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발상을 하고 실천했다는 게 정말이지 신기합니다. 지금은 2017년입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가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하 조씨고아) 덕분에 명단에서 제외된 사실이 알려진 연출가 고선웅(사진)이 이번 사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았다.
고 연출은 1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조씨고아’ 프레스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내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내리는지 몰랐다”며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배경으로 한) 연극 ‘푸르른 날에’가 무슨 블랙리스트에 오를 작품이냐”고 반문했다. 앞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2015년 박민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고 연출의 ‘조씨고아’를 본 뒤 감명을 받아 고 연출을 블랙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을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고 연출은 “나는 정치·종교적 성향을 작품에 드러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성향이 각기 다른 관객이 연극을 보러 오는데, 작품이 목소리를 내면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얻고 스트레스 날리려는 데 방해가 된다”고 의견을 내비쳤다. 이 같은 연출관과는 별개로 본인 같은 보통의 연극인이 청문회에 오르내리는 게 “온당하지 않다”며 쓴소리도 쏟아냈다. 그는 “연극은 아이 같은 마음이라야 비로소 내놓을 수 있는 어떤 것”이라며 “나는 그런 순정과 나름의 소신으로 연극을 해왔고 그렇게 믿고 살았다”고 강조했다.
청문회에 자신의 이름과 작품이 언급돼 잠시 긴장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내용이 고 연출과 조씨고아 팀에 나쁠 것은 없었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하니 이제 나도 떳떳하다”고 농을 건넨 고 연출은 “재공연 열흘 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초연 당시 고인이 된 출연배우 임홍식 선생님이 하늘에서 우리에게 선물을 준 것 같아 그분 생각을 참 많이 했다”고 전했다.
‘조씨고아’는 기군상이 쓴 중국 고전을 고선웅이 각색·연출한 연극으로 동아연극상·대한민국연극대상·올해의 연극 베스트3·올해의 공연 베스트7 등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 ‘조씨고아’를 지켜내고 복수를 도모하는 필부 ‘정영’과 그 과정에서 희생한 의인들의 한(恨)이 켜켜이 쌓이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특히 웃음과 슬픔의 절묘한 조화, 극단의 감정을 담아내는 텅 빈 무대 등이 눈길을 끈다. 고선웅 연출은 복수 끝의 씁쓸한 공허함에 주목함으로써 14세기 고전에서 동시대적인 시사점을 끌어 올린다. 1월 18일~2월 1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ssong@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