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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호 폭발의 미스터리





불황과 관세 전쟁, 군함의 원인 모를 침몰. 황색 언론의 왜곡 보도와 전쟁 사주(使嗾). 미국·스페인 전쟁 발발. 19세기 말 미국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사건들이다. 기폭제는 1898년 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 전함 메인호(USS Maine) 폭발 사건. 뚜렷한 물증도 없이 용의자로 지목된 스페인에 미국은 전쟁을 선포했다. 결과는 미국의 압승. 고립주의에 머물던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식민지 확보에 뛰어들었다. 메인호 폭발 사건은 ‘경찰국가 미국’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사건의 배경은 미국의 경제난과 맞물린 스페인과의 관계 악화. 500여 은행과 1만 5,000여 기업이 문을 닫고 단기 금리가 연 125%까지 치솟은 1893년 공황 이후 미국에서는 세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우선 보호무역주의가 보다 심해졌다. 둘째, 해외 개척에 나서야 한다는 ‘뉴 프런티어(new Frontier)’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세 번째, 유럽에서 전이된 사회주의 이념와 포퓰리즘이 결합해 농민 중심으로 대중정당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보호무역과 관세 인상에 나선 미국은 먼저 설탕 등 쿠바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올렸다. 경제적 타격을 입은 쿠바에서는 식민 모국인 스페인에 대한 저항운동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스페인은 쿠바 독립운동을 혹독하게 탄압했다.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일고 독립운동이 확산되자 미국은 조바심을 냈다. 눈 밑의 가시 격인 쿠바를 차지하고 싶었던 터. 40여 년 전에는 스페인에게 쿠바를 매입하려다 실패한 적도 있었다. 미국은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된 쿠바를 영국이 차지하거나 쿠바인들의 자주적인 정권이 들어서는 경우를 꺼렸다.

쿠바인들의 독립운동이 고조에 달한 1898년 미국은 쿠바 내 미국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함 메인호를 보냈다. 6,682t 메인호는 1889년 468만 달러를 들여 건조한 중무장 순양함으로 미 해군의 2선 급 함정이었지만 쿠바 인근 해역에 전개된 어떤 스페인 군함도 압도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바나항에 도착해 정박 중이던 메인호는 2월15일 오후 9시40분, 갑자기 폭발해 가라앉고 말았다.



장교 2명과 수병 264명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미국을 뒤흔들었다. 퓰리처와 허버트의 극우신문들은 증거도 없이 스페인 소행으로 몰며 전쟁을 부추겼다. 스페인 해군이 설치한 기뢰나 어뢰, 또는 폭발물로 메인호가 침몰했다는 기사를 연일 써댔다. 당황한 스페인은 두 가지 조치를 내놓았다. 쿠바에 대한 압제 중단과 공동 조사 제의. 미국이 공동 조사를 거절하자 단독 조사한 스페인은 두 가지 근거를 들어 사고와 무관하다고 항변했다.

스페인 조사단은 폭발 당시 화약 냄새가 없었으며 주변의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화약보다는 내부 폭발에 의한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바나 항구 인근에서 메인호 주요 보직 장교들이 대거 살아남았다는 점(생존자 89명 가운데 18명이 장교였다)이 수상쩍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미국의 태도는 더욱 강경하게 변해갔다. 미국 언론들은 스페인의 평화 제안을 일축하며 ’메인호를 기억하라’는 구호 아래 ‘쿠바인들의 고통을 끝장내기 위한 전쟁’을 노골적으로 부추겼다.



평소에는 신변잡기나 스캔들 등 흥밋거리를 주로 다뤄 ‘황색 언론’으로 불리던 조지프 퓰리처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신문은 ‘애국심’을 자아내는 자극적 기사를 경쟁력으로 쏟아냈다. 결국 스페인과 전쟁에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이던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마저 여론과 의회의 압박에 밀려 스페인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불응할 경우 전쟁도 불사한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스페인이 ‘없는 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버티는 가운데 미국 하원은 전쟁 결의안을 311대 6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인 미국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4월20일 선전포고의 결과는 어린애 손목 비틀기. 미국 내부에서조차 ‘소풍 같은 전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스페인 동양함대가 5월 초 필리핀 마닐라만에서 박살 나고 쿠바도 4개월 만에 미군의 손에 떨어졌다. 전쟁 비용으로 2억 8,300만 달러(GDP의 1.1%)를 투입한 미국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 결실을 얻었다. 필리핀과 푸에르토리코, 마리아나스, 괌을 넘겨받았다. 쿠바는 독립을 따냈으나 미국의 지배권을 인정하며 군사기지를 내줬다. 공산화한 쿠바에서도 아직껏 운영되는 ‘관타나모 미군 기지’도 이때 생겼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앞세워 미 대륙을 발견(1492)한 이래 4세기 넘도록 막대한 금은 보화를 챙겨갔던 스페인 제국은 돈이 되는 식민지를 모두 뺏겼다.





