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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씨의 #오늘도_출근] 이대리, 당신의 '주말'은 안녕하신가요





또르르… 눈물이 톡!톡! 떨어진다.

금요일이지만 단 ‘1도’ 즐겁지 않다.

주말 같지 않은 주말, 말 그대로 일 폭탄이 예견된 우울한 주말이 떡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녕 주말근무는 피할 수 없는 직장인의 숙명이란 말인가…)

한 달에 8번에 불과한 주말 가운데 무려 이틀을 회사에 고스란히 헌납해야 한다니 목구멍 깊은 곳까지 울컥하고 치밀어 오른다.

연차를 고려하면 지금쯤이면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그럴 기미가 전혀 없는 왜일까.



사실 업무량과 우울의 정도가 정확하게 비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주말 근무가 주는 우울함의 컬러는 남들이 놀러갈 때 나만 일하러 가야 한다는, 지구 상에서 나 혼자 일터에 처박혀진 듯한 상대적 박탈감이 아닐까 싶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들어설 때 밀려드는 그 기분,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가슴 속 깊이 외로운 삭풍을 마구마구 불어 넣는 듯한 기분을 온몸으로 맞닥뜨리면서 출근하는 날이면 ‘내가 이러려고 직장인이 됐나’ 하는 자괴감이 깊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옆 부서 동료라도 있으면 이런 저런 얘기도 하면서 한결 나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간직했지만, 그마저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지난 주말에!!! ㅠㅠㅠ

# 주말근무도 아주 가끔은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여느 때와 같이 화려한 싱글의 ‘불금’을 보낸 후 나의 애정하는 침대에 두 다리를 뻗은 지 단 3시간 만에 스마트폰 모닝콜이 시끄럽게 울부짖는다.(평일의 울부짖음도 짜증이 나지만, 평화로운 주말에 울려대는 모닝콜은 더욱 진한 짜증을 불러 일으킨다ㅠㅠ)

“아! 맞다! 이번 주는 내 근무 차례구나. 정말 제대로 쉴 수가 없네, 쉴 수가 없어 ㅠㅠ”

혼자 중얼대며 대충 씻고(평상시보다 초간단한 샤워를 마친다, 왜냐? 볼 사람이 없으니!) 대충 화장하고(이 역시 내 얼굴을 볼 사람이 없으므로!) 버스에 올라탄다(그나마 주말 근무의 가장 큰 기쁨이자 장점은 버스에 빈 자리가 차고 넘친다는 사실일 게다)



회사로 억지 걸음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프로젝트를 대충이라도 마무리하지 않으면 다음 주 나의 삶은 ‘노답’이기 때문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머릿속으로 하나씩 정리하면서 사무실에 출근했다. ‘나 홀로 출근’이었다.

주말 출근은 짜증 나는 일이지만, 막상 사무실에 혼자 있으면 묘한 해방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평상시 회사 동료나 선후배들로 북적거리는 이 공간에 나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대담한 자유를 선사한다고나 할까.



이어폰으로 듣던 음악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듣는다거나 출근길에 들른 베이커리에서 신중하게 고른 치아바타와 초코머핀을 우걱우걱 맛보는 달달한 재미가 있다.

# 과장님, 집에 TV 없으세요?

음악 볼륨을 한껏 키우려는 찰나 인기척이 느껴졌다(헉! 이건 뭐지??)

건너편 총무팀 쪽에서 사람 머리가 올라갔다 내려가는 게 보였다. 이걸 어쩔 ㅠㅠㅠㅠ. 진상으로 소문난 김 과장이었다.(대박 쪽박이었다!!)

김과장 : “이 대리~ 출근이 좀 늦었네?”

나 : “네? 오늘 토요일인데...”

김과장 : “하하하, 조크야, 조크. 조크 몰라? 농담한 거지~ 정색하기는 ㅋㅋ”

나 : “아, 하하하...(소심한 웃음으로 어색한 상황을 덜어보며) 네...할 일이 많으신가 봐요. 주말인데 출근하셨어요~”

김과장 : “와이프가 자꾸 애들 데리고 어디 가자구 하더라고ㅋ 오늘 UFC 봐야 되거든. 아주아주 중요한 날이야. 그래서 회사 핑계 대고 나왔지 ㅎㅎ”

나 : “아 ㅠㅠ.네...(그것도 자랑이라고...쩝 ㅠㅠ)”

김과장 : “ 이대리는 아직 결혼 전이니까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주말에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거든. 결혼하면 이해하려나? ㅎㅎ”

.......진상불변의 법칙! 한 번 진상은 영원한 진상이라는 불편의 진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여러분, 사람 쉽게 안 바뀝니다...절!대!로!!)

회사는 일하라고 오는 곳 아니던가.

저렇게 당당하게 TV를 보러 나왔다니 염장 지르는 것도 참으로 가지가지다.

그러고 보니 기혼자 선배 중에는 급한 일이 아닌데 주말 근무를 자처하는 이들이 꼭 있다.

