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관치단물에 취한 벤처]숫자 늘리기에만 급급...벤처, 혁신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아

3만개 시대 우울한 자화상

"일자리 도움" 이유로 판교테크노밸리 중견사에 싸게 분양

스타트업·초기 벤처는 높은 임대료에 입주 엄두도 못내

벤처기업 10곳 중 9곳, 기보 보증이나·중진공 대출로 전전

기술 인정받아 벤처캐피털서 투자유치한 곳은 3.5% 그쳐

무분별한 인증 남발에 업력 20년 넘는 기업도 6.2% 달해

경기도 성남시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예비창업자들이 기술개발과 사업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경기창조혁신경제센터는 정보기술(IT)과 통신·게임 등 특화산업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KT와 경기도, 국내 창업센터 등이 손잡고 만들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권욱기자




“지금의 벤처기업은 일반 중소기업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요. 굳이 벤처정책을 써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벤처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던 조영삼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지적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벤처는 벤처가 아니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평가는 비슷하다. 지난 1990년대 후반 ‘벤처’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후 20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식경제(김대중)’ ‘혁신경제(노무현)’ ‘녹색경제(이명박)’ ‘창조경제(박근혜)’의 구호를 외쳤지만 벤처 토양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혁신’이라는 내용은 사라지고 ‘기업 수’라는 껍데기만 남은 것, 이것이 한국벤처가 직면한 현실이다.



◇스타트업 찾아보기 힘든 ‘벤처성지’ 판교=최첨단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판교테크노밸리. ‘벤처의 성지’로 불리는 이곳에는 정보기술(IT)과 바이오 등 첨단기업 1,100여 곳이 몰려 있다. NHN·NC소프트·안랩 등등…. 하지만 정작 ‘혁신의 우물’이라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창조경제혁신센터나 창업보육센터를 제외하고는 보이질 않는다. 우선 비싼 임대료 때문이다. 집값이 서울 대치동과 비슷한 수준인 이곳의 3.3㎡당 월 임대료는 30만~50만원선. 스타트업이나 초기 벤처에는 ‘넘사벽’일 수밖에 없다. 반면 판교를 차지하고 있는 중견기업 등 기존 업체들은 정부로부터 주변 분양가의 절반도 안되는 3.3㎡당 800만~1,000만원을 받았다. 혁신단지 조성이라는 명분도 있지만 이들이 일자리 창출에 더 도움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판교는 분양가 프리미엄을 잔뜩 얻은 기업들의 천국”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초심과 어긋난 정책 탓도 크다. 1997년 8월 벤처기업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만 해도 정책의 초점은 ‘혁신을 통한 산업경쟁력 강화’였고 일자리는 혁신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뉴노멀이라는 파고에 휩싸이면서 ‘일자리’가 최우선 정책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아예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라고 표현했다. 일자리가 많아지려면 기존 기업들이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해내야 한다. 스타트업과 혁신은 이제 뒤로 밀려났다. 판교에서 혁신이 사라진 이유다. 조 연구위원은 “벤처정책을 얘기하면서 쉽게 일자리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는 굉장히 협소한 이해”라며 “새로운 성장모델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벤처 10곳 중 9곳 정부 지원 받아= 표면적으로 볼 때 벤처 정책의 성적표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벤처기업 수는 3만3,000개를 돌파했고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선 성공 벤처들도 474개나 된다.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된 창조경제지원센터에는 스타트업과 예비창업자들이 꾸준히 몰려들어 서울·경기의 경우 입주 경쟁률이 수십대1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기면 벤처의 민망한 민낯이 드러난다. 친환경 소재업체 C사의 경우, 2년 전 벤처 인증을 따냈다. 기술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화학물질이나 분진이 나오지 않는 건축자재를 개발하겠다며 기술보증기금에 신청한 약 1억원 규모의 보증이 성사된 덕이다. 하지만 이 업체는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판로가 마땅치 않는데다 이미 같은 기술로 시장을 선점한 업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보로부터 보증을 받거나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기술평가 대출을 받은 곳은 지난해 말 기준 3만개 가까이 된다. 벤처기업 10곳 중 9곳이 이런 식으로 벤처가 됐다는 의미다. 반면 벤처캐피털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아 투자를 유치한 곳은 전체의 3.5%에 불과하다. 국내 벤처에 대해 ‘관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무분별한 인증 남발 ‘좀비’ 부추겨=벤처 관련 인증의 남발도 혼란을 부추겼다. 현재 벤처 관련 인증은 ‘벤처’와 ‘이노비즈(기술혁신형 중소기업)’ ’‘메인비즈(경영혁신기업)’ 등 세 가지.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런데도 전체 벤처기업의 3분의1인 1만여개는 두 개 이상의 인증을 갖고 있다. 이유는 한가지 정부 지원을 더 받기 위해서다. 박 부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차별성을 강조하려고 하다 보니 내용은 같은데 포장만 달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기업들의 입장에서도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공적 자원의 배분이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벤처인증 보유 기업 중 지난해 말 현재 업력 21년 이상 된 기업은 6.2%에 달한다. 약 2,000여개 기업이 성장을 멈춘 채 벤처 지위를 이용한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탐사기획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