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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일상을 그리는 건물 ... ‘어쩌다가게@망원’

11개 상점이 옹기종기 … 출입문도 따로 없는 ‘공동체의 건물’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에 위치한 ‘어쩌다가게@망원’ 전경. 낡은 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골목 속에 하얀 외피와 불규칙적인 외관이 눈길을 끈다. /송은석기자




작가 윤태호의 말처럼 현대사회에서 일상은 무너졌다. 평범했던 것이 소중하게 돼버린 역설적인 시대. 평온했던 과거를 돌아보고 오래된 멋 속에서 편안함을 찾는 건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사람이 몰리는 것 역시 같은 까닭이지 않을까. 흘러간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곳에서 오래된 집과 개성 강한 작은 가게들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받을 법한 동네가 망원동이다. 여기에 외견상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건물이 있다. 낡은 벽돌 주택들 가운데 하얀 외피를 둘러 불규칙적인 형태로 오묘한 느낌을 주는 신축 건물이다. 주인공은 바로 ‘어쩌다가게@망원(어쩌다망원)’이다.

1415A20 ‘어쩌다가게@망원’건축 개요 수정1


● 동네 골목이 이어진 건물

반층씩 쌓아올린 스킵플로어 설계

골목길 동선 꼭대기층까지 이어져

‘어쩌다망원’은 지하 2층~지상 4층의 높이에 11개의 상점 등이 들어서 있는 일종의 상가건물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위적이고 지루하게 모인 상가의 집합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우선 이 건물에는 출입문이 따로 없는 대신 중앙부를 뚫어놨다. 그 개방된 공간에는 위층으로 안내하는 계단을 설치했다. 이 계단을 중심으로 건물이 좌우 양 갈래로 나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계단과 이어지는 복층의 구성이다. 계단을 따라 발길을 조금만 옮기면 위층의 공간이 금방 눈에 들어온다. 대신 반쯤 잘린 모습이다. 그러니 다음 층의 완전한 구성이 궁금해진다. 건물 끝까지 올라가 보라고 유도하는 모양새다.

결국 별다른 저항감 없이 건물에 진입할 수 있고 서로 교차되며 이어진 계단과 복층이 건물의 끝으로 사람을 이끌게 된다. 이에 망원동 골목길이 어쩌다망원의 마지막 층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 것과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이는 반층씩 쌓아올렸기 때문인데 ‘스킵플로어’라 불리는 건축의 효과다.

건축가는 왜 이런 구성을 기획했을까. “근린생활건물에서 층이 올라갈수록 임대료가 확 떨어진다. 층을 넘어설 때 저항감이 들기 때문이다. 대신 반층은 쉽게 올라간다. 반층만 보이게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러운 경험을 이끌어주자는 의도”라고 설계자인 박인영 사이건축 대표는 설명했다. ‘상가’라는 건물의 본 목적에 충실히 설계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게의 내부 모습. 반층씩 쌓아올린 ‘스킵플로어’ 형식으로 이용자들을 자연스럽게 위층까지 이끄는 효과를 느낀다. /송은석기자


● 어쩌다 만난 그들이 만들어 가는 건축

밤엔 아마추어 예술가 공연장 변신

행복한 개인들이 만든 소박한 연대



“건물은 결국 껍데기고 내용은 살아가는 사람들이 채웁니다.” 박 대표가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어쩌다망원 역시 구성원의 사용 방식이 관심을 끈다.

이 건물에는 약 9.9~16㎡(3~5평)의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출판사를 그만둔 ‘맥덕(맥주와 ‘덕후’를 조합한 신조어)’이 차린 맥주 가게 ‘위트위트’, 전직 디자이너가 차린 꽃집 ‘슬로우앤스테디’, 매달 자체 추천도서를 진열하는 서점 등이 있다. 다들 1인 가게다.

