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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육성 50년, 이젠 혁신이다] 中企절반이 하도급...기술 하나로 '홀로서기'할 환경 만들어줘야

<2> 하청에서 자립으로

기술 가로채기·납품가 인하 등 원청업체 갑질 시달려

'찔끔지원' 대신 공정경쟁 가능한 산업 인프라 만들고

대기업도 '中企와 동반성장으로 윈윈' 인식개선 필요





충남 천안에 있는 자동차부품 제조 중소기업에서 근로자들이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생산설비용 공구를 제작하는 중소기업인 A사는 최근 오랫동안 거래를 유지해왔던 중견기업에 이용만 당하고 기술을 뺏기는 수모를 당했다. A사는 2년 전 새로운 공구 제작을 공동 개발하자는 중견기업의 제안을 받아들여 1년여 동안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신제품 완성의 기쁨도 잠시, 중견기업은 A사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A사는 기술협약서와 거래계약서를 작성하자고 제안했지만 중견기업 측에서는 “어차피 이 기술을 보유한 업체는 국내에서 너희밖에 없으니 기술협약서를 쓰지 않아도 개발에 성공하면 물량을 모두 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그러던 중 A사는 산업 공구 관련 전시회에 참가해 황당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 중견기업의 부스에 A사가 개발한 공구가 버젓이 전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A사의 이름은 없었다. 중견기업이 관련 부서까지 만들어 사업을 키우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A사의 한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2억원의 큰 자금을 투입하고 인력들도 1년 동안 기술 개발에 매진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결국 사업은 접게 됐고 이 제품으로 장기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백억원이 한순간에 날아가게 됐다”고 토로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966년 중소기업기본법이 만들어진 후 50년이 지났지만 우리 중소 제조업체들은 자립하지 못하고 불공정한 하도급 구조 속에서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른 기업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 제조기업의 비중이 2007년 46.6%에서 2015년에는 47.3%로 소폭 높아졌다. 중소기업 두 곳 가운데 한 곳꼴로 하도급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기업 등 힘 있는 기업에 의존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등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볼 수 있는 수급기업의 납품총액은 2002년 123조원에서 2015년 263조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만큼 중소 제조업체들의 운명은 원청업체에 좌우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원청업체의 ‘갑질’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실제로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 수급기업들은 납품단가에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지나친 품질 수준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밖에도 납품단가 인하, 납품대금 결제기일 장기화, 불규칙한 발주, 납기 단축, 일방적 거래선 변경 통보 등 원청업체의 갑질은 일상이 됐다. 경기도 내 산업단지 반도체부품 업체의 한 관계자는 “요새 동반성장을 많이 강조하고 환경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기업이 ‘갑’이고 중소기업이 ‘을’인 현실은 변함이 없다”며 “중소기업들끼리도 똘똘 뭉쳐 대기업의 갑질에 대응해야 하는데 당장 먹고살기 힘드니 단합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한 디스플레이 장비 회사도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국내 대기업에 장비를 납품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얼마 뒤 대기업에서 그 발표 자료를 토대로 장비를 개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업체 대표는 “납품업체로 선정될까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의 발표 내용을 가지고 대기업에서 개발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으니 너무나 허망해 그때부터 국내보다는 수출에 주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본력이 약해 현금 유동성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을 상대로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도 다반사다. 한 중소기업 재무 담당자는 “최근 현금 결제를 해주는 대기업들도 있지만 일부 대기업들은 여전히 전자어음을 통한 편법 결제를 해준다. 90일짜리 전자어음이면 결제까지 4개월이 걸리는데 이는 1년에 세 번밖에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얘기”라며 “현금으로 달라고 하면 은행에 가서 ‘깡(어음할인)’을 하라는 얘기까지 서슴없이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육성 정책이 시행된 지 올해로 51년이 된 시점을 맞아 우리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질적인 하도급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찔끔 지원이나 대출을 해주는 정책으로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선심성 지원 예산은 줄이고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아이템만 가져도 자립할 수 있도록 공정한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기업들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금 지급을 미루거나 기술을 탈취하고 단가를 후려치는 관행이 이어질 경우 산업 선순환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대기업이 먼저 나서 동반자적 시각에서 공정한 거래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중소기업들은 동업자 정신이 필요하다. 당장 우리 회사만 잘 되면 된다는 식으로 대기업에 길들여진다면 앞으로 50년 뒤에도 이 같은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양자 간의 계약을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고 이마저도 계약서가 없는 상황이면 중소기업들이 피해구제를 받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면서 “결국 대기업의 인식 개선에 기댈 수밖에 없고 중소기업들도 일치단결해 대기업의 부당한 요구를 바로잡아 공정한 거래문화를 함께 조성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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