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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_창업을_응원해] <6> 암 투병 어머니 돌보던 심청, 매출 20억 쇼핑몰 키운 사연

강혜정 떼오로 대표





운수 사업을 하는 부친 덕택에 남 부러울 것 없는 성장기를 보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위암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대장암으로 어머니마저 떠나 보내야 했다. 오랜 병구완으로 제대로 대학을 마치지 못했지만, 남다른 손재주와 패션 감각을 살려 주얼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얼리를 납품하며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창업에 나서 패션의류, 액세서리, 구두 등 패션제품은 물론 화장품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사업군이 확장되면서 회사도 성장했고 올해 매출액은 20억원에 달한다.

미국 유학 길에 만난 주얼리, 삶 속으로 들어오다

강혜정(39·사진) 떼오로 대표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릴 때면 살포시 피어 오르는 미소를 감출 수 없다. 아무 걱정 없던 시절, 운수 회사를 운영하던 부친 덕에 입고 싶은 옷 마음껏 입고,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으며 해맑게 성장했다. 3살 터울의 언니 옷을 물려 입었을 법도 했지만 다소 통통한 언니와 달리 마른 체형의 강 대표는 ‘다행히도’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새 옷을 입었다.

“부모님은 자식들이 원하는 건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편이셔서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은 원 없이 하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땐 옷 욕심도 많고 꾸미는 것도 좋아해서 반 친구가 ‘신상’을 입고 오면 다음 날 반드시 그 옷보다 예쁜 옷을 입어야 직성이 풀렸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김민제아동복’, ‘뉴골든아동복’ 등 당시 유명했던 브랜드 옷들만 입었던 시절이었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강혜정(왼쪽 두번째) 대표의 모습. /사진제공=강혜정 대표


강 대표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소중한 두 딸의 장래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6개월 만에 돌아왔다. 친구도, 친척도 없는 타향살이를 어머니가 못 견뎠기 때문이다.

덕분에 강 대표는 중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했다. 그래서 그의 친구 중에는 77년생도 있고, 78년생도 있다.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번에는 둘째 딸을 위해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언니는 20살이 넘어서 비자를 따로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저 하나를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 가셨어요. 서부 시애틀에 이모가 살았는데, 시내에 아파트를 하나 얻어주시고는 6개월 만에 가족들은 모두 한국으로 돌아갔지요. 그곳에서 고등학교 2년을 보내고, 커뮤니티칼리지에 입학했습니다. 선택 과목 중에 주얼리 이론과 실습 과목이 있었는데, 평상시에도 보석류에 관심이 있어서 직접 세공하는 게 묘하게 관심이 가더군요. 그게 떼오로와 인연을 맺게 된 첫 계기가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대학 입학 후 1년쯤 지나면서 밀려드는 지독한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귀국을 결심한 계기에는 커스텀 주얼리(Costume Jewelry·모조 보석, 플라스틱, 비즈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디자인되는 패션 주얼리)에 대한 자신감도 한 몫 했다. 워낙 손재주가 좋다 보니 웬만한 주얼리는 능수능란하게 제작할 수 있었고, 굳이 할 거면 도소매 시장이 발달한 국내로 돌아오는 게 유리할 거라 판단한 것이다.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해 부모님께 죄송했지만 부모님 교육관 자체가 자유롭게 선택권을 열어 놓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라는 거였어요. 취직은 해야 했기에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모델 캐스팅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3년간 했어요. 핫한 아이템을 접하면서 나름대로 패션 감각도 키웠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불시에 찾아온 암, 그리고 이별



그러던 중 위암을 앓던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2002년 5월이다. 몇 년간 암을 앓아오던 터라 이별을 준비해 오긴 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은 그에게 깊은 슬픔과 충격을 안겨줬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강 대표는 어머니와 상의한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3년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기회의 땅’ 미국에서 정착해 살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이다. 그가 선택한 직업은 안경사였다. 강 대표는 “미국에선 안경사가 되면 전문직으로 인정도 받고, 수입도 꽤 좋은 편”이라며 “아예 미국에 정착하고 싶은 생각에 안경점에서 6개월간 인턴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야 했다. 건강했던 어머니가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던 것.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고국 땅을 다시 밟았다.

그는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 친구들이 건강 검진을 받아보라고 적극 권했다”며 “우연치 않게 받은 건강 검진에서 대장암 진단이 나와 어머니는 물론 가족들의 충격이 매우 컸다”고 회상했다. 당시 언니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강 대표 혼자 어머니를 보살펴야 했다.

“돌이켜 보니 엄마가 3년 정도 암 투병 생활을 하셨네요. 분당에 살던 때라 가까운 삼성의료원으로 모시고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암 환자에 맞게 식사를 챙겨드려야 하고 병원에도 모시고 가야 했기 때문에 24시간 함께 있었어요. 살면서 그렇게 엄마랑 얘기를 많이 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네요.”

