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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도심 속 성스러운 휴식처 ... '성공회 서울대성당'

기와지붕 얹은 ‘로마네스크’ … 동서양이 공존하는 聖殿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서울주교좌성당(성공회 서울대성당)의 외관.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식 기와 지붕을 얹어 주변과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사진제공=서울시청




광화문 광장에서 시청으로 이어지는 서울 도심. 높은 빌딩들이 사방으로 솟아 있다. 서로가 서로를 막아 오가지 못하는 수많은 차는 길을 따라 늘어서기만 한다. 바쁜 군중 속에서 때로는 고립감도 자아낸다. 하지만 이런 공간 속 지친 영혼의 쉼터가 될 만한 곳도 있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성공회 서울대성당)’은 그런 도심 속 ‘보물섬’과도 같은 곳이다. 성당·교회의 종교시설은 엄숙함의 이미지로 흔히 각인된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훌륭한 건축 예술로 봐야 할 곳이 많다.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그중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 서양의 종교가 한국과 만나는 법

한국적 정서 고려 고딕양식 의도적 배제

덕수궁 등 주변 건물들과 자연스런 조화



성공회 성당은 서양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회색빛 화강암과 붉은빛 벽돌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외벽과 아치형 구조물 등을 보면 서양사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덕수궁 등 주변 건물과 괴리된다는 느낌은 없다. 신비스러움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친숙함과 포근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조촐한 아름다움은 성당 내부로도 이어진다. 성당의 기본 구조는 십자가 형태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하얀 벽면을 바탕으로 성서의 내용을 담은 표현물들이 걸려 있다. 이 또한 과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천장에 있는 샹들리에도 마찬가지다. 요란스러움은 없다. 성당 미의 정점이라 불리는 빛의 예술, 창이 빛과 만나 신앙심을 북돋우는 ‘스테인드글라스’도 은은하게 멋을 뽐낸다.

이같이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전통 성당’과 다르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성당의 대부분은 ‘고딕양식’을 차용했다. 서울 명동성당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성공회는 한국에 뿌리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딕양식을 적용하지 않았다.

성당 건립을 시작한 대한성공회 3대 주교 마크 트롤로프는 외국 종교가 타국에서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에 어떤 건물이 정동에 가장 잘 어울릴지 건축가와 의논했다. 의뢰를 받은 건축가 아서 딕슨도 주교의 의견과 다르지 않아 주변과 조화되는 방식으로 설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물을 지었다.

성당 곳곳에 숨어 있는 한국의 전통문화도 건물과 친숙하게 만드는 요소다. 한국형 기와를 얹은 건물 지붕, 오방색 스테인드글라스, 한국식 창살 무늬 등을 보면 서양식 외투를 걸친 훌륭한 한국 건축이라는 인상을 갖게 한다.

사제관의 전경. 한옥형으로 지어져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청


●시공을 넘어선 건축가들의 만남

비용부족 … 미완성 상태로 70여 년간 사용

1994년 건축가 김원, 원설계도 찾아 복원



성공회 대성당은 1922년 공사를 시작해 1926년 완공이 되지 않은 채로 중단됐다. 비용 문제 때문이다. 이후 1994년 성공회는 성당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증축 복원 공사를 추진한다. 작업은 건축가 김원에게 맡겨졌다. 그는 한국 건축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은 건축가 김수근의 제자로 꼽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성공회 대성당은 그에게 동경의 장소였다. 복원 증축 작업을 맡은 순간 설레는 짝사랑을 떠올리는 것과 같았다고 그는 고백한다. “나에게는 건축가로서 한 건의 일을 맡게 됐다는 감사함보다 오랜 짝사랑을 새롭게 되새기게 하는 무슨 운명적인 사건의 전개를 눈앞에서 보는 느낌이었다”고 1996년 대한건축학회지에서 밝혔다.



작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성당의 원설계도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영국대사관·영국성공회·영국문화원 등과 접촉해 설계도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이에 건축가는 자신이 만드는 새 작품을 덧붙이는 방식의 증축을 생각했다. 애초 존재하던 건물에 철골과 유리만으로 만든 새 건물을 붙인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마침내 그의 후배가 영국에서 딕슨의 과거 활동 내용과 원설계도를 찾아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신의 새로운 설계를 포기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한 끝에 그는 원설계도에 충실하기로 결심한다. 딕슨이 그린 스케치와 도면을 볼수록 감동과 경외감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성당의 내부 모습. 성당 전면에 보이는 제단 모자이크가 눈에 띈다. /사진제공=서울시청


●한국 현대사가 담긴 건물

6월 항쟁 첫 함성 울려 퍼진 민주화의 성지

1층엔 세월호 유족 위로하는 노란 꽃병

성공회 대성당에는 한국 현대사가 지나온 흔적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특히 사제관 앞에 세워진 ‘유월민주항쟁진원지’ 표석은 이곳의 의미를 남다르게 만든다. 1987년 1월13일 대학생 박종철은 하숙집 앞에서 경찰에 불법 연행됐다. 이후 그는 11시간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더 거세졌다. 정권은 듣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만 반복한다. 4·13 호헌조치다. 이후 1987년 6월10일 박종철의 죽음을 기리고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미사가 이곳 성공회 대성당에서 집전된다. 그리고 오후6시 지명된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무효 선언을 외치며 성당 종소리가 울려 퍼져나갔다. ‘6월 항쟁’의 출발점인 6·10 국민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성공회 대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을 당긴 곳이다.

이 같은 사회적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성당과 이어진 성공회빌딩 1층에 놓인 작은 노란 꽃병은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작은 상징물이다. 이 꽃병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글이 빼곡히 달려 있다. 아울러 성공회 대성당은 사회 문제를 토론하고 고민하는 장소로도 이용된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사제관 앞의 ‘유월민주항쟁진원지’ 표석.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1987년 6월10일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사진제공=서울시청


■ 한국 최초 성공회 성당 ‘강화 성당’

사찰 닮은 성당 … 포용과·중용의 가치 품은 성공회 건축

한국 성공회의 건축물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가톨릭에서 분파한 성공회의 신학 정신인 포용성·지역성 등에 따라 한국의 성당들이 건립됐다. 실제로 한국 성공회는 초기 시절부터 철저하게 한국에 맞춘 ‘토착화’된 성당을 건립해왔다.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은 인천 강화군에 위치한 ‘강화성당’이다. 1900년 3대 주교 마크 트롤로프의 주도로 지어졌다. 이 건물은 한옥과 흡사해 ‘한옥 성당’이라 불린다. 지붕 위의 십자가를 보지 못한다면 성당인지 모를 수도 있을 법할 정도다. 그만큼 토착화된 건물이라는 의미다. 이를 위해 한식 목조 건물에 서양식 공간 구성이 적용됐으며 한국 사찰의 배치 기법도 응용됐다. 강화성당은 그리스도교 건축물 중 토착화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다.

이 같은 한옥 성당은 일제강점기 및 광복 후 1950년대까지 성공회 건축에 일관되게 이어진다.

이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들이 등장한다. 로마네스크는 ‘로마와 같은’이라는 뜻으로 11세기 후반과 12세기 서양의 종교 건축물들이 두꺼운 외벽을 이루고 아치형 구조 등이 적용돼 고대 로마의 석조 건축을 닮았음을 가리키는 의미에서 비롯한 개념이다.

서울대성당(1926년), 인천 내동성당(1956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곳 역시 여러 한국 전통 양식이 접목돼 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한옥 성당뿐 아니라 서양과 한국의 양식이 적절하게 섞인 건축들은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에 성공회 건축은 건축적 측면에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건축학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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