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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쓰리고]기분 좋은 낯섦, 충칭훠궈

<연재를 시작하며>

‘이걸 먹느냐 저걸 먹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의 평생 숙제, ‘오늘 뭐 먹지?’

광고 냄새 솔솔 나는 먹방 후기, 맛집 검색하면 만날 나오는 그 집만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날까 고민인 독자들을 위해 좀 먹는다(?) 하는 서울경제신문 기자들이 갑니다. 고스톱에서 쓰리고를 외치듯 과감하고 화끈하게, 일단 단점을 씹go! 다음엔 장점을 빨go! 마무리는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맛보go! 끝냅니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본격 미식 수다 칼럼. ‘맛집 쓰리고’입니다.

기분 좋은 낯섦, 충칭훠궈

2·7호선 대림역 8번 출구와 12번 출구 사이에는 서울 속 ‘중국인 거리’가 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관악구 신림동·구로구 가리봉동 등지에 중국인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상권이다. 중국인 거리라는 말마따나 거리에 도착하면 낯선 풍경이 펼쳐지는데, 중국이 아니고서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한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귀에 들리는 말도 한국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다. ‘소중국’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대림역 중국인 거리 전경. 수 많은 한자들이 눈으로 밀려 들어온다. /변재현 기자




‘맛집 쓰리고’가 처음으로 찾은 곳은 대림역 근방에 있는 ‘충칭훠궈’다. 훠궈의 발생지인 충칭을 딴 이름처럼 이 집 음식 맛은 중국 현지에서 먹는 느낌이라는 찬사를 받고는 한다. 한국에 사는 중국인들이 단골집으로 손꼽는 이곳에서 중국 냄새를 맡아 보자.

One go! 과감하게 씹고!

‘숨은 한국어 찾기?’

대림동 등지에 중국인들이 모여 살게 된 계기는 1998년 외환위기라는 분석이 있다. 노태우 정부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자 그때까지 적대적이었던 국가와의 수교를 활발하게 추진한다. ‘북방외교’의 시작이다. 이 같은 노력은 1992년 중국과의 정식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결실을 맺게 되는데, 그동안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없었던 중국인들의 방한이 이때부터 허용됐다.

그러면 왜 하필 대림·신림·가리봉동일까. 이곳은 구로공단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주로 살던 주택가였다. 하지만 구로공단에서 영업하던 수출 기업들이 외환위기로 타격을 입으면서 중국·동남아 등 인건비가 싼 나라로 공장을 옮기게 됐다. 일자리가 없어진 한국인이 떠나 남게 된 빈자리를 바로 중국인이 메웠다는 이야기다.

가게에 올라오면 모든 곳이 중국어로 도배돼 있어 ‘정말 여기가 중국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눈을 부릅뜨고 한국어를 찾아보면, 선간판에 적힌 알 수 없는 ‘58통청’과 ‘재료 인상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가격을 올린다’는 공지, ‘남기면 벌금’이라는 경고가 전부다.

충칭훠궈 앞에 세워놓은 선간판. 도대체 ‘58통청’은 뭘까? /변재현 기자


음식이 비치된 뷔페 코너 위에 중국어로 쓰여진 안내문이 붙어있다. 무슨 뜻일까? /변재현 기자


이 부분은 친절하다. /변재현 기자


당황하지 않고 직원 누님을 불러도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다. 이분들도 한국어를 잘 못한다. 바디랭귀지를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변재현 기자의 발 모양 손. 이 집은 돼지 족발을 푹 삶아 육수를 뽑았다고 한다.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조리법을 알아내기 위해 손으로 발을 만들고 흔들었다. /변재현 기자


그냥 중국에 왔다고 생각하자. 여행 온 기분으로 현지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물론 예민하면 안 된다.


Two go! 화끈하게 빨고!

‘별 게 다 있네’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는 1920년대 충칭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충칭은 수운 교통이 발달한 중국에서도 내륙 한가운데에 위치한데다가 큰 강이 모여 있어 자연스럽게 교통 요충지가 됐다. 충칭에는 전국 각지의 식품이 모여들어 유통업이 성행했는데, 이곳의 상인들은 몇 가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고기를 팔고 나면 내장, 발 등 부속 부위가 남아 이를 처치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는 점과 내륙 특유의 일교차 심한 날씨.

