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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잃은 보수, 길을 묻다] "保守 망하고 補修 흥했다"...미래지향·합리적 변화의 길 추구를

<끊임없이 변혁한 서양보수...한국의 혁신 방향은>

아데나워·드골 등 시대 요청 수용 '보수 위기' 극복

레이건·대처도 권력 남용 없이 강력한 리더십 발휘

한국, 공정 시장경제·공동체 건설 등 실현했나 반성

성찰적 보수로 거듭나 국민 행복·정의 모색해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의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의회중심제 국가인 영국은 매주 수요일 총리가 의회에 나와 여야 의원들과 국정을 논의한다. /서울경제 DB




‘보수(保守·보전하여 지킴)는 망하고 보수(補修·낡은 것을 새롭게 보충하고 닦음)는 흥했다.’

민주주의 역사가 우리보다 긴 서양 역사를 관철하는 진리다. 과거의 것만 고수하면 민심을 잃었고 끊임없이 새로 적응하고 혁신하면 통했다. 변화된 것을 받아들여 사회 발전에 기여해온 게 서양 보수의 역사인 것이다.

18세기 중후반 영국 보수의 기반을 탁월하게 닦은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 2차 대전 후 ‘위대한 프랑스’ 건설에 나선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 2차 대전 후 분단과 나치즘 극복의 단초를 만든 서독의 콘래드 아데나워 총리…. 이들은 보수의 위기라는 전환기에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사회적 모순과 시대적 요청을 잘 해결해 변화를 이끈 리더다. 각자 지적인 힘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변화 요구를 억압하지 않고 수용하며 상대 진영의 어젠다까지 공유했다.

아데나워의 경우 독일 역사에서 가장 극보수였던 나치가 나라를 망쳤을 때 당연히 개혁적인 사회민주당의 집권이 점쳐졌지만 보수정당 출신임에도 나치 치하에서 투옥된 경력 등으로 신뢰를 받아 초대 총리로서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았다. 다소 권위주의적 스타일이었지만 개신교와 가톨릭, 노와 사의 갈등관계를 잘 풀어냈다. 철강과 탄광 등의 노동자 요구를 끌어안아 사회적 시장경제를 구축한 것이 이후 통일은 물론 오늘날 앙겔라 메르켈의 기독교민주당 정부의 사실상 완전고용체제를 구가하는 시발점이 됐다.

드골은 육사 역사교관 출신의 2차 대전 전쟁영웅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프랑스 발전의 초석을 놓았지만 시민사회의 요구를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고 국민들의 변화 요구에 순응했다. 1968년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학생과 노동자의 시위를 무력진압하지 않고 다음해 하야하기도 했다. 디즈레일리는 문학가와 재무장관 출신의 지식인으로 보수지만 자유무역을 강조하고 노동조건 등 기본권을 강조했으며 투표권 확장에 찬성했다.

굳이 서양의 탁월한 보수 지도자들을 예로 든 것은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극심한 혼돈에 빠진 우리 보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정치학자)은 “‘보수가 바로 서야 진보도 바로 설 수 있다’는 점에서 서양 민주주의 역사를 통해 보수와 진보가 합리적으로 공존하고 경쟁해서 사회 발전을 함께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보수는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뒤 한국전쟁을 극복하고 산업화의 주역으로서 공을 세웠다. 물론 우리 국민들의 피땀이 기반이 됐지만 근대국가로의 전환 과정에서 보수의 공이 결코 작지 않다. 1950년대 필리핀이나 파키스탄이 우리보다 잘살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보수의 리더십은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1987년 6월항쟁을 거치며 분출된 민주주의 요구에 보수는 적응하지 못했다. 분단체제에 편승한 편 가르기와 갈등·분열 조장이라는 책임도 적지 않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진보가 벽에 막혀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는데 보수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변화와 역사 발전에 순응하지도 못했다.

진보가 무너졌을 때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나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두 사람은 확고한 보수주의자로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꾀했지만 권력을 남용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했고 부패에 물들지 않았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보수로 신자유주의 기조를 수용하면서도 노조를 억압하지 않았고 동독과 평화체제를 추진했던 빌리 브란트 총리(사민당)의 정책을 계승해 소련 해체기를 틈타 1990년 통일에 성공했다. 물론 일제 강점기를 겪고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에서 450만명의 사상자를 낸 우리 입장과는 사뭇 다르지만 분단체제에서도 사회 통합과 보수의 개방적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보수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 △법 앞의 평등 △지속 가능한 공동체 건설이라는 보수 본연의 가치를 제대로 실천했는지 심각히 되돌아볼 때다. 자유주의·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해 보수의 불신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합리적 보수로 전환해 실력 발휘를 해야 한다. 김영우 바른정당 의원은 “가짜 보수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부끄럽게 됐다”며 “이번에 종합검진을 통해 치열하게 반성하고 국민만을 보고 진정한 보수자유주의로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리적 진보로 분류되는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수가 안보나 경제가 형편없었지만 안보와 재벌 중심 사고에 기댄 반사이익을 얻었다”며 “이제는 ‘관습적 보수’가 아닌 ‘성찰적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보수가 국가 발전의 중심세력이었는데 국가 리더십 위기를 초래했다”며 “안보위기·경제위기를 맞아 자기혁신을 통해 안정적으로 개혁하는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보편적 원리에 의해 판단하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국가의 이익과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독재와 권력 남용에 반대하고 시민의 행복과 정의를 실현하는 정치제도와 방법을 찾아야 한다.” 18세기 영국 하원 의원이자 저술가로 보수주의 사상의 대가로 꼽히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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