색과 같은 느낌이다. 정 교수는 “어수선한 분위기의 주변 건물들을 어두운 색 배경(2층 건물)으로 정리하고 문화재와 새로 짓는 건물(도천라일락집)이 각각의 시대성을 표현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건물을 이루는 벽돌의 질감이 내부와 외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특징이다. 내부의 벽돌은 표면이 반듯한 모양인 반면 외부 벽돌은 표면이 울퉁불퉁해 거친 느낌이다. 내부는 편안한 분위기를, 외부는 햇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를 각각 연출하기 위한 장치다. 1층 건물에 사용된 붉은색 벽돌의 질감도 벽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정 교수는 “설계도면으로 표현되지 않는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건축 현장을 100번 넘게 찾아 작업자들과 대화하고 직접 벽돌을 깨서 질감을 보여주기도 했다”며 “좋은 건물은 설계자가 원하는 벽면의 질감과 같은 ‘디테일’이 구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천라일락집의 구석구석에 그의 정성이 묻어 있는 셈이다.

위에서 바라본 도천라일락집은 붉은색 벽돌의 1층 건물과 ‘ㄱ’자 형태 고동색 벽돌의 2층 건물, 담장이 마당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제공=J. COURT 건축사사무소


도천라일락집은 내부에서 마당을 중심으로 창을 통해 반대편 공간을 볼 수 있는 한옥식 구조가 적용됐다. /사진제공=J.COURT 건축사사무소


● 건물과 각별한 인연 이어온 설계자

도상봉 화백 손자와 고등학교 반 친구



“라일락 그림처럼 우아함 담으려 노력”



정 교수와 도천라일락집의 인연은 각별하다. 그는 도천라일락집이 있는 명륜동, 혜화동 일대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도천라일락집이 위치한 공간의 특성, 역사가 삶의 일부인 것이다.

건축주는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이자 도상봉 화백의 손자인 도규영씨다. 도규영씨는 1970년대에 지어진 기존의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부지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잘 팔리지 않았고 할아버지의 유산을 팔고 떠나기도 어렵다는 생각으로 고민한 끝에 2012년 9월경 정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에 정 교수는 “역사가 담겨 있는 장소를 후손들이 새 기억으로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과 함께 “편안한 집이 도상봉 화백의 기념관과 합쳐진 공간으로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도규영씨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새 집을 짓기로 했다.

정 교수는 2014년 3월 도천라일락집의 설계를 시작해 같은 해 8월부터 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는 “설계하면서 항상 도상봉 선생이 계셨던 곳을 생각하고 선생의 작품을 분석했다”면서 “선생이 주로 그리셨던 라일락 그림의 우아하고 편안한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설계한 새집의 이름을 도상봉 화백의 호인 도천과 라일락을 합친 ‘도천라일락’으로 정했다. 2015년 5월 완공된 도천라일락집은 같은 해 9월 국내 건축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서울시 건축상 대상에 선정됐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도천라일락집의 외부에는 울퉁불퉁한 표면의 벽돌이 사용돼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건물 내부 방향에는 반듯한 표면의 벽돌이 차분한 분위기를 각각 연출한다. /사진제공=J.COURT 건축사사무소


[설계자 인터뷰] 정재헌 교수 “건축은 도시를 만드는 예술 … 공간이 지닌 의미 생각해야”



“우리 사회는 도시를 만드는 예술인 건축을 경기 부양, 경제 성장의 수단인 ‘건설’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천라일락집의 설계자인 정재헌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건축의 가치 중 많은 부분이 왜곡돼왔다”며 이 같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도시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현대에 건축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에 왜곡된 건축의 가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현대인의 삶의 터전인 도시는 건축물의 집합”이라며 “우리가 파리·로마 등 유명한 관광지를 가서도 보는 것은 건축물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 교수는 최근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재개발에 따른 집값 상승 현상을 비판했다.

그는 “집이 하루 일과를 보내는 휴식처가 아니라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활용되다 보니 사람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유목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며 “집이 여러 세대를 이어가며 오래 사는 공간이 되지 않으니 잘 지을 필요도 없어지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건축 가치의 왜곡이 건축물의 수준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재헌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 /사진=신은동 인턴기자


정 교수는 “서울 세종로·종로의 역사적인 의미가 강남과 같을 수는 없다”면서 공간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럽에서 빅토르 위고, 파블로 피카소 등 유명 인물들이 거주했던 건물을 역사적인 장소이자 관광지로 보존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근대 회화의 거목인 도상봉 화백을 기념하는 장소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도천라일락집 설계에 나선 계기를 설명했다.

거주자와 공간의 역사적인 의미를 중시하는 그의 건축 철학은 도천라일락집에 고스란히 반영돼 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건물 배치와 주변의 성균관대 문묘, 다가구주택들과 조화를 이루는 외관으로 구현됐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의 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과거의 기억들을 부수고 없애기만 하다가 요즘 들어서는 보존하기 시작했다”면서 “대단위 개발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소자본 활동이 자생적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작은 상점들이 골목길에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는 서울 홍대거리·가로수길·삼청동길이 그 사례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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