사람들은 남은 부속 부위도 처리하고 추위도 나기 위해 뜨겁고 매운 국물을 끓여 음식을 담가 익혀 먹었는데, 이것이 훠궈의 유래다. 고추기름 향 때문에 내장 냄새도 덜 나고, 남은 음식이니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 당시 백탕은 없었다. 백탕은 1990년대 홍콩에 훠궈가 들어오자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홍콩인들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홍탕이 백탕보다 70살은 더 먹은 셈이다.

유래 때문인지 중국에서는 훠궈 음식점에 방문한 관광객들이 재료가 하도 특이해 당황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소 천엽, 간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먹는 내장뿐 아니라 돼지 목구멍, 토끼 발, 소 눈도 나와서다.

그래도 어느 정도 현지의 맛을 느끼려면 독특한 재료가 가득 있어야 하지 않을까. 충칭훠궈는 이 점에서 ‘중국 정통 훠궈’라는 말을 붙일 만하다. 다양한 재료가 잔뜩 갖춰져 있다. 이 집의 강점은 ‘무한리필’. 한 귀퉁이에 있는 뷔페코너에는 온갖 해산물과 채소가 쌓여 있다. 알아서 집어오면 된다. 고기는 점원에게 직접 주문해야 한다. 고기도 계속 새로 채울 수 있는데, 너무 많이 시키지는 말자. 한 사람에 한 접시면 충분하다. ‘남기면 벌금’이라는 당부는 친절하게 한글로 적혀 있어 중국어 못한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뷔페 코너에 마련된 기본적인 채소들. 각종 고수(아랫줄 오른쪽)도 있다. /변재현 기자


새우·꽃게·갑오징어 등 각종 해산물. 천엽(윗줄 오른쪽)도 있다. 밑에 줄에 보이는 미색 빛깔 음식은 두부다. /변재현 기자


소 발. 삶으면 연골이 부드럽게 익어 오물오물 씹는 맛이 좋다. /변재현 기자


부화하기 전 달걀인 곤계란도 있다! /변재현 기자


훠궈를 먹을 때 푸짐한 재료를 퐁당퐁당 넣어 먹으면 행복감이 새끼발가락부터 머리털 끝까지 솟아 오른다. 10년 동안 안 빤 행주 같은 냄새가 니글니글 나는 양고기는 홍탕에 넣어 먹으면 고추기름에서 나는 알싸한 향이 냄새를 잡아줘서 풍미가 산다. 소고기는 백탕에 익히자. 족발을 끓여서 만든 적당히 묵직한 국물이 소고기 향미를 돋워준다.

출격 준비된 훠궈 재료들. 양고기와 해산물이 반짝반짝 빛난다. /변재현 기자




국물이 끓으면... /변재현 기자


이렇게 넣어 먹자. /변재현 기자


양고기가 다 익었다. /변재현 기자


양고기+홍탕+땅콩소스의 조합이 일품. 입에 넣으면 처음으로 땅콩 향이 고소하게 퍼지고 고기를 씹기 시작하면 매콤한 고추향과 양고기 잡내가 섞인다. 역하지 않은 양고기 향미! 제발 다른 소스는 거들떠 보지 말고 땅콩 소스를 먹자! /변재현 기자


정체 불명의 다른 소스들. 어차피 무슨 종류인지 중국어로 쓰여 있어서 정체를 알 수도 없다. 이것저것 쭉쭉 짜보다가 캡사이신과 취두부 소스를 입에 털어 넣고 말 못할 쾌락을 느끼지 마시길. /변재현 기자


이 가게에서 꼭 먹어야 할 재료를 꼽으라면 완자를 선택하겠다. 생선살이 푸짐하게 들어가고 밀가루 냄새는 나지 않아 입안에서 탱탱하고 몽글몽글하게 돌아다닌다. 종류도 많다. 생선살만 들어간 기본 완자뿐 아니라 문어와 함께 반죽해 짭조름한 완자도 있으니 이 집에 오면 꼭 먹도록 하자.

보글보글 끓고 있는 훠궈. 백탕에 동동 떠 있는 동그란 것이 완자다. /변재현 기자


마무리로는 멍빈누들을 추천한다. 녹두 전분으로 만든 당면인 멍빈누들은 중국 음식에서 곁들임 음식으로 자주 나온다.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우리나라 당면보다 더 얇다. 너무 많이 삶으면 퍼지고 특유의 식감을 느끼기 힘들다. 살짝 데쳐서 먹자. 입에서 오돌도돌 돌아다니는 식감이 재밌다.

