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덫에 걸린 경제민주화] 불공정 고발, 大·中企비율 16:84..."전속고발권 폐지 역효과날판"

오히려 중소기업 피해만 커져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워"

집단소송제·징벌적손배제도

취지는 사라지고 부작용 우려

"기업 스스로 구제 법체계 중요"





반기업정서를 등에 업고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한 경제계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상법개정안·징벌적손해배상제도·집단소송제도와 더불어 이번 20대 국회의 핵심 경제민주화 법안인 전속고발권 폐지를 놓고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중소기업마저 반대 성명을 내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어설픈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는 실정이다.

23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공정거래위원회가 검찰에 고발한 불공정행위 건수 8,097건 중에서 대기업이 대상이 된 고발 건수는 16%(1,273건)에 그쳤다. 전체 고발 사건의 84%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 대상이었다.

불공정 거래행위의 고발 대상이 되는 기업이 중소·중견기업에 쏠리는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보다 중소기업끼리의 거래가 더 많기 때문이다.

실제 중소기업조사통계시스템에 따르면 5인 이상 중소기업(12만6,178개) 중 납품 거래를 하는 기업은 5만8,298개. 이 중 대기업과 거래하는 기업은 14.7%(8,469개)에 불과했다.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기업은 57.9%(3만3,754개), 대기업·중소기업과 모두 거래하는 기업은 1만5,973개(27.4%)였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될 경우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는 셈이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속고발제의 실제 고발 사례는 중소기업 간 분쟁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며 “(폐지되면) 중소기업 간 거래보다 더 많은 경제행위가 이뤄지는 소비자와 소상공인 분쟁이 발생하면서 자영업의 위축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되는 것도 문제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가격·입찰 담합뿐만 아니라 기업결합, 시장지배력 남용행위 등 대부분의 기업행위에 대해 형벌조항을 두고 있다. 미국의 사법부가 형사 기소가 가능한 불공정거래행위를 가격·입찰 담합 등 ‘경성 카르텔’에 국한한 것과 대조적이다. 기업 합병과 같은 일반적 경영행위마저도 검찰의 칼 위에 놓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도입 취지는 사라지고 부작용만 초래할 경제민주화 법안은 이뿐이 아니다. 해묵은 논란인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5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사후 효과분석 없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할 경우 부작용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실제로 포장 두부 시장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포함되면서 대기업이 국산 콩 두부 대신 수입 콩 두부 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이로 인해 중소기업의 이익은 되레 감소했다.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히는 대형마트 및 기업형슈퍼마켓(SSM) 월 2회 의무휴업제도 19대 대선을 앞둔 2012년 개정됐지만 소상공인 보호 및 경쟁력 제고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설도원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상근부회장은 “2012년 의무휴업·영업시간 제한 도입 이후 2015년까지 대형마트사의 343개 기존점 매출이 21.1%, 전문소매 중소상인 매출은 12.9% 줄어든 반면 온라인·모바일쇼핑 등 무점포 소매 매출은 161.3%, 편의점은 51.7%로 증가했다”며 “대형마트 매출 감소 부분이 중소상인에게 옮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한발 더 나아가 대형마트의 의무휴무일을 현재 2회에서 4회로 확대하고 복합쇼핑몰과 백화점, 면세점도 의무휴업에 포함하는 등의 규제 법안까지 발의한 상황이다. 영세 생계형 업종의 경우 대기업 진출을 금지하는 법안도 시동을 걸었다.

이미 일부 영역에 도입돼 있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도도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다. 집단소송제는 2005년 증권 분야에 도입됐지만 지금껏 판결이 난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이미 하도급 분야 기술탈취 행위에 적용되고 있는 손해배상제도도 실적이 전무하다.

공권력을 통해 기업 때리기 식 경제민주화 법안을 만드는 것보다 중소기업 등이 스스로 피해 구제를 할 수 있도록 민사소송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피해기업이 가해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입증해야 한다. 미국은 피해기업이 재판부에 증거 목록을 제출하면 법원이 가해기업에 증거를 제출하도록 하는 ‘디스커버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약자가 강자의 불공정 행위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약자가 스스로 구제할 수 있는 민사법 체계를 만드는 게 부작용이 큰 경제민주화 법안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상훈기자 박윤선기자 ksh25th@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