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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머나먼 중국

홍병문 베이징특파원

홍병문 베이징 특파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9월 톈안먼 망루에 오를 때만 해도 중국은 우리의 가까운 이웃인 줄 알았다. 이 같은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채 몇 달이 걸리지 않았다.

올 1월6일 북한이 4차 핵 실험에 나선 뒤 우리는 국제 외교 무대의 냉정한 현실을 절실히 느꼈다. 박 대통령은 다급히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전화 통화를 요청했지만 중국에서는 차가운 냉기만 흘렀다. 톈안먼을 상기시키며 박 대통령은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했지만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전화 통화는 북한 4차 핵 실험 이후 한 달여 만인 2월5일에야 겨우 이뤄졌다.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북한에 타격을 줄 만한 뚜렷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5차 핵실험까지 터지자 다급해진 박근혜 정부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라는 강공 카드까지 뽑아들어 중국과 한국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분위기가 됐다. 중국 매체들은 외교는 물론 군사·경제 압박조치까지 거론하며 이웃 국가 한국을 사실상 적대국 다루듯 내몰아쳤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상 초유의 ‘최순실 사태’가 터지자 중국은 적나라한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박 대통령이 개헌이라는 정치 승부수를 내놓자 중국은 행여 사드와의 연관성을 우려하며 잠시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곧바로 이 사건을 사드 배치 반대 여론 조성의 호재로 삼는 분위기다.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이나 관영 매체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 일제히 사드 배치 결정이 한국 국민의 뜻과는 무관한 밀실 정치 결과라고 비아냥거리고 있고 일부 언론들은 박 대통령의 하야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거론하고 나섰다. 겉으로는 이웃 국가에 친성혜용(親誠惠容·친밀 성실 혜택 포용)의 외교정책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상대국의 약점을 들춰내 자국의 이익을 취하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중국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에 대해 중국 언론의 무례함과 중국 정부의 자국 중심주의만을 탓할 수는 없다. 이는 중국이 남북 관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고 착각했던 우리 정부의 현실과 동떨어진 착각이 빚어낸 결과에 가깝다.

무엇보다 지난 1년간 한중 관계가 롤러코스터처럼 극단적으로 뒤바뀐 것은 정부가 우리의 정치·경제·군사적 특수 상황을 간과한 외교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한국은 안보 면에서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지하면서도 경제 측면에서는 중국과의 교역을 급격히 늘려 경제와 안보의 무게 중심이 분리되는 독특한 상황에 놓여 있다. 어느 한 국가만을 일방적으로 편들 수 없고, 안보와 경제 의제 어느 하나만을 중심에 놓을 수 없는 특수한 입장이다.

안타까운 것은 북핵 실험 이후 벌어진 한중 관계가 경제에 큰 파급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한국행 유커(중국 관광객)의 수를 줄이라는 중국 당국의 무언의 압박이 일선 중국 여행사에 내려졌다는 점에 비춰보면 자동차 전기 배터리 인증 등 크고 작은 대중 투자 사안이 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 당국은 공식적으로 한중 간의 문화 교류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면서 유커 축소 지시는 없었다고 발뺌하고 있지만 순진하게 이를 믿기는 힘들다.

이웃 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성의를 다해 상대를 포용하겠다는 중국의 친성혜용의 원칙은 이미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도무지 어디에서부터 중국과의 관계를 다시 바로잡아야 할지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것은 내치의 문제가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주변국과의 외교 이슈가 뒷전에 밀리고 있다는 데 있다.

사드 배치와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중국은 가깝지만 먼 나라가 됐다. 이웃 국가를 대하는 중국의 속내를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또다시 중국과의 헝클어진 관계를 풀어야 하는 무거운 숙제가 남겨졌다. 정국의 혼란이 깊어질수록 주변국과의 관계는 더욱 냉정하게 봐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재점검하고 행여나 우리의 대중 외교가 너무나 안이했던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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