이렇게 모인 가게들은 서로 관계를 만들고 이어간다. 공동 이벤트를 개최하는 식이다. 건물 지하에서는 밤에는 펍으로, 낮에는 공방의 수업이 진행되며 때론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공연장이 된다. 이처럼 소통 개방을 통한 활동들은 어쩌다망원의 구성원 모두의 만족을 높인다. 일종의 작은 연대가 생성된 결과다.

또 SNS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가게들이 많은데 체인점을 내자는 주변의 설득도 극구 거부한다고 한다.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대박? 그런 거 별로 원하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을 꾸밀 정도면 된다”고 소개했다. 그러니깐 ‘어쩌다망원’은 ‘어쩌다’라는 말처럼 우연하게 같은 공간에 있는 모인 이들이 공유·소통을 통해 작지만 행복한 개인들을 필연처럼 구성해가는 공동체의 건축물이다.



가게 1층 전경. 출입문을 없애 건물의 개방감을 주는 한편 망원동 골목이 건물로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송은석기자


● 5년간 임대료 동결 … 실험 그 끝은

이익보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선택

젠트리피케이션 세대에 메시지 던져

‘이것은 커다란 도미노 게임이며 자신들은 멋모르고 중간에 끼어 서 있는 도미노 칩이 된 것 같았다. 종내는 모두 함께, 뒷사람의 어깨에 밀려 앞사람의 어깨를 짚고 넘어질 것이다. 스르르 포개지며 쓰러질 것이다.’

소설가 정이현은 ‘서랍 속의 집’이라는 작품에서 집값이 올라 거처를 옮겨 다니는 이들이 본의 아니게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는 현재의 모습을 ‘도미노 게임’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다의 운영방식은 이 사회에 울림이 큰 메시지와 같다. 5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장사하는 분들은 장사를 계속할 수 있는지 안정성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건물주의 큰 스트레스는 공실이에요. 그렇다면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같이 가는 게 서로 좋은 거죠.” 임대료 동결이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법이라는 것이다. 뛰어버린 임대료로 사람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진행되는 지금 어쩌다의 실험의 끝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가게 마지막 층에 위치한 사무실. 엇갈리게 연결된 계단은 건물의 방문객을 자연스럽게 마지막 층인 4층으로 유도한다. /송은석기자




■ 설계자 인터뷰 - 박인영 사이(SAAI)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는 심리학자 … 사람들의 꿈 만들어주는 건축하고 싶어”

“건축가라는 직업이 일종의 심리학을 하는 것과 같은 거 같아요. 건축주의 이야기를 들으며 뭘 원하는지 파악하고 이들이 생각하는 꿈을 만들어주는 게 건축이잖아요. 그래서 건축가적 욕심을 조금은 줄이되 사용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더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박인영(사진) 사이(SAAI)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자신의 건축 철학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힘들다’는 전제를 붙였지만 건물의 공간에서 관계를 맺어가는 이들의 행복을 우선 떠올리고 이를 건축적으로 실현하고자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사용자를 우선에 두자는 철학은 설계를 그려나가는 과정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는 “건축할 때 외관과 디자인은 나중 문제다. 우선 공간을 사용할 사람들이 어떻게 오랜 기간 동안 질리지 않고 사용할지를 생각하다 내부를 먼저 채워나가고 외관과 디자인은 이후에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생각이 드러난 건 ‘어쩌가가게@망원’ 역시 마찬가지다. 작지만 지속 가능하게 재미있는 가게를 해보자는 생각 아래 임차인의 만족을 높이고 공간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다 나온 것이 이 건물이다.

그는 현재 5년 동안 임대료를 동결한 어쩌다가게와 같이 공유 모델을 기반으로 한 어쩌다 시리즈를 그의 파트너 회사 ‘공무점’과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박 대표는 “현재 ‘어쩌다시장’이라고 기획된 게 있는데 어쩌다가게의 확장판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아직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는데 숙박시설도 어쩌다 시리즈로 내놓을 것이다. 이름은 ‘어쩌다 하룻밤?’ 좀 건전한 걸로 생각하면 ‘어쩌다 우리집?’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라며 웃음을 지었다./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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