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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다름의 美學 어우러진 ... '제니타스 빌딩'

색깔 달라지는 벽·크기 다른 창 … ‘작은 지구촌’ 이태원의 다양성 담아

직육면체의 모습을 한 건물이지만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창과 빛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외벽의 알루미늄 패널은 제니타스 빌딩이 이태원의 다양화된 문화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사진제공=종합건축사사무소 시건축




이태원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모여 함께 살아가는, 거대 도시 서울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사람을 흥분시키는 곳 중 하나다. 하지만 이태원은 여전히 3~4층 높이의 오래된 건물들이 왕복 6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늘어서 있는 서울에서 가장 낡고 지저분한 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네이버의 인기 캐릭터 상품인 ‘라인 프렌즈’ 매장이 있는 건물로 더 유명한 ‘제니타스 빌딩’은 이런 이태원의 상반된 두 이미지를 잘 어우러지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이태원에 들어설 수많은 건축물에 하나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 다원화된 문화의 아이콘

빛·시간·시선 따라 외관 다양하게 변신

“이태원 아니였다면 하지 못했을 시도”



이태원에서 가장 유명한 해밀턴 호텔과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소방서를 지나치면 진분홍색의 독특한 외관을 한 ‘제니타스 빌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제니타스 빌딩은 독특한 외관을 갖고는 있지만 지나가는 행인이 신경 써서 찾아보지 않는다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이태원의 풍광과 잘 녹아들어 있는 건물이다.

제니타스 빌딩의 가장 큰 특색은 건물 외벽의 색(color)이다. 분홍빛 알루미늄 패널을 사용해 보는 사람이나 빛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변한다. 어떤 때는 분홍색이지만 어떤 때는 자주색으로 어떤 때는 녹색에 가깝기도 하다.

건물 정면의 창문도 일률적이고 정형화된 모양이 아니다. 위치도 제각각이고 크기도 모두 다르다. 건축가는 이 건물에 이태원의 다양성을 이런 방식으로 입혀놓았다.

종합건축사사무소 시건축의 류재은 소장은 “이태원에 오면 우리 사회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며 “제니타스 빌딩 외관이나 다양한 형태의 창문도 그런 의미”라고 말했다. 류 소장은 “이태원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어떤 곳에서든 이런 시도는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어우러진 이태원 거리에서 제니타스 빌딩은 스스럼없이 녹아들어 자연스러운 풍광을 연출한다. /사진제공=종합건축사사무소 시건축


●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건축

내부 기둥 없이 벽으로 건물하중 감당

공간 확장성 극대화 위한 노력 엿보여

이태원은 모든 건물을 28m 아래로 지어야 하는 높이 제한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대부분 7층짜리 건물로 지을 수밖에 없다. 건폐율 60%, 총 용적률 420%가 적용돼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주어진 공간을 사용해야 했다. 이 때문에 건물을 들쭉날쭉하게 짓는 등 디자인 측면에 다양한 모험을 하기 힘든 곳이다. 그래서 제니타스 빌딩은 외관의 독특함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전체적으로 직육면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애초 건축주가 이런 형태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직육면체 빌딩은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쓸데없이 버리는 공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태원의 수많은 상업용 빌딩 속에서 단순한 직육면체 건물은 주목 받지 못한다. 그래서 건축가는 건축주와의 수많은 교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했다. 류 소장은 “상업용 건물의 경우 건축가가 먼저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건축가의 생각은 제니타스 빌딩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내부 공간에 기둥을 거의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건축가는 제니타스 빌딩의 내부 기둥을 없애고 건물 하중은 순전히 벽이 감당하도록 설계를 했다. 외부에서 보면 전혀 못 느끼도록 외벽 경계선을 불규칙적이게 보이도록 섞어놓앗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부 외벽은 1층부터 7층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어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도록 했다. 내부 공간에 기둥을 없앰으로써 레스토랑이 입점할지 의류매장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건축물 내부 공간의 확장성을 극대화하려는 건축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류 소장은 “내부 기둥은 상업용 건물에서 공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층과 층 사이의 내부 슬래브도 어떤 것을 걷어내더라도 다 연결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설명했다.

