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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생심해정(生心害政)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진실되지 않은 말이 마음에 싹이 터 정치를 그르치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촛불시위를 촉발하더니 급기야 대통령의 탄핵소추로 이어졌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는 등 사건의 파장이 정치뿐 아니라 경제와 국제관계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민주주의를 채택한 근대 이후로 일찍이 유례가 없는 특이한 사건인지라 앞으로 21세기 한국의 정치사건으로 기록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세계사의 여러 분야에서 두루 인용되며 사건의 발생과 의미를 새겨보게 될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검찰의 특별수사에 이어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의 수사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사를 통해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정조사가 특검과 헌법재판소보다 시민의 관심을 더 많이 끌고 있다. 아마도 특검의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아직 시작단계이고 진행과정이 낱낱이 알려지지 않은 반면 국정조사의 청문회 과정은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청문회에서 정경유착의 거래, 최순실의 국정개입, 세월호 7시간의 비밀, 정유라의 이대 부정입학 등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과 혐의가 속 시원하게 밝혀지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청문회를 시청하다 보면 출석한 증인들이 자신의 책임과 관련된 사항에서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무자가 한 일이라 세세하게 모른다” “한 것은 맞지만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 등의 말을 하며 발뺌을 일삼고 있다. 의혹이 조금이라도 해소되리라 기대하고 TV를 시청하다가 더 울화통이 터진다며 답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언어가 진실을 밝혀주는 공공의 선물이 되지 못하고 개인의 책임을 떠넘기는 사적인 무기가 되고 있다. 맹자는 제자백가가 다들 자신의 말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춘추전국 시대를 살면서 말의 진리치를 잘 알아야 한다는 지언(知言)의 가치를 역설했다(‘공손추’ 상). 그는 일찍이 말이 진실을 밝히는 공기가 아니라 거짓을 숨기고 사욕을 포장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맹자는 말이라고 다 같이 진실을 전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오도할 수 있는 네 가지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봤다.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상대가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첫째, 한쪽으로 기울어져 공정하지 않은 피사( 辭)를 들으면 그 말에 드러난 것에 넘어가지 말고 숨겨진 것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정도가 심해 공사를 구분하지 않은 음사(淫辭)를 들으면 그 말이 어떤 오류에 빠져 있는지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셋째, 삐딱하여 정도가 아닌 사사(邪辭)를 들으면 그 말이 보편적 가치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넷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둔사(遁辭)를 들으면 그 말이 어디에 막히는지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맹자는 진실을 전하는 언어와 공정하지 않은 피사, 공사의 경계가 흐릿한 음사, 정도를 넘어선 사사, 책임을 피하는 둔사를 구분해야만 말에 실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말을 통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봤다. 그렇지 않으면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정치와 사회에 커다란 재앙을 드리우게 된다. 피사·음사·사사·둔사는 “처음에 당사자의 마음에 싹이 터서 결국 한 사회의 정치에 해를 끼칠 뿐 아니라 정치의 말과 정책으로 드러나서 사회가 풀어야 할 현안을 그르치게 된다(생어기심 해어기정·生於其心 害於其政, 발어기정 해어기사·發於其政 害於其事로 줄이면 생심해정 발정해사·生心害政 發政害事라고 할 수 있다).” 국정농단 사건의 피의자와 증인은 개인의 혐의를 최소화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혐의가 분명한데도 변명과 부인을 늘어놓는다면 거짓말이 진실 앞에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정의가 있더라도 비리와 부패를 단죄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청문회는 진실을 밝히는 공적인 활동의 장이 아니라 뻔뻔하게 책임을 피하는 묘기의 현장이 될 것이다. 앞으로 청문회와 특검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활동이 피사·음사·사사·둔사의 거짓을 밝혀내 생심해정이 생심선정(生心善政)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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