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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장훈 ‘나를 도발한다’ ...예전보다 많이 비겁해졌다

“예전보다 많이 비겁해졌어요. 나에게 쏟아질 질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게 싫어요. 어떤 이유에서든 점점...”

두려움 없이 올곧게 살아가려 애쓰는 한 사람, 김장훈이 대뜸 “비겁해졌다”고 말했다. “저도 지쳐서 열정이 예전 같지 않고 초심을 잃었어요. 가짜 열정이라도 도발해서 살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가수 김장훈이 진정한 용기는 겁쟁이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사진=오훈 기자




신간 ‘나를 도발한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장훈은 스스로 초심을 잃었다고 고백했다. 물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 김장훈의 내면과 마주하게 됐다. 김장훈의 도발적인 인터뷰 시간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정신의 끈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280페이지 분량의 ‘나를 도발한다’는 두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첫째는 여타의 자전 에세이 보다 훨씬 술술 읽힌다는 점, 두 번째는 항간에 떠도는 김장훈의 외피만 훑어보고 섣불리 판단을 내렸던 이들의 막힌 시야를 좀 더 넓혀준다 점이다. 문제적 인간 김장훈의 DNA를 글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으니 말이다.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됐다. 1장 고독한 어린이, 2장 무사의 길, 3장 행복은 ‘빠다’ 식빵, 4장 라삐끼, 쑝디, 싸빗 그리고 친구, 5장 독도를 수읽기 하다, 6장 곡비, 대신 울어주는 남자, 7장 리얼리스트의 이야기가 담겼다. 프롤로그로 ‘나는 나를 도발한다’로 포문을 열고 에필로그 ‘쓰레기 더미에서도 혁명은 피어난다’로 김장훈의 네버엔딩 스토리의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한다.

대부분의 책이 목차를 보고 대략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1장과 5장 외에는 직접 책을 읽지 않고선 내용을 가늠하기 힘들다. 기자 역시 목차만 보고 선택적 읽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애초에 접고 한 장 한 장 읽다보니 어느새 에필로그에 도달해있었다. 소설보다 흡인력 있고, 에세이보다 역동적이다.

그 중 7장에 담김 ‘동길이 이야기’는 예비 엄마 아빠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챕터였다. 김장훈의 현명함에 박수를 치며 엄지를 치켜들었던 챕터이기도 하다. (책을 읽은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겠다)

JTBC ‘썰전’에 출연중인 변호사 전원책은 “가수 이전에 참 넉넉한 남자다. 그것도 ‘얼토당토않은’ 일을 태연히 하는 남자다. “라고 추천사를 밝혔다. 배우 김수로는 ”그의 책은 에세이라기보다 소설에 가깝다. 그만큼 극적이다.“고 했다.

김장훈은 “다 아트라이터 박희연 작가의 공이 크다”며 함께 집필한 박 작가에게 공을 돌렸다.

가수 김장훈이 지난 12월 자전적 에세이 ‘나를 도발한다’를 출간했다.


가수 김장훈이 작가 김장훈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사진=오훈 기자


가수 김장훈이 후회 없이 죽는 것’을 신조로 내세웠다. /사진=오훈 기자


누군가는 대필 작가라고 명할 수도 있지만, 엄연히 이번 책은 김장훈과 박희연 작가의 공이 함께 들어갔다. 현란한 어휘나 칭찬투의 문장이 전혀 없다. 마치 김장훈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주는 듯 하다. 물론 김장훈 혼자 집필했다면 이것보단 보다 투박하고 거친 맛은 살아났겠지만 내면으로만 침잠 할 확률이 더 높았을 터.

“어마 어마하게 많은 시간 동안 박 작가를 만났어요.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제 이야기를 다 녹음했어요.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제 녹취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박 작가가 말투를 고치잖아요. 전 다 읽어보면서 제 표현이 아니다 싶은 건 수정해달라고 하면서 10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책 앞에 ‘쌩스투’를 쓰지 않았는데, 만약에 한명만 고마운 분을 쓰라고 하면, 엄마 이름도 안 쓰고 박희연 작가 이름을 쓰고 싶을 정도로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세요.”

매우 많은 시간 공을 들인 이 책은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그늘에서 소외되며 방황했던 성장기부터, 단지 살기 위해서 절규하다가 운명처럼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된 사연, 궁극의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음악관과 공연 철학 그리고 나눔과 참여에 대한 단상 등을 진솔하게 펼쳐놓는다.

항상 등이 서늘하게 살아온 겁쟁이 김장훈. 그가 애초에 생각했던 제목은 ‘진정한 용기는 겁쟁이에서 나온다’와 ‘죽기 전에 가지고 가고 싶은 단 한가지’ 이다. 두 제목 모두 세련된 제목은 아니지만 김장훈이 진짜 말하고 싶은 게 담겨 있는 제목이다.