제니타스 빌딩의 7층 사무실 공간. 천장을 옥상의 외부 난간 높이까지 들어 올려 공간 활용도를 높였으며 외부 옥상과 바로 연결되는 계단을 둬 7층 사무실의 가치를 높였다. /사진제공=종합건축사사무소 시건축




● 이태원 빌딩의 방향성 제시

7층과 옥상공간 내부계단으로 연결

‘애물단지 꼭대기층’ 공간가치 높여



가장 꼭대기인 7층과 그 위의 옥상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실 이태원에서 7층은 세입자들이 아주 선호하는 공간이 아니다. 행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7층과 옥상 공간을 내부에서 연결시킴으로써 7층이라는 공간의 가치를 더 높여줬다. 7층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작은 마당이 옥상에 생기는 셈이다.

제니타스 빌딩의 옥상은 건물의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공간이다. 제니타스 빌딩의 옥상은 난간이 없다. 그래서 옥상에 서면 사람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방해물이 전혀 없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법적으로 반드시 있어야 하는 난간은 외곽에 설치돼 있지만 7층 천장을 난간 높이만큼 들어 올렸고 난간과 사람이 서 있는 장소 사이에 나무와 꽃 등 조경을 채워놓았다.

사실 이태원 거리에서 건축물을 지을 때 다양한 종류의 시도를 하기에는 대지 환경이나 규제가 만만치 않다. 앞으로 지어질 건물도 모두 높이 제한에 적용 받아 비슷한 고민과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류 소장은 바로 그런 고민의 지점에서 제니타스 빌딩이 하나의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류 소장은 “앞으로도 이태원에 지어질 건물은 높이 제한 등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제니타스 빌딩이 이태원에서 한 가지 대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제니타스 빌딩의 옥상에 올라서면 시야를 방해하는 난간이 보이지 않는다. 난간은 있지만 옥상의 중앙을 난간 높이까지 들어 올렸으며 난간과 옥상 중앙 사이에 조경을 설치해 난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했다. /사진제공=종합건축사사무소 시건축


■설계자 인터뷰 - 류재은 시건축 소장

“건축물엔 그 시대의 사상과 고민 담겨야”

사실 제니타스 빌딩은 수많은 국내 건축 관련 상을 수상한 종합건축사사무소 시건축의 류재은(사진) 소장의 기존 어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 2007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의화빌딩이나 신사동 백현빌딩은 겹겹이 쌓인 박스와 박스로 나뉘어진 개성 뚜렷한 공간, 그리고 다양한 얼굴을 한 외벽의 색 등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제니타스 빌딩은 직육면체의 정형화된 매스(mass·덩어리)를 기본으로 하되 외관에 다양한 창문과 색이 수시로 변하는 알루미늄 패널을 사용했다.



류 소장은 “사실 한 가지 스타일이나 방식으로 건축을 하기에는 우리가 갖고 있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며 “이런 접근법이 좋을 때가 있고 저런 방법이 맞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로서 건축가의 어휘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그 어휘에 자신도 모르게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큰 실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설계 의뢰가 들어오면 예전에 잘했던 설계를 따라가게 되며 그게 어떻게 보면 편할 수도 있다”며 “‘○○의 건축가’ 이런 식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게 편하고 쉽게 알릴 수는 있지만 결국 그 속에 건축가 자신이 잠식돼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물은 한 사회의 고민과 이데올로기(사상)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물이 들어서는 장소의 역사성과 의미를 파악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 건축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요즘에는 네덜란드와 북유럽의 건축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역사성과 예술성이 있으면서도 실용성을 절묘하게 접목한 그들의 건축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류 소장은 공공 건축물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공공 건축물은 공간의 쓰임이 정해져 있는데다 설계 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류 소장은 “기존에도 공공 건축 프로젝트에 조금씩 참여하기는 했지만 기회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며 “공공성에 실용성을 더한 건축물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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