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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인간, 깨어날 수 있을까?





1967년1월12일, 캘리포니아대학의 심리학 교수를 지낸 제임스 베드퍼드(James Bedford) 박사가 숨을 거뒀다. 신장암으로 죽은 그가 세상에서 살았던 시간은 만 73년9개월여. 베드퍼드는 법률적으로 사망했으나 다시 살아난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망 직후 베드퍼드의 시신은 바로 냉동 처리됐다. 냉동은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1993년 개봉작 ‘데몰리션 맨’처럼 단순한 급속 냉동과는 딴 판. 혈액과 체액을 완전히 빼내 특수액체를 넣은 후 영하 196℃가 유지되는 특수 냉동캡슐에 집어넣었다.

베드퍼드는 신장에서 자리 잡은 암 세포가 폐로 전이돼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부터 냉동을 자원했다. 마침 생명연장학회가 ‘냉동을 통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며 최초의 신체냉동 실험대상자에게 모든 경비를 대신 내주겠다고 공언한 상황. 생명연장학회와 베드퍼드는 암 치료 기술이 개발될 미래에 소생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베드퍼드는 죽기 전에 냉동기술 연구에 쓰라며 10만 달러도 내놓았다.

과연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을까. 숨이 멎더라도 세포가 살아있다면 소생할 수 있다는 ‘가설’에 따르면 가능하다. ‘데몰리션 맨’ 같은 영화가 현실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나겠다는 불사(不死)를 향한 열망은 베드퍼드 뿐 아니다. 베드퍼드가 최초의 냉동인간이 된 지 5년 뒤에 설립된 ‘알코르(Alcor)생명연장재단’의 ‘사망 후 시신 냉동 예약자’만 1,500명이 넘는다. 지난 2014년 기준으로 250구의 시신이 냉동캡슐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알코르 재단에서 시신을 인수해 특수처리를 거쳐 영하 196도의 액화 질소 탱크에 보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20만~22만 달러. 머리만 보관하는 경우는 8만~10만 달러를 내야 한다. 왜 머리만 냉동할까. 영화 ‘쥐라기공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호박(琥珀) 속에 화석으로 남은 모기가 빨았던 공룡 피의 DNA 복제를 통해 공룡을 만들어낸 것처럼 머리만 있다면 미래에서는 몸까지 재생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알코르재단 뿐 아니라 전세계에 산재한 공식·비공식 생명연장센터에서 보관 중인 전신 냉동이나 부분 냉동(머리) 보관 중인 시신은 600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냉동인간들은 부활할 수 있을까. 냉동이 풀려도 복잡하기 그지없는 신경세포와 기억 회로망이 되살아날까. 설령 그렇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윤리적 논쟁도 뜨겁다. 과학이 부활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시신들은 단지 보존되고 있을 뿐이다. 영면하지 못한 시신들이 냉동고 속에 고기 덩어리와 뭐가 다르냐는 비판도 나온다. 옹호론자들은 이에 대해 지금은 일반화한 장기이식 수술도 인간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의료 기술이었다며 인간의 사망 유예와 수명 연장은 신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보다 근원적인 의문도 남는다. 베드퍼드의 시신은 나이가 있을까. 1년여 전 알코르 재단이 흥미로운 발표를 내놓은 적이 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베드퍼드 박사가 될 수 있다는 것. 이전까지 역사에 기록된 최고령자는 122살 6개월을 살았던 할머니 한 분이었다. 하지만 2015년 12월을 기준 삼을 때 베드퍼드는 122년 8개월여를 살아 유사 이래 가장 오래 생존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냉동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베드퍼드 박사를 내세운 홍보 전략이 엿보인다.

과학과 의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어도 인간의 욕심에는 못 미친다. ‘30년쯤 지나면 소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베드퍼드의 관은 사후 반 세기가 지나도록 기약 없는 세월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일부의 주장대로 베드퍼드가 의학의 힘으로 잠자고 있는 상황이라도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고생이 많았다. 냉동과 보관 비용을 모두 대겠다던 생명연장학회가 문을 닫고 후원자들도 떠나면서 비용을 가족이 떠맡았다.

유가족들은 마땅한 보관 장소를 구하지 못해 베드퍼드의 냉동 시신을 6번이나 옮겼다. 막대한 유산을 베드퍼드의 시신을 보관하는데 날린 유족들은 한 때 매장을 검토했다. 1997년에는 아들의 나이가 베드퍼드가 죽을 때와 같은 74세에 이르러 더 이상 ‘애물단지’ 같은 냉동 캡슐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고 호소했다는 뉴스가 외신을 탔다. 요즘이야 중점 관리 대상이 된 베드퍼드가 깨어나 이 사실을 안다고 뭐라고 할까 궁금하다. 하긴 충격이 더 클 수도 있다. 캡슐에서 부활을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물론 자식도 하나 둘 죽어갔으니. 생명 연장은 축복과 저주 가운데 무엇에 가까울까.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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