이게 멍빈 누들이다. /변재현 기자


익히면 이렇게 된다. 홍탕 육수가 적당히 뱄다. /변재현 기자


Three go! ‘시간을’ 맛보고!

훠궈는 낯선 음식이다. 아마 냄새 때문일 테다. 비슷한 샤브샤브 음식인 태국 수끼는 냄새가 톡 튀지는 않아 부담이 없으니까. 하지만 훠궈는 다르다. 탕을 끓일 때부터 올라오는 매콤한 기름 향에 양고기 냄새, 내장냄새…… 음식을 먹는 건지, 냄새를 먹는 건지 알기도 힘들 정도니까. 양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니 냄새에 취해서였을까,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육포를 뱉었다. 열세 살 때 옆집을 고치던 외국인 형이 준 육포였다. “옆집에 말을 잘 못하는 형이 있어”라는 나의 말에 “아시아 어드메서 왔다고 하더라”고 엄마는 답했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을 처음 봤던 때로 기억한다. 묘하게 내 생김새와 비슷하면서 다른 모습이 신기해서였을까, 가끔 그가 알려주는 자기 나랏말이 재미있어서였을까. 나는 옆집에 놀러 가 시멘트를 뒤집어쓰고 돌아오고는 했다.

그 육포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날리던 시멘트가 물에 젖어 굳었던 날, 형은 주머니에서 처음 보는 봉지를 뜯어 바알간 것을 건냈다. 처음 맡는 냄새가 났다. 입에 물었더니 코로 바로 올라왔다. 퉤하고 뱉었다. 그는 처음에는 눈이 살짝 동그래지더니 금세 입꼬리를 올리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시아 어딘가서 온 냄새는 그렇게 낯설었다.

양고기를 삼켰다. 열 해가 지난 대학생이 된 해였다. 빨간 국물에 담가 익혀 먹으니 백탕과는 다른 풍미가 입에 돌았다. 꼬리꼬리하니 성가시던 냄새도 향미가 됐다. 낯선 냄새와 맛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됐다. 처음 먹는 훠궈 맛은 그렇게 각인돼 있다.

신기했다. 발간 고기든 빨간 국이든 낯설었다는 점은 같았는데, 왜 두 음식에 대한 내 반응은 딴판이었을까. 달라진 것은 내 나이다. 한 살 두 살 먹으며 감각이 둔해졌을 게다. 역설적이게도 무뎌진 코와 입은 낯선 것을 새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도량이 됐다. 쇠를 달궈 펴면 그릇이 되듯, 예민하던 감각은 둔해지며 경험을 받아들였다.

네 살을 더 먹었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때보다 신입사원인 지금 감각은 더 둔해졌을 테다. 우적우적 천엽을 오물오물 소발을 씹으며 많이 무뎌졌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았다. 새 음식을 맛보듯이 재미도 보고 있다. 이제 연차를 먹으면 먹을수록 둔해지는 만큼 쌓이는 것도 있겠지.

충칭훠궈 홀. /변재현 기자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위치: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바로 보이는 큰 길로 직진. 기흥할인마트 2층에 있다.

충칭훠궈 위치 /자료=네이버


‘충칭훠궈’라고 정직하게 한국어로 쓰여 있을 거라는 기대는 미리 접기를 바란다.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대동하자. 없다고? 그래도 우리가 사는 곳은 한국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어떻게든 찾게 된다. 인터넷에서는 ‘중경훠궈’라고 검색하면 된다.

**가격: 1인당 1만5,000원.

<필진>

변재현 기자: 1년차 국제부 막내. 매일 기사 때문에 깨지면서도 월급으로 맛집 찾을 생각만 하면 행복해진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낙은 당연히 食이라는 점을 의심한 적이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존경심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돌아이 아냐?’ 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진짜 돌아이는 그런 반응도 개의치 않는 거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natural-born’ 돌아이.

정가람 기자: 디지털미디어부 막내. ‘즐거운 사람들과 맛있게 먹으면 0Kcal’를 맹신하며, 덮어 놓고 먹다가 나이와 살만 늘어가는 중. 뻔한 맛집 검색보단 삘(Feel) 꽂히는대로 가는 ‘즉흥주의자’라 사서 고생할 때도 많지만 그만큼 얻는 맛집 데이터도 많다. 파블로프의 실험처럼 이 칼럼을 클릭하면 군침 돋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물심양면 노력할 예정. 단, 초딩 입맛이라는 점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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