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백상논단] 이제 정치지도자들이 지도력을 보일 때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미시경제학




점입가경(漸入佳境).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을 이보다 잘 설명하는 단어가 있을까.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표면화된 지도 이제 석 달이 다 돼간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어 지금은 직무가 정지된 상태이고 그 사이 국회 청문회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소위 비선 실세들에 의한 국정농단의 실체가 한 꺼풀씩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사건 직후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 대통령의 사사로운 의료시술, 비선 조직의 정부 공조직에 대한 통제 및 전횡 등. 물론 아직은 상당 부분이 확인되지 않은 추측과 가설 수준에 머물러 있으나 그 진실의 민낯이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점입가경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의 행태 또한 점입가경이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품격이란 것이 있고 이는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부끄러움을 느끼는가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 즉 맹자의 사단설(四端設)의 하나인 ‘수오지심 (羞惡之心)’이 그것이다. 그런데 뻔한 거짓과 비굴한 변명으로 일관한 세 차례의 대국민담화는 물론이거니와 국민을 상대로 “끝까지 해보자”는 식으로 버티기에 돌입한 최근 행보에서는 국민의 안위와 복리를 최우선시해야 할 국정 최고 지도자로서의 품격은 고사하고 평범한 일반인의 품격조차 읽히지 않는다. 박대통령은 “이럴려고 대통령이 됐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하기에 앞서 “그럴려고 대통령이 됐냐”는 대다수 국민들의 추상같은 질책에 응답하는 최소한의 용기라도 보였어야 했다.

점입가경은 요즘 정치권의 행태에서도 발견된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우리의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다. 우선 대내적으로는 소득 양극화 심화의 문제,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감소의 문제, 그로 인한 성장 동력의 쇠진 등 우리가 앞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더욱이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지역패권주의 움직임이 곧 출범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대외정책과 맞물려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국들의 정치·경제적 지형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조만간 우리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수준의 위기로 닥쳐올 가능성마저 있다.



이제 정치지도자들이 지도력을 보일 때다. 잠시만이라도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내려놓고 무엇이 국가 장래를 위해 최선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국정공백 기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제6 공화국 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는 국가정치체계에 대한 개헌논의가 반드시 담겨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개헌논의는 출범하기도 전에 난파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논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여야 정치인들은 이 와중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이해만을 앞세우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 암울하기 짝이 없다. 솔직히 요즘 그들의 얼굴에선 작금의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한 진심어린 고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뜻하지 않게 굴러온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여우의 눈빛만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과연 그들에게서 국가 백년대계를 설계할 안목과 이를 실행할 용기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욕망보다 국민을 우선시하는 희생정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교수신문은 2016년도 ‘올해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 (君舟民水)’를 선정했다. 민심이라는 강물은 임금이라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뜻이다. 2016년의 성난 민심은 이미 무능한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다. 물론 아직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이라는 헌법적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나 지금까지 이 정부가 보인 무능함만으로도 탄핵사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이제 정치지도자들은 지금의 성난 촛불민심에서 기회보다는 두려움을 먼저 보아야 한다. 정치적 이해만을 앞세운다면 언젠간 자신도 똑같이 민심의 강물에 뒤집어질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 정말로 두려운 것은 이대로 가다간 어쩌면 성난 민심의 강물이 무능한 정부를 뒤집을 기회조차 영영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