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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이민, 혁신 그리고 노벨상

손철 뉴욕특파원





지난 13일 미국의 ‘음유시인’ 밥 딜런이 논란 속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올해 노벨상 발표도 막을 내렸다. 혹시나 했던 ‘10월의 기적’은 역시나 또 우리를 외면했다. 올해 노벨상 6개 부문 11명의 수상자 중 7명을 사실상 배출한 미국은 곳곳에서 조용히 잔치를 벌였다. 미국 태생의 시민권자는 발표 후에도 이렇다 할 소감 한마디 없이 잠수를 타고 있는 딜런이 유일하지만 물리학상을 함께 수상한 세 명의 과학자와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두 명의 경제학자, 화학상 수상자 한 명은 미 대학에서 수십년간 연구하고 강의해온 미국 거주자 혹은 시민권자다. 유대계인 딜런의 부모 역시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와 딜런도 이민 2세다. 올해 미국에서 나온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이민자다.

이민으로 세워진 나라에서 새삼 이민자를 구별하는 것은 우선 미국 대선에서 이민 정책이 최대 이슈 중 하나여서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멕시코와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불법 체류자들을 즉각 추방하겠다는 공약으로 미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모았다.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가 막판까지 부결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변을 연출한 것도 늘어난 이민자와 난민에 피해의식이 커진 영국인들의 감정적 판단이었을 만큼 강경한 이민정책은 인기영합적이어서 선거에서는 힘을 발휘하곤 한다.

한때 오는 11월 미 대선이 브렉시트 투표 결과의 데자뷔가 될 우려가 제기됐지만 다행히 이민 문제를 뺨치는 폭발력을 지닌 트럼프의 세금 회피 의혹과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잇따라 터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국제주의’가 백악관에 안착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어제의 이민자가 투표소에서는 기득권이 돼 ‘열린 국경’에 반대하기도 하지만 이민자 출신의 노벨상 싹쓸이 뉴스를 보면서 유권자들이 옳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트럼프 추락의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민이 노벨상을 낳은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노벨상을 잉태한 혁신과 소통의 한 축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영국 출신으로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덩컨 홀데인 프린스턴대 교수는 “과학자에게 있어 미국 고등교육 시스템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최고”라고 격찬했지만 그 교육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것도 이민정책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5년 전 미국 시민권자가 된 올해 화학상 수상자인 프레이저 스토더트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국제적 재능을 모은 것이 극복할 수 있는 한계 수준을 높였다”며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10여개의 다른 국적을 가진 수재들로 구성된 자신의 연구팀에 돌린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영국 출신인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도 보스턴의 한 동네에 있는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핀란드 출신 벵트 홀름스트룀 교수와 20년 넘게 교류하며 천재들 간 협업으로 ‘계약 이론’을 발전시켜 노벨상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미국이 유럽 선진국들은 물론 일본이 겪고 있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의 위기에서 저만치 홀로 떨어져 있는 것도 이민정책의 효과 때문임은 익히 알려져 있다. 114년간 혁신을 거듭하며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오른 3M의 신학철 수석부회장은 “인구 증가와 기술 혁신이 만나는 곳에서 무궁무진한 성장의 기회가 열린다”고 강조했다. 저성장 경제와 저출산 인구 문제에 적극적 이민정책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관계 부처들이 10년 전부터 인지하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경시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로 책임 피하기에만 급급하다. 9년 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에 기권 결정을 내린 배경에 정치권이 쏟아붓는 정력의 10분의1만이라도 이민정책에 나눌 수는 없는 것일까.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서 한국의 장기를 이민정책에서 구현한다면 저성장과 인구 감소에 혁신적 대안을 제시할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낳으면서 숙원인 노벨상 수상에 탄탄한 기반과 문화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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