그렇듯 병구완을 했던 강 대표는 친구 동생이 직접 만들었다며 선물로 건넨 주얼리 제품을 만나게 됐다. 시애틀에서 다양한 주얼리 작업을 했던 터라 집에서 주문을 받아 제작하면 된다는 설명에 귀가 솔깃해졌다.

“집에서 할 수 있다면 엄마를 돌봐드리면서 주얼리를 만들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호주로 이민갔을 당시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강혜정(뒤쪽 왼편) 대표의 모습. /사진제공=강혜정 대표


우선 주얼리 부자재를 사러 동대문종합상가로 향했다. 2004년이었다. 필요한 재료를 구매해 집에서 엄마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주얼리를 만들었다. 완제품 사진을 찍어 싸이월드에 올렸더니 주문이 쇄도했다. “전혀 모르던 분들도 싸이월드를 보시고는 구매할 수 있냐는 문의가 왔어요. 제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주문 받았기 때문에 엄마를 챙기면서 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구요.”

입소문이 나자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량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문량이 늘자 그녀는 새벽 잠을 포기했다. 낮 시간대는 어머니를 돌봐드려야 했던 만큼 새벽에 부자재 구매와 작업 등을 마치고 배송까지 끝내 놓은 것이다.

“당시 월 평균 200만~3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생겼어요. 물론 주문량에 따라 차이가 있긴 했지만 제가 용돈을 쓰고, 어머니 좋아하시는 음식을 사드리는 데는 충분했던 금액이었지요.”



지난 2007년 3년에 걸친 암 투병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마음의 준비를 해왔지만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떠나 보낸 강 대표의 마음은 외롭고 힘겨웠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선, 중심을 잡게 도와줄 뭔가가 필요했다. 그에게는 일이었다.

“마침 친한 언니가 일본모델 에이전시를 했는데, 작은 사무실이 하나 남는다고 하더군요. 제가 미국 생활을 했던 터라 영어는 곧잘 해서 외국 모델 관리를 맡겨줬어요. 일이 그렇게 바쁘지 않아 틈틈이 주얼리 제작을 하면서 회사를 다녔던 시기였습니다.”

‘금처럼 빛나는’ 떼오로를 만나다



본격적으로 주얼리 사업에 나서자 자체 홈페이지와 브랜드가 필요했다. 그는 ‘떼오로(theoro)’라는브랜드명을 선택했다. 접두사 ‘더(the)’와 ‘금(oro)’을 결합한 단어다. ‘금처럼 빛나는’ 주얼리가 모토였지만, 패션의류와 화장품으로 영역을 넓히면서부터는 ‘당신을 금처럼 빛나게 해주는 곳’이란 의미를 내포하게 됐다. 개인 사업자 등록을 한 후에는 주문도 밀려 들었다. 백화점 입점 브랜드나 유명 온라인 쇼핑몰에 납품하면서 떼오로는 조금씩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러던 중 오프라인 편집샵인 에이랜드(ALAND) 명동점에 입점하면서 매출이 탄력을 받게 됐다. 실제 매출이 잘 나올 때는 월 평균 1,70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편집샵 안에 자체 매장을 운영했는데 주얼리는 물론 다양한 패션 의류와 리빙 제품, 액세서리를 다뤘습니다. 당시 경험이 패션 제품이나 리빙 제품을 선택하는 감각을 익히는데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다행히도 제가 좋아하는 제품을 다른 분들도 호응해줘서 제게 패션 감각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요.”

하지만 2013년부터 경기 불황 직격탄을 맞으며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온라인몰이 탄탄하게 운영됐던 주얼리는 꾸준히 매출이 나오긴 했지만 매출 기여도가 높았던 오프라인 매출이 확 줄어들었다.

강 대표는 “처음으로 사업적인 위기를 느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이후 심각하게 사업 방향을 고민했던 그는 직접 패션의류를 다뤄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이즈나 취향별 차이가 크지 않은 주얼리와 달리 의류는 손이 많이 가는 품목인 만큼 ‘고생길 열린다’며 주변의 만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매일 동대문에 나가 팔릴 만한 제품을 골라 가져와서 사진 촬영을 한 후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옷을 검품해서 다림질까지 마무리한 후 택배로 보내야 하는 등 후반 작업이 많아요. 에이랜드 매장에서 저와 호흡을 맞췄던 이지현 실장과 함께 역할을 나눠서 일하면서 떼오로를 회사답게 키워갔던 시간이었죠.”

사업 영역 무한대로 확장하다



주얼리를 구매하려고 사이트에 들어온 고객들이 하나 둘씩 의류 제품을 구매하면서 6개월 만에 성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동대문표’ 의류를 중심으로 운영하던 강 대표는 점차 자신의 눈을 사로잡은 다양한 제품군으로 손을 뻗었다. 핸드폰케이스나 가방, 신발 등 다양한 패션 아이템으로 영역이 확장되면서 매출도 늘었다. 그는 떼오로의 히트 아이템으로 다시마 마스크팩을 꼽았다. 올해 예상 매출액 20억원 중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대박 상품이다.