집에서 부인한테 시달리는 게 더 스트레스라나?

그렇게 ‘탈출’을 꿈꾸는 분들의 공통점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딱 떨어지는 몇 가지 특성을 발견했다.(인류사에 길이 남을 대발견!!이랄까)

1. 우선 결혼했다.

2. 자녀가 있다.

3. 회사에서 짬이 된다. (하는 일 없이 노닥거려도 눈치를 심하게 보지 않아도 될 정도의 짬은 필수!!)

4. 성정이 뻔뻔하다.

5. 짠돌이로 유명하다. (주말에 일하면 임금을 2배로 쳐서 받으니, 천금같은 기회를 이런 분들이 놓칠 리가...)

김과장이 쓱~~ 지나가며 책상에 놓인 빵 봉지를 물끄러미 쳐다봤지만 서경씨는 모니터에 집중하며 모른 척 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내 피 같은 아침 식사를 나눠주지는 않으리.

다행히 우리 팀에선 나만 출근한 관계로 이어폰을 통해 요새 푹 빠진 드라마 ‘도깨비’의 OST를 반복 재생하며 폭풍 업무에 몰입했다.

공유님~~공유님~~ 심쿵하는 그 장면!!!!


‘공유 같은 동료만 있다면 일주일 내내 회사로 출근해도 행복하겠다’ 그런 망상에 젖으며!!(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이거야말로 도깨비의 마법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 주말만이라도 일 끝나면 집에 갑시다, 제발!!!

1분 1초라도 일찍 퇴근하고야 말겠다는 굳건한 일념이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5시쯤 목표로 한 업무량을 끝내는 데 성공했다. (오예!!!!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 데 김 과장이 다가왔다.(어째 불길한 느낌이 ㅠㅠㅠ)

김과장 : “이대리, 배 안 고파?”

나 : “네 괜찮아요. 아까 빵을 좀 먹었거든요.”

김과장 : “그래? 난 점심을 제대로 못 먹었더니 배가 고프네... 와이프는 애들 데리고 친정 가서 밥 차려줄 사람도 없는데 말야.”



저 얘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지? 나한테 밥을 해결해 달라는 건가? 내가 자기 와이프도 아니고, 자기 엄마도 아닌데 왜 나한테 밥을 해결해 달라고 하지? 뭐야.. 이건 ㅠㅠㅠㅠ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너랑은, 절대, 같이 밥을 안 먹는다!!’는 답은 정해져 있지만, 어쨌든 상사니까 자연스럽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거절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와 문장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김과장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김과장 : “10층 기획팀 팀원들이랑 같이 저녁 먹기로 했어~ 주말에 나와서 이렇게 수고했는데 저녁이라도 맛있는 거 먹고 들어가야 억울하지 않지.”

나 : “아... 네~~ 기획팀이요?”

김과장 : “응~ 이대리도 같이 가는 게 좋지 않겠어? 혼자 빠지기도 뭐하잖아. 그냥 저녁만 먹고 가.ㅋ 우리 ‘한우’ 먹을 건데.”

그 와중에 ‘한우’라는 단어는 엄청 크게 들렸다. 한!우!다!

헉... 하마터면 그대로 넘어갈 뻔했다. 메뉴가 한우라니 요건 예상 밖이긴 하다.

주말 저녁 애매한 시간, 약속도 없고, 같이 먹을 사람도 없는 나에게 ‘그냥 밥만 먹고 가라’라는 말은 거절하기 쉽지 않다. 거기다 ‘한우를 먹고 가라’는 말은 더더욱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선약이 있다’고 받아 치거나 그게 양심에 찔리면 ‘빵 먹은 게 이상한지 속이 안 좋다’라고 하던가 뭔가 핑계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김과장도 그날만큼은 자기 주머니에서 나갈 금액을 계산해서인지 망설이는 내게 탈출구를 선사한다.

“별로 땡기지 않으면 억지로 오지 않아도 돼~. 하긴 주말인데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는 내가 눈치가 없는 거지 ㅋㅋ. 그냥 편하게 퇴근해~~~”

덕분에 불편한 주말 회식 자리에 끌려가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찜찜한 기분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이건 뭐지??)

“올해 인사 때 김 과장이 우리 부서로 올 수도 있다던데, 그냥 못 이기는 척 따라갈 걸 그랬나?”

“기획팀이랑 식사하는 일도 거의 없는데, 회사 돌아가는 사정도 들어볼 겸 그냥 낄 걸 그랬나?”

“어차피 집에 가면 라면에 찬 밥 말아먹어야 하는데 오랜만에 한우로 몸 보신할 걸 ㅠㅠ 내가 생각이 너무 짧았나?”

따라 갔어도 후회했을 게 뻔하지만, 따라가지 않고 후회하는 자기 자신이 오늘따라 유달리 못나 보이는 서경씨! 이번 주말도 소득 없이 24시간만큼 나이만 먹었다. ㅠㅠㅠ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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