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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in이슈]세계 톱 10 해운사 한진해운의 '파산'…결정적 악수는 무엇일까

한 때 세계 톱 10 해운사였지만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한진해운.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는 한진해운의 알짜배기 자산인 미주-아시아 노선에 대한 매각 공고를 내며, 2일 한진해운의 회생절차를 폐지하겠다 밝혔다. 이는 지난해 8월 31일 한진해운이 회생절차를 신청한 지 약 5개월 만이다.

국내 1위, 세계 7위라는 굵직하고 거대한 타이틀을 거머줬던 국내 최대 해운사가 어쩌다 파산이라는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창립 40년 만에 파산이란 불명예를 안고 사라지게 된 한진해운 ‘최악의 악수’는 무엇이었을까.

지난해 10일 미국 롱비치 항에 화물을 하역하고 있는 한진 그리스 호. /연합뉴스




높은 용선료에 장기계약 체결…발 묶인 위기관리

해운업이 활황이던 2010년. 최은영 회장은 업황 호전을 과신하고 높은 용선료로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한진은 지난 97년 IMF때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가 선박을 팔고 남의 배를 빌려 운행하는 용선 위주 사업으로 재편한 터였다. 하지만 국제 수출입 경기 하락으로 해운업황이 고꾸라지며 장기계약은 독배가 되고 말았고, 한진해운은 장기계약에 대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가보다 5배 높은 용선료를 지불하며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최 회장은 2014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에게 자금 지원을 받고 경영권을 일부 넘겼지만 이미 사태는 늦은 상태였다. 조양호 회장은 2016년 4월 한진해운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겼다. 그해 8월 한진해운은 각국 항구 정박료에 6,500억의 연체 거래와 약 5조 가량의 금융차입금을 안은 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16년 9월 한진해운의 비정상 운영 선박은 컨테이너선 70척, 벌크선 15척 등 총 85척, 비정상 운항 선박 수는 85척이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단 소식을 들은 해외 항만 하역업체들은 작업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각국은 미수금을 받지 못할 거란 생각에 선박 회수와 압류에 나섰다. 한진해운이 가입하고 있던 해운동맹 CKYHE얼라이언스 소속 선사들도 한진해운과 선복(컨테이너 적재 공간) 공유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한진해운은 그야말로 위기 앞에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당시 한국선주협회는 한진해운 파산의 중장기적 파장 피해 규모가 약 20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는 그해 한진해운 사태 이후 해운업 공백을 메우기 위해 6조 5,000억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또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현대 상선이 인수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6년 12월 13일, 법원의 선임에 의해 한진해운 실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한진해운의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다는 보고서를 제출하고 한진해운 청산은 불가피하게 됐다. 삼일회계법인은 최종 조사보고서에 “기업 청산가치를 1조7,980억 6,500만원으로 추산한다. 계속 기업가치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으로 추산할 수 없다. 한진해운의 자산총계는 2조 7,230억 9,700만원. 부채총계는 3조5,267억2,900만원이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9월 1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판사들이 부산항 신항 한진해운 컨테이너터미널을 방문, 한진해운 임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가고 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한진해운 선박 입출항과 컨테이너 운송이 전면 중단됐다.


몸집 다지고 있던 머스크…단기책에 급급했던 한진해운

2014년 당시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었던 한진해운과 다르게 세계 1위 해운업계 머스크는 호실적을 내며 승승장구했다. 덴마크 선사인 머스크라인은 한 개의 컨테이너가 전년 대비 7.7% 떨어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성장을 일궈냈다. 머스크의 전략은 업황 경기 변동에 견딜 수 있게 용선보다는 자가 선박 운용 위주로 경영했다. 연비가 좋고 운송능력이 뛰어난 자체 신형 대형 선박을 투입해 운영 비용을 낮추는 전략이었다.



호황기에 취해 장기계약으로 발을 묶어 버린 한진해운 경영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용선료 등으로 계속 재무 부담이 높아지자 한진해운은 2011년 이후 기업어음(CP)을 발행해 차입구조를 단기화시켰고 영구채 발행이 지연되는 등 악순환이 이어졌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오른쪽)이 지난해 9월 9일 국회에서 열린 제2차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연석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평범한 가정주부의 급작스런 경영수업...최악의 오너리스크

한진해운의 몰락은 ‘오너리스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1977년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손수 일군 한진해운은 1945년 ‘한진상사’를 시작으로 국내 첫 컨테이너 운항 선발을 하며 점차 부피를 키워나갔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 잠시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해체됐지만 다시 회사를 세우고 인수 합병을 통해 우량 기업으로 키워냈다. 1995년 한진해운은 거양해운을 또 다시 인수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세계 5위 선주사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됐다. 하지만 조중훈 창업주의 아들 조수호 회장이 사망하면서 기업을 물려받은 부인 최은영 신임 회장은 글로벌 경기침체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최 회장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아닌 직접 경영에 나서며 “직원들이 창의력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대모 역할을 하고 싶다”는 감성 경영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소수의 ‘비선 라인’에 의존한 경영을 펼쳐 내부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또 기업의 언어격인 ‘대차대조표’ 등 기본적 재무제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문도 있어 직원들의 신뢰를 잃기도 했다.

회사 경영이 위기에 처하자 최 회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며 급여와 퇴직금 97억, 시가 2,000억이 넘는 사옥주 유수홀디이스 등 재산을 챙기고 회사를 떠났다. 당시 최 회장은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을 채권단에 넘길 때에도 사전에 주식 97만여주를 팔고 10억원 이상의 손실을 면하는 등 한진해운 파산절차에 책임없는 모습을 보여 해운사 직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한국거래소는 2일 오전 11시 24분부터 한진해운의 주권 매매거래를 정지했다. 현재 한진해운의 주요 자산 매각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상태로, 남은 자산은 아주터미널 자회사인 한진퍼시픽과 해외법인 및 사옥, 사원 아파트 등이 남아있다.

만일 준비된 총수가 경영권을 넘겨받았다면, 경영전문가의 발탁과 배치 등 용인술이 적시에 이뤄졌다면, 한진해운 40년간의 노력이 이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지진 않지 않았을까.

/정수현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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