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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기억의 보존과 전달...'구산동 도서관마을'

골목길 옛집의 신선한 변신 … ‘하나의 마을’ 품은 도서관

구산동 도서관마을 전경. 노후주택을 리모델링해 탄생한 건물이다. 기존 노후주택의 구조와 형태를 보존하면서 단순 도서관이 아닌 ‘마을‘과 같은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서울 지하철 구산역 4번 출구 인근. 흔한 주택가다. 반듯하게 구획 지어진 거리 속에 상가가 자리하고 단조로운 원룸형 건물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골목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오묘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노란 벽돌로 꾸며진 외벽에 다소 불규칙한 창문들은 친근감을 자아낸다. 밖으로 큼직하게 돌출된 금속형 외장재를 보면 생소하다는 감정도 지울 수 없는 이곳은 ‘구산동 도서관마을’이다. 지상5층 높이의 이 도서관은 노후 된 주택들을 마을 도서관으로 바꿔 탄생한 건축물이다.





● 건축물이 된 마을, 마을이 된 건축물

열람실이 된 옛방 … 20년 전 붉은 벽돌담 …

오래된 주택 추억어린 구조 그대로 담겨



‘도서관마을’. 이 건물의 이름이다. 하나의 건축물이 곧 하나의 마을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왜 ‘마을도서관’이 아닌 ‘도서관마을’일까. 답은 건축물 내부에 있는 듯하다.

건물 내부를 다니다 보면 동선이 간단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같은 층이라도 바닥의 높이가 다르기도 하며 천장의 높이가 낮아 고개를 숙여 이동하는 경우도 생긴다. 마치 미로 속을 걷는다는 느낌도 든다.

이는 옛 주택들이 도서관으로 변모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오래된 주택들의 복잡한 구조를 그대로 남겼기 때문이다. 바닥의 높이가 다른 곳은 예전 집들의 높이가 달랐던 까닭이고 1층인데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은 이곳이 누군가의 반지하 창고였다는 의미다.

하지만 혼란스러움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건축물의 격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어릴 적 골목에서 이 집 저 집 다니던, 기억의 편린 속에 있던 장면들을 오버랩시켜 건축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 미로 같은 구조다.

설계를 맡은 최재원 오즈건축사사무소 소장도 “도면을 받았을 때 ‘이건 미로다’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기존 건물들의 복잡한 구조를 살림으로써 도서관이 마을 같은 공간이 됐다”고 설명했다.

열람실로 활용되는 옛집의 방들도 이 건물이 마을이라는 집합체로 다가오게 하는 요소다. 방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거나, 복도에 있는 평상에서 책 보는 이들을 보면 마을이라는 인상은 더 짙어진다. 건축물이 이곳의 과거를 그대로 보존해둔 점도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도서관 내부 중앙에는 붉은빛의 벽돌담이 있는데 이는 지난 1995년에 지어진 주택의 외벽을 그대로 남긴 것이다. 건축의 방식으로 시간의 흔적을 기록해둔 셈이다. 도서관 곳곳에 적힌 주민들의 동네에 관한 이야기가 더해지며 이곳은 마을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구산동 도서관마을의 1층. 도서관 내부에 있는 벽돌 소재의 발코니 공간은 과거 주택들이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남겨뒀다.


● ‘주민 참여 + 건축가 상상력’의 합작품

빠듯한 재정에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 선택

꾸준한 소통으로 예상 뛰어넘은 작품 탄생



도서관마을의 탄생은 구산동 주민의 염원에 의해 시작됐다. ‘동네도서관’을 원했던 주민들이 2006년 서명운동을 펼쳤고 은평구도 노후 된 주택이 있던 10개 필지를 구입해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작업은 미뤄졌다. 2011년이 돼서야 재개됐다. 서울시가 예산 편성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시행하면서다.

그럼에도 애초 지자체 재정 상황은 넉넉지 않았다. 이에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기존 주택 건물들을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하자고 제안했다. 각각의 낡은 주택들을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 이들 여러 도서관이 모인 ‘도서관마을’을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한다. 최 소장은 “노후 된 건물에 서가가 들어가는 것은 기능적으로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남겨야 할 것만 남기되, 이것을 묶어주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라고 설명했다.

