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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비정규직에게 ‘큰절’ 하는 사회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혁 부산대 법학대학원 교수




정유년 새해를 그 누구보다 들뜬 마음으로 시작한 이들이 있다. 바로 국회 청소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지금껏 국회직원이 아니었다. 용역회사 소속이었다. 올해 국회 정식 직원으로 전환됐다. 지난해 12월 3일 직접고용을 위한 예산안이 통과된 덕분이다.

국회 ‘직원 명찰’이 가져다 준 변화는 가히 드라마틱했다. 임금도 올랐거니와 말로만 듣던 선택적 복지 포인트와 건강검진 혜택도 받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국회의장 명의로 연말연시 인사 문자가 휴대폰에 들어 왔다. 시무식 때는 국회 사무총장이 ‘큰절’도 했다. 어느 정치인은 국회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떡국을 같이 먹었다고 한다. 모처럼 국회가 제 역할을 했다 싶어 흐뭇하다. 이것을 끝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국회가 청결할 수 있었던 것은 청소노동자들 덕분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궁금하다. 왜 그들이 용역회사 노동자들일 때에는 문자인사도, 큰절도, 떡국도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 지금껏 국회 청소 노동자들은 투명인간이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노동은 존중받지 못했던 게 틀림없다.

노동의 본질은 ‘존중’이다. 다름 아닌 인간의 노동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내키면 언제라도 자를 수 있는 사람, 여차하면 임금 떼먹어도 되는 사람, 함부로 욕해도 상관없는 사람, 언제 무슨 일이든 시켜도 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우리 시대 비정규직이다. 진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가장 확실하고 명쾌한 해법이다. 비정규직 없는 사회야말로 최선임에 틀림없다.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조금 주저된다. 두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첫째, 구체적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날 경영환경에서 고용 유연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외국의 사례도 다르지 않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정규직만으로 노동시장을 채우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실용적 관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만은 획기적으로 높여주어야 한다. 동료로서 회사에서 당당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배려’가 아니다. 이것은 ‘당위’다.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을 감수하면서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 주는 사람들이다. 기업이 경기변동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고, 정규직이 고용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것도 그들 덕분이다. 같은 노동력이라면, 마땅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큰절도, 문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먼저 챙겨야 한다. 그게 순리다. 우대는커녕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업신여기는 것은 정말 염치없는 짓이다.

둘째, 미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최근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 1,80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하필이면 청소업무는 100%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먼 얘기도 아니다. 불과 10년 후의 일이다. 예측대로라면 국회 청소 업무 역시 기계로 대체될 것이 틀림없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소식과 묘하게 대비된다. 지금 정규직으로 전환된 국회 청소노동자들이야 그렇다 치자. 멀지 않는 미래에 우리 노동시장은 정규직이고 뭐고 간에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지도 모를 판이다. 독일과 일본이 일자리 개혁으로 저리 분주한 이유다. 우리는 지금 최순실 터널에 갇혀 있다. 이마저도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발전과정이라고 믿는다. 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의 파도가 우리만 비켜갈 리 만무해서다.

미래 일자리 전쟁은 시작되었다. 1597년 정유년 명량에서 그러했듯, 꼼꼼한 준비만이 기적을 만들 수 있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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