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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얻어 맞은 담배, 그러나…





신이 내려준 선물. 미국 국부(國富)의 시발점. 세계 최대의 소비재이며 밀수가 가장 많은 품목…. 15세기 말 신대륙 발견 이래 지구촌 전역에 퍼진 담배의 면면이다. 전쟁 중에는 병사들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시름을 달랬다. 무한정 커질 것 같던 담배 시장의 성장에 제동이 걸린 것은 1964년1월11일. 미국 공중위생국의 ‘흡연과 건강(Smoking and Health)’ 보고서 발표 이후다.

심장 전문의 출신인 루터 테리(Ruther Terry)보건위생국장(장관급)의 발표 요지는 ‘흡연이 폐암, 만성 기관지염과 연관이 있다’는 것. 이전에도 담배의 위해성을 경고하는 움직임이 없지는 않았다. 1930년대부터 경고가 나오고 의학학술지에는 1950년대 중반부터 피해 사례가 실렸다. 1962년 3월에는 영국 왕립외과협회가 ‘흡연이 폐암과 기관지, 심혈관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담배업체들은 경고가 나올 때마다 대대적인 반격을 펼쳤다. 신문 광고로 보고서의 신빙성을 문제 삼고 필터의 성능을 부각시켰다. 업체와 학계 간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루터 테리에게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루터는 1962년 말부터 자문위원 10명을 포함해 150여명의 인력으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약 7,000여건의 관련 논문과 보고서를 분석한 자문위원회의 위해보고서는 논란을 가라앉혔다. 담배는 ‘위험한 기호품’으로 낙인찍혔다.

미국은 담배의 유해성을 밝힌 정부 차원의 최초 문건 발표 날짜를 토요일로 잡았다. 주식시장이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주요 신문사들은 두터운 주말판에 담배 위해 보고서의 내용을 상세하게 실었다. 월요일부터 담배업체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3개월 동안 미국의 담배 소비는 15% 가까이 줄어들었다. 전세계 금연운동에도 불이 붙었다. 미 의회는 1965년 1월부터 담배 포장지에 ‘흡연이 인체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경고문 부착을 의무화하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해 7월부터는 담배 광고에도 경고성 문구가 의무적으로 들어갔다. 담배 광고 자체에도 제약이 따랐다.

흡연 피해보상 소송도 줄을 이었다. 1994년 미세소타주 법원은 ‘담배회사는 흡연 피해자들에게 20년간 2,080억 달러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담배회사들이 흡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내부자 폭로가 소비자들의 승소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날로 거세지는 금연운동에도 담배회사들은 굳건히 버티고 있다. 두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는 중독성. 해마다 이맘 때면 연초의 금연 결심을 무너뜨리는 중독성이 담배회사를 먹여 살린다. 두 번째는 각국 정부의 은근한 지원. 담배회사의 유해성을 은폐한 혐의로 당초 2,800억 달러 배상을 요구했던 미국 정부는 2005년 소송액을 100억 달러로 낮춰줬다. ‘조직 범죄로 인한 부당 이익을 정부가 배상금으로 취할 수 없다’는 게 공식 이유지만, 숨은 배경이 있다. 건국 초부터 미국 경제를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는 담배업자들의 로비가 먹혀들었다.



담배 위해 보고서 발표 52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인의 건강은 나아졌을까. 나라별로 희비가 엇갈린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흡연은 확실하게 줄었다. 보고서 발표 직전인 1963년 4,200개비였던 미국인 1인당 연간 담배소비는 요즘 1,300개비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 흡연율도 42.4%에서 16.8%로 줄어들었다. 최근 10년간 통계도 비슷하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과 서유럽이 세계 담배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에서 14%로 감소했다. 반면 아시아·태평양의 비중은 같은 기간 동안 54%에서 65%로 커졌다.

부자 나라일수록 금연이 대세인 것처럼 개인별로도 소득에 따라 흡연 여부가 엇갈린다. 연간 5조5,000개비, 금액으로는 6,985억 달러(2015년 기준)에 이르는 세계 담배 소비의 80%가 저소득층과 중류층 이하에서 일어난다. 저개발 국가를 중심으로 해마다 약 4.2%씩 커지는 세계 담배시장의 성장세가 지속된다면 21세기를 통틀어 약 10억명이 담배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거대회사인 중국국영담배공사(CNTC·세계시장 점유율 44%)와 거대 다국적 기업인 필립모리스(15%),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11%), 재팬토바코(9%)의 시장점유율도 계속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감소 추세다. 지난 2015년 흡연율은 전년보다 1.6%포인트 감소한 22.6%.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39.3%로 전년의 43.1%보다 3.8%포인트 떨어졌다. 성인 남성 흡연율이 40% 를 밑돈 것은 1998년 국민건강영양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다. 지난 1998년에는 이 비율이 66.3%였다.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6년도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에 따르면 남성 학교 청소년(중1~고3)의 흡연율 역시 9.6%로 조사가 시작된 지난 2005년 이후 처음으로 10% 대 아래로 떨어졌다. 2015년부터 적용된 담배 값 2,000원 인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흡연은 감소 추세라지만 통계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영선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담배 밀수 적발 실적은 인상 전보다 7배나 늘어났다. 음지에서 흡연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얘기다. 담배 수입 역시 2배 이상 증가했다. 정부가 담배 값을 올리면서 내세운 흡연율 8% 포인트 감소가 과연 가능할지에도 의문이 남는다. 확실한 점은 단 한가지. 가격 인상으로 정부의 세금 수입만 기대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결국 금연 효과는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고 정부가 서민의 부담만 키운 격이다. 소비자와 서민들이 대항할 수 있는 방안 역시 딱 한가지 뿐이다. 금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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