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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칼럼] 장수와 저출산…‘잔인한 40년'이 다가온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80조 예산에도 출산율 사상 최저

女 기대수명 90세…재앙될 수도

'출산장려 예산 제대로 썼나' 의문

차기 대통령, 정책 비전 확인해야





잔인한 40년이 다가온다. 봄 같지 않은 봄이 눈앞에 왔다. 음력으로 춘삼월(春三月), 날은 춥지만 견딜 만하다. 어차피 겨울의 끝자락이니까. 정작 추운 것은 마음이다. 미래를 예고하는 지표가 잿빛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뉴스에 정신이 어지럽다. 사상 최저로 떨어진 지난해 출산율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이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는 전망 역시 마냥 달갑지만 않다.

눈길을 잡는 통계가 그제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향후 13년 뒤부터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이 90.82세에 이르게 된단다. 축복할 일이다. 100세를 넘게 사는 사람이 많아도 전체의 평균 수명이 90세를 넘기란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긴 게 불과 얼마 전인데….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이 세계 최초로 90세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 자체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진시황을 비롯해 수많은 권력자들이 장수를 꿈꾸지 않았던가.

문제는 장수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이 1922년 발표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철마다 쿠마의 무녀 시빌(Cumaean Sibyl)은 더욱 간절히 죽음을 갈구한다. 젊고 아름다웠던 무녀는 소원을 묻는 아폴로신에게 영생을 원했다. 무수한 세월 동안 육신이 쪼그라들어 새장 속에 들어간 무녀에게 영생은 형벌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의 봄이 고통스럽고 잔인하다.

‘잔인한 4월’은 시빌 만의 몫이 아니다. 엊그제 나온 통계를 하나 더 보자. 내리막길을 걷다 지난 2015년 반짝 반등했던 출산율이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신생아는 40만6,300여명으로 전년보다 3만2,100여명(7.3%)이나 줄어들었다. 한 달 동안 아기들이 단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셈이다. 섬뜩한 얘기다. 지난 10년간 출산율 제고를 위해 투입한 예산 80조원이 도대체 어디에 쓰였는지 모르겠다.



출산율이 이대로라면 11년 뒤인 오는 2029년부터 한국의 인구는 항구적인 감소세가 불가피하다. 항구적 인구 감소는 항구적 경제력 약화와 맞닿기 마련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으면 출산 기피 풍토가 심해지고 결국 인구 감소 역시 가속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두 세대, 약 40여년을 지나도 개선되지 않는다면 절벽과 만날 수밖에 없다. 절벽의 끝은 낭떠러지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저출산이 지속될 경우 2750년께 민족이 소멸할 수 있다는 불길한 전망도 내놓았다. 단군 이래 최대 위기다.

대책은 없을까. 동서고금에서 무수한 대안이 지나갔다. 고대 중동 지역에서 독신자는 죄악으로 여겼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출산 포기는 살인에 버금가는 중죄’라며 기원전 18년 ‘혼인법’을 제정해 결혼적령기를 벗어난 총각들에게 세금을 매겼다. 스페인 제국의 압제에 맞서 80년 동안 독립전쟁을 벌였던 네덜란드는 미혼 가임여성에게 미혼세를 거뒀다. 징벌적 출산대책의 공통점은 성공하지 못했거나 실패했다는 점. 역사는 징벌보다 장려가 보다 효율적이라고 말해준다. 수백개 작은 공국과 자유시로 분열됐던 독일 지역의 한 모퉁이에 불과했던 프로이센도 인구 증가에 힘입어 발흥하고 독일 통일의 기반까지 닦았다. 프랑스는 1960년대 저출산 위기를 겪은 뒤 적극적인 장려책을 펼쳐 출산 모범국가로 손꼽힌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 가지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관련 예산이 제대로 쓰였는지 따져봐야 한다. 둘째로 강요할 바는 아니지만 존엄사를 생각해볼 때가 됐다.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고교동기 7명이 모인 자리에서 6명이 찬동해 놀란 적이 있다. 세 번째는 국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인구 문제를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인구가 줄고 늙어간다면 안보도 경제도 설 땅이 없다. 미래의 지도자가 인구 감소에 대해 비전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봄이 눈앞에 왔다. 실개천에 물 흐르고 동산에 꽃 필 날이 머지않았건만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다. 민족 전체가 서서히 달궈지는 저농도 알코올 속에 죽어가는 새우의 운명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시대가 원한다. 젊은이들이 일거리를 찾고 마음 놓고 아이를 낳는 풍토를 만들어나갈 지도자를. 간구하노니 우리에게 혜안이 있기를.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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