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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채, 건국채





1950년 2월23일, 정부가 국채를 발행했다.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발행된 국채의 이름은 건국채(建國債). 조세 수입과 귀속 재산 판매가 부진한 상황에서 재정 재원 확충을 위해 1949년 국회에서 제정한 법을 근거로 1억원 규모의 건국채를 시중에 선보였다. 액면가 최소 500원에서 최대 1천만원까지 7종이 발행된 건국채 정식 이름은 오분리건국국채(五分利建國國債). 이자가 연 5%여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건국채 1회 발행분은 상환 방식이 독특했다. 원금을 2년 거치 후 3년에 걸쳐 상환하되, 매년 일정 시점에 연 5%씩 이자를 내줬다. 2차 발행분부터는 이자를 원금 상환시 복리로 계산해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자금에 쪼들렸던 정부는 건국채에 기대를 걸었으나 막상 팔기 힘들었다. 수익률이 낮았던 탓이다. 액면 수익률(5%)이 정기예금(3.8%)보다는 높지만 연 50% 선인 물가 상승률을 훨씬 밑도는 국채 판매를 위해 정부는 6회차 발행 분부터 사실상의 강제할당제라는 특별한 수단을 부렸다.

강제할당제의 수단은 많았다. 일제가 남긴 재산을 정부가 몰수한 귀속재산 또는 국유재산을 불하하거나 임대할 때 건국채를 떠넘겼다. 각종 등기나 검사, 유류 배급, 인허가, 면허 갱신 등에도 건국채 인수라는 조건이 붙었다.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장기주택채권이나 지하철 공채 등을 의무적으로 매입했던 ‘첨가 소화’ 방식이 바로 이때 도입된 것이다. 정희준 전주대학교 교수(금융보험학)의 연구 논문 ‘초창기 한국 채권시장에 대하여’에 따르면 1961년까지 건국채 발행잔고는 540억원. 부족한 세수를 메우고 전쟁 비용과 전후 복구에 쓰였다.

건국채는 곧 한국 자금시장과 증권시장의 총아로 떠올랐다. 금리가 낮아 투자자들이 외면했던 발행시장과 달리 유통시장에서는 큰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건국채를 억지로 떠안은 인수자들의 자금 여유가 많지 않았다. 만기까지 건국채를 유지하기보다는 인수받자마자 액면가의 10~20%에 불과한 헐값으로 시장에 팔았다. 이렇게 사들인 건국채를 만기까지 유지하면 3년간 70~80%의 수익률을 거뜬히 올렸다. 유통시장에서 사고파는 경우는 연 100%를 넘는 수익도 가능했다. 건국채를 집중 매입, 운영하며 7년간 재산을 27배로 불린 사채업자도 있다.

건설사들도 건국채를 반겼다. 정부 입찰공사 보증금으로 건국채 납부를 인정해주는 제도에 따라 자연스레 거리의 매매시장(점두거래)이 형성되고 시세를 조종하려는 작전세력도 생겨났다. 증권거래소 거래 종목으로 상장된 1953년 이래 건국채는 투자의 알파와 오메가로 자리 잡았다. 상장주식이라야 10여개 종목 , 주식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야 10%가량이던 시절, 건국채는 증시 전체거래금액의 9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건국채는 투자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던 셈이다.



유통이 활발하고 거래물량도 많아지면서 갖은 구설수도 낳았다. 무기명 건국채는 뇌물 용도로도 쓰였다. 1958년 1월에는 ‘국채 파동’도 일어났다. 발행 물량이 과다하다는 논란 속에 정부가 발행 중단을 결의했다가 번복하는 국채파동 속에 한나절 매매가 진폭이 200%를 넘었다. 뾰족한 증거는 없었어도 일부 은행과 증권사들은 혼란의 와중에서도 ‘작전을 펼쳤다’는 비난을 샀다. 국채파동은 1962년 쿠데타 세력들이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벌인 증권파동과 함께 초기 증권시장의 발전을 가로막은 2대 사건으로 손꼽힌다

국채파동은 건국채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투자 대상 부족이 파동을 낳았다는 반성과 경제개발 본격화로 1962년부터는 주식 비중이 채권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건국채는 1963년 발행이 종료됐지만 아직도 보상 가능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건국채로 접근하는 사람은 사기꾼으로 봐도 무방하다. 건국채 상환은 1975년에 끝났다. 건국채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공채, 이승만 정권 시절 발행된 지가증권 등이 사기꾼들의 속임수에 주로 동원되지만 애초부터 상환 의무가 없거나 상환은 이미 끝났다.

최초의 국채인 건국채 발행 67년을 맞아 의문이 든다. 우리의 재정 여건은 당시보다 얼마나 나은가. 앞으로 전망은 밝은가. 외환위기(IMF 사태) 이전 50조원이던 각종 국채의 발행잔액이 지난해 말에는 917조원으로 뛰었다. 갈수록 커지는 발행잔액은 나라 빚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다. 국채 뿐이랴. 나라 전체의 채무도 급증 일로다. 어린 아이와 백발 노인까지 포함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고 있는 국가 채무가 1,246만원에 이른다. 여기에 가계부채도 1,343조원에 이른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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