결국 옛 주택 3채만 도서관 내부로 끌어온 뒤 새 외피를 입히는 방식으로 하나의 건물을 사실상 창조한 격이다. 한형우 호서대 교수는 이를 두고 ‘미래의 고고학’이라는 비평문에서 ‘예산 절감을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가 건축가의 각고의 노력에 의해 예산 절감의 차원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 같은 성과는 건축가와 주민 간 존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민들과 설계자들이 꾸준히 만나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건물에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을 진행하며 주민들의 선행 작업과 의견들이 저희 생각과 쌓여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기존에 대한 존중이 이 건축물을 더 풍부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라고 최 소장이 말했다.

구산동 도서관마을 건물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이 건물은 과거의 모습을 남기는 리모델링 방식을 사용해 예전 주택의 외벽을 그대로 보존해뒀다.


● 공공 도서관의 새로운 가능성 제시

골목길 슈퍼마켓처럼 편안한 공간구성

개인보다 공동체를 위한 건축철학 담겨



이 건축물에는 ‘마을’과 ‘공동체’라는 가치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최 소장은 “도서관은 사람들을 만나는 중요한 공간”이라며 “흔히 구역이 나눠 있는, 공부하고 떠나는 그런 도서관이 맞는 걸까요”라고 되물었다. 오히려 마을과 같은 편안한 같은 공간 속에서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도서관의 제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오즈건축사사무소는 ‘슈퍼라이브러리’라는 자신들의 책을 통해 “현대사회의 공공도서관 공간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시설이라기보다는 여러 시설 장소를 묶는 ‘공간들의 집합’ 혹은 ‘공간의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있다”며 도서관은 일상의 슈퍼와 같은 ‘슈퍼라이브러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도서관은 어떤가. 혼자 자기만의 자리를 찾아 앉아 침묵 속에서 공부만 하고 떠나는 그런 상상을 하기 쉽다. 공공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역설적이게도 개인적 공간이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도서관마을’은 현재 우리 주변 도서관의 성격을 되짚게 만든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ukkwon@sedaily.com

구산동 도서관마을 3층 외부 휴식공간. 도서관은 지역 주민 누구나 텃밭을 키울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뒀다.


■ 설계자 인터뷰 - 임상진·최재원 오즈건축사사무소 소장

“소통·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건축의 진정한 출발점”

소통과 공공성. 디자인그룹 오즈건축사사무소의 임상진·최재원 두 소장이 구산동 도서관마을에 대한 설명을 하며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일 것이다. 이들이 가진 건축 철학을 드러내는 함축적인 말로도 읽힌다.

임 소장은 건축가로서 가장 우위에 두는 것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말하는 방식은 다를지 몰라도 오즈건축사사무소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동일할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냐,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발생하고 지역·도시·공간에 대해서 함께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 이런 것들을 우선 고려해 건축적 소통을 이루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결국 건축주가 원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소통의 통로를 건축물에서 나타내는 것이 자신의 건축 철학이라는 설명이다.

디자인그룹 오즈건축사사무소의 최재원 소장(왼쪽)과 임상진 소장이 구산동 도서관마을 설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욱기자


최 소장은 공공의 가치를 중시했다. 최 소장은 “건축이 뭘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우선 저는 건축의 힘을 믿는다”며 “억지스러운 방식이 아닌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통한 자연스러운 건축을 통해 누군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데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매번 공공건축물을 맡을 수 없지만 최대한 현실의 조건을 넘어 건축에 공공성의 가치를 접목시키고자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디자인그룹 오즈건축사사무소는 그간 청라국제도서관·풍기읍사무소 등의 설계를 맡아 많은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이들 건축물 역시 열린 공간을 통한 사람 간 소통 및 공공성의 가치가 크게 돋보여 높이 평가됐던 것들이다.

건축물은 외관이 아름답다고만 해서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지 않는다. 건축물이 사회적으로 어떤 관계를 가지며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따라 건축물의 평가는 나뉘게 된다. 공공성과 소통이라는 가치를 끊임없이 건축적으로 고민하는 임상진과 최재원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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