미국의 입장에서 ‘소풍 같은 전쟁’이었다는 이 전쟁은 두 명의 영웅을 낳았다. 군의관 월터 리드는 말라리아와 황열병의 원인이 모기라는 사실을 규명,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구해냈다.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미군은 5,462명이나 순수 전사자는 379명이고 대부분은 황열병으로 죽었다. 월터 리드 박사가 아니었다면 피해가 더 늘어났을 수도 있다. 월터 리드는 전쟁 직후 사망했어도 보이지 않는 공을 세웠다. 수에즈 운하를 뚫은 프랑스인 러셉스도 실패한 파나마 운하 공사를 미국이 1914년 완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황열병 퇴치법을 발견한 덕분이다. 한국인 최초의 서양의사이며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박사가 그의 밑에서 배웠다. 세계 최대 군 병원으로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 박사가 사망한 장소인 월터 리드 미육군의료센터의 병원 명칭도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미국·스페인 전쟁이 낳은 희대의 전쟁 영웅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쟁이 터지자 해군부 차관직을 던지고 사비를 털고 모금 활동을 벌여 의용 기마연대를 조직하고는 대령 계급장을 단 특공대장으로 활약해 대통령에 오르는 기반을 쌓았다. 루스벨트는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최신예 전함을 건조하고 각종 국제사건에 개입, ‘경찰 국가 미국’의 초석을 깔았다. 조선도 이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은 스페인에게 빼앗은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보장받기 위해 신흥 국가 일본을 파트너로 삼았다. 한국과 필리핀의 식민화를 상호 묵인하자는 가쓰라·태프트 밀약 (1905) 속에 조선은 망국의 늪으로 빠졌다.

미국의 부상과 스페인의 몰락, 일본의 반사 이익으로 귀결된 메인호 폭발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스페인은 과연 범인일까.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미국사 산책 4(전권 17권)’에 따르면 한사코 전쟁을 피하려 노력했던 점을 감안하면 스페인이 저지른 짓 같지는 않다. 사고 1년 뒤 메인호가 엔진 고장과 석탄 분진으로 인해 폭발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시됐으나 대부분의 미국 역사서는 오늘날도 ‘원인이 불분명하다’고 기술한다.

반면 필리핀 교과서는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미국 스파이들이 저지른 사건’이라고 기술한다. 쿠바 교과서도 ‘모든 정황은 이 사건이 미국의 자작극이었음을 보여준다. 백인 장교들이 폭발 당시 배에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참사를 피했다는 사실은 미국에 책임이 있다는 이론에 설득력을 더해준다’고 쓰여있다. 카리브 연안국들의 교과서에는 ‘쿠바의 독립운동가들이 미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을 것’으로 간주한다. 패전을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 스페인 교과서는 단 한 줄로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국은 스페인의 사보타주가 폭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사건의 실체는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남겨질 가능성이 크다. 각국 연구기관의 탐사팀이 현대 장비와 컴퓨터를 활용해 재조사를 수차례 시도했으나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폭발 원인은 알 수 없어도 확실한 점이 하나 남는다.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도 있다. 당시 상황을 다시금 되새겨 보자. ‘불황과 관세 전쟁, 군함의 원인 모를 침몰. 황색 언론의 왜곡 보도와 전쟁 사주….’ 마르크스는 일찍이 말했다. ‘역사는 희극과 비극으로 반복된다’고. 국제무대에서 경제 전쟁이 격화하는 마당에 북한의 불장난과 미국의 강력 대응 의지, 또다시 미국과 손잡은 일본…. 역사가 119년 시차를 뚫고 반복된다면 희극과 비극, 어느 쪽일까. 최소한의 이성이 작동하는 시대가 되면 좋겠다.

/논설위원 겸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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