최종 결정된 제목은 ‘나를 도발한다’ 이다. ‘당신’도 ‘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을 도발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나부터 일으켜 세우는 혁명”을 의미한다.



“‘도발’이라는 게 남을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한다는 뜻이 담겨 있어요. 그런데 남이 아닌 굳이 나에게 집적거린다고 생각해보세요. 결국 도발해야 하는 이유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시절을 포기하게 만드니까요.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을 순 없잖아요. 한명의 나, 또 한명의 나를 일으켜 세우자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그렇게 되면 제가 꿈꾸는 혁명과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가수가 본업이 아닌 책을 낸다고 하면, 분명 곱게 보지 않는 시각도 존재한다. ‘에세이란 것이 결국 자기 자랑 아니냐’에 다름 아니냐고 볼 수 있기 때문.

“책이란 게 결국 자기 자랑 아니냐. 그걸 굳이 할 필요가 있냐? 라고 딴지를 걸 수 있다고 봐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토크쇼 나가서 하면 되고, 그 시간에 가수가 노래를 하면 됐지 왜 일을 벌이느냐.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나와 나의 이야기로 좁혀지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번 책을 쓰면 계속 쓰고 싶어진다는 말이 나오나 봐요.”

책을 팔아 돈을 벌고 싶은 욕심도,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는 그는, 샘앤파커스 출판사에서 1억원 선인세를 받은 것 역시 기부했다.

가수 김장훈이 “청년을 버리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사진=오훈 기자


내면에 상처 입은 짐승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 김장훈의 책 속엔 그의 숨소리가 살아있다. 그것도 제대로 살고 싶은 울부짖음이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대 중년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이에 대한 답은 그의 책 속 한 구절로 대신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저마다 상처 입은 어린 짐승 하나쯤은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 행복한 사람이든, 여전히 불행한 사람이든, 저마다 아픔과 상처가 하나쯤은 있는 거지요. 지금 행복한 사람에겐 그 상처 입은 어린 짐승을 위해서, 여전히 불행한 사람에겐 지금의 그 불행을 위로하기 위해서, 나는 언제나 절망의 끝에서 위안과 희망을 노래하려 합니다.” -1장 고독한 어린이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중에서

그가 뜨겁게 세상에 전하려는 메시지는 거창한 게 아니었다. “내 인생에 쪽팔리기 싫어서” 오늘만 열심히 산다는 김장훈이 던진 한 마디는 “아프니까 억울하다”였다.

“당연히 아플 게 아프면 안 억울한데, 안 아파도 되는데 아프니까 억울해요. ‘포기’가 ‘트렌드’가 되어버린 세상이라니요? 누가 포기 세대란 말을 만들어냈나요? N포조선, 헬조선이란 말을 다 저 쪽이 만들어낸 말 아닌가요? 이렇게 다이나믹한 한민족들에게 ‘포기하라’는 말을 누가 하고 있나요? 정치에 관심 갖지 말라고 만들어낸 말이라고 봐요. 부당한 일인데 나서지 말라니요? 절대로 여기 청년들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청년을 버리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는 그 이야기를 해야죠. 청춘이 아픈 건 청춘이 결정해야죠.”

10개월이란 시간 동안 “돌 아이 같은 광인의 삶을 살아 온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한 김장훈. 사실 굴곡 많은 삶을 돌아보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책을 집필하는 시간은 세상에 대해 저주를 퍼붓고, 광기어린 것들로 피해를 준 것에 대한 미안함에 고개를 떨구는 시간이 됐다. 그의 뜨겁고 진솔한 고백은 때론 처절하고, 때론 유쾌하게 글 속에 녹아있다.

‘후회 없이 죽는 것’을 신조로 내세운 김장훈은 극단적인 허무주의자다. 열심히 살다 못해 치열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김장훈이 ‘많이 비겁해졌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세상을 향한 날선 칼날이 무뎌진 건가 싶었다.

이에 대한 그의 답은 “성질은 바뀌는데 타고난 성향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였다. ‘비겁’이란 뜻이 불의 앞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 넓어진 시각으로 “예전에 못 껴안았던 걸 껴안게 됐다”는 의미였다.

“무기력하게 버려지지 말고 분노하라. 그것도 지혜롭게.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함께 고민하자” 하는 인간 김장훈의 모습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연예계 대표 노총각인 김장훈은 인터뷰 말미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결혼은 7대 범죄이다”며 너스레를 떨더니, “가수가 아닌 작가로서 인터뷰는 처음 하는 것이다”며 “오늘이 정말 특별한 날이다”며 웃었다.

“저한테도 처음 하는 일이 있다는 게 신나요. 이런 경험이 특별한 것 아니겠어요. 누구처럼 끝맺음을 못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요. 하하. ”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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