“2년 전에 피부가 너무 건조해서 피부과에 갔는데 병원 실장이 크림과 팩을 몇 개 주더군요. 집에서 사용해 봤는데, 기적처럼 피부가 촉촉해졌던 거죠. 그 후에 크림 10개를 주문해서 썼는데, 알고 보니까 피부과 제품이 아니라 수출 전문 화장품 업체가 생산한 제품이었습니다. 실장을 졸라 화장품 회사(이엘인터내셔날) 대표를 소개 받았어요. 제가 몇 번이나 만나자고 했는데, 처음에는 대꾸도 안 하던 사장님이 나중에는 (귀찮을 정도로 조르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며 만나자고 연락이 왔지요. 그렇게 해서 만났는데 처음에는 저희가 국내 판권을 갖고 제품을 팔겠다고 했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셨어요. 제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부탁하니까 결국 허락을 해주셨지요.”

처음에는 기존에 이엘인터내셔날이 기존에 판매하던 브랜드 ‘엘라라 여신 크림’을 판매 대행하면서 지난해 3월부터 떼오로 사이트를 통해 선보였다. 오픈하자 마자 여신 크림 2,000개가 팔리며 히트를 쳤다. 이후 이엘인터내셔날의 특허 기술은 기반으로 하면서 향과 제형 등을 업그레이드한 자체 브랜드 ‘시스타(seastar)’ 다시마팩을 선보였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1월말 현재까지 누적 판매만 5만장, 최근에는 두타면세점에 입점하는 기염까지 토했다. 내년 2월께 ‘시스타’ 다시마 크림도 출시할 예정이다.

패션 트렌드를 익히려 자주 해외를 나간다는 강혜정 대표가 미국 출장길에 잠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강혜정 대표


호스팅 업체인 카페24를 통해 한국어와 영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떼오로는 내년에는 중문 사이트도 선보일 예정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외국인 고객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현재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활동도 활발한데, 특히 인스타그램은 오픈 2년 만에 팔로워 수가 5만6,000명을 넘어섰다.

남다른 패션 감각을 뽐내는 강 대표는 떼오로에서 대표이사 외에 두 가지 역할을 더 맡고 있다. 하나는 전속 모델. 지금까지 떼오로 사이트에 올리는 모델 컷은 거의 대부분 강 대표가 직접 맡았다. 최근 직업 모델을 한 명 섭외해서 일을 맡기고 있지만 아직까지 떼오로 스타일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모델을 찾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다. 또 하나는 MD(Merchandiser)다. 동대문을 돌아다니며 팔 만한 제품을 선정하는 것은 물론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다닐 때마다 눈에 띄는 제품을 들여오는 역할도 그의 몫이다. 지난 10년간 떼오로를 통해 소개한 아이템이 100개가 넘을 정도다. 실제 올 여름에는 콜롬비아에 여행을 갔다가 핸드메이드 제품인 칠리백을 들여와 대박을 쳤고, 일본에 출장을 갔다가 붓기를 빼주는 기능성 양말(일명 부종양말)에 한 눈에 반해 가을부터 수입하고 있다. 부종양말은 올해 떼오로의 대표적인 히트 상품으로 떠오르며 지금까지 1,500개 이상 팔렸다.

“제 눈에 띄는 아이템이면 인터넷 검색은 물론 제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활용해서 확보한답니다. 해외에 출장이나 여행을 갔다가 맘에 들어서 구매처를 알아보는 방식이라 때론 제조사를 찾아내기 어려울 때도 있긴 한데 시간이 얼마 걸리든 무조건 찾아내요. 그럴 때 보면 저 자신이 꽤 근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아이템을 고르는 기준이요? 그건 기본기에 충실하면서도 패션 트렌드가 살아 있는 아이템이라고 할까요.”

회사를 끌고 가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그는 ‘소통’이라고 말한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회사 규모가 아주 작았을 때는 제 한 몸 힘들면 됐는데, 규모가 커지고 직원들도 늘어나면서는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 회사라는 한 울타리에서 한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건데, 혹여 오해라도 쌓이지 않을까, 내 진심이 제대로 전달됐을까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는 거창하게 시작하기 보다는 찬찬히 올라가라고 권했다. 그는 “너무 많은 욕심을 내거나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내실을 기하면서 천천히 걸어가라”며 “실력을 키우다 보면 기회가 찾아오고 그 기회를 잡으면 성장의 발판이 마련된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면 감각도 있고 무슨 일이든 맡으면 잘 하는 친구가 있고, 반면에 능력이 있지만 의욕만 앞서서 중요한 것을 놓치는 친구도 있다”며 “사업이라는 게 품목의 종류와 상관 없이 매우 힘든 일인 만큼 앞뿐만 아니라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면서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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