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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 國運 걸린 3개월...관료가 중심 잡아라

탄핵 인용땐 5월 대선·새정부 출범 등 분기점

지금은 빚더미·잿더미 함께 온 복합위기 상황

불확실성 커져...공직자들 위기관리 솔선해야

0116A01 떨어지는 실질 GDP 성장률




세계적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안정적, 상위 세 번째)로 유지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김정남 암살 이후 북한 리스크가 고조되는 상황에 나온 결과여서 의미는 컸다.

주목할 점은 근거다. 무디스는 “한국 정부의 힘은 경제·금융 시스템을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는 ‘키(key)’”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힘(institutional strength)을 ‘아주 좋음+(very high+)’로 책정하면서 “한결같은 정책을 구성하고 추진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다”고 했다. 대통령 탄핵정국에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여러 위험요소(가계부채, 빠른 고령화 등)가 있음에도 ‘관료기능’이 아직 굳건하다는 점을 높게 본 것이다.

10년에 한번꼴로 큰 위기를 겪어온 대한민국이 과거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위기에 봉착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은 위험이 현재화됐기 때문에 솔루션을 찾고 대응하면 됐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임채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과거 위기상황 때보다는 경제적으로 더 잘살지 모르지만 사회·정치적 분열 양상이 극단으로 치달을 정도로 병의 심각성이 훨씬 크다”고 진단했다. 윤용로 전 금융위 부위원장은 “한국전쟁 후에는 잿더미 속에서, 외환위기 때는 빚더미 속에서 나라를 살렸다면 지금 상황은 빚더미와 잿더미가 함께 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만큼 해법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앞으로 3개월은 대한민국이 고꾸라지느냐, 다시 치고 올라가느냐의 분기점이다. 3월의 탄핵 결정, 탄핵 인용 때는 5월 대선, 그리고 대선 이후 한달 동안 새 정부의 국정방향 설정 과정 등에서 갈등을 봉합하느냐 아니면 키우느냐가 관건이다. 이용섭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앞으로 90여일이 한국 경제에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라며 “위기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도 “어떤 탄핵판결이 나오든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자칫하다가는 부패 의혹으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극심한 분열로 정치는 물론 경제까지 갈가리 찢긴 브라질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문제는 위기관리의 주체다. 과거처럼 선명하지 않다. 한국전쟁부터 1970년대의 1·2차 오일쇼크, 1980년대 정치위기, 1990년대 외환위기,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관료들은 큰 몫을 했다. 윤 전 부위원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후도 지금과 같은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결국 중심을 잡고 간 게 공무원”이라면서 “과거의 모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전부는 아니더라도 관료제의 탄탄한 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신 전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초기에 월가에서 좌파 정부로 보면서 신용등급 전망을 내린 적이 있다”며 “그때 정말 두려움이 컸는데 관료들을 중심으로 미국을 찾아가 오해를 불식시켰고 해법을 찾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결이 좀 다르다.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명예’로 살던 관료들이 온갖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과거와 같은 ‘사명감’은 바닥에 떨어졌다. 직업에 대한 참담한 마음도 크다. 사석에서 만난 한 고위관료는 “자식들이 아빠의 직업을 밝히기 꺼렸다는 말을 들은 뒤의 참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의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에게 휘둘리고 심지어 일부 늘공(직업공무원)들이 검찰 문턱을 넘나드는 현실 앞에서는 형언할 수 없이 슬펐다”고 토로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위기가 와도 관료들이 과거처럼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이유다. 이런 분위기 탓에 임 전 장관은 “사기가 너무 떨어진 공직사회에 용기를 주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 지금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두 손을 놓고 있다가는 ‘폭망’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공직을 떠난 선배 관료의 조언도 비슷했다. 어찌 됐든 지금은 “공직자들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는 “탄핵판결 후 관료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진리”라면서 “경제팀이 부총리 중심으로 ‘경제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부위원장도 “누군가는 국익을 챙기고 가야 하는데 결국 관료들밖에 없다”면서 “경제주체들이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관료들이 다리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심을 잡되 위기의 성격이 다른 만큼 접근방식도 상이해야 다고 전했다. 신 전 위원장은 “외환위기 때는 그래도 국민적 동의가 있었다. 대대적인 금 모으기를 실시하거나 일사천리로 구조조정이 가능했던 이유”라며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국민을 안심시키되 보여주기가 아닌 피부로 와 닿는 실질적인 해법들을 내놓아야 그나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아직도 한국 관료들의 맨파워를 높이 평가한다. 안에서의 시각과 달리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파견된 우리 관료들의 능력은 실제로 출중하다. 미증유의 위기상황에서 그들의 위기관리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관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줘야 하는 까닭이다. /이철균 경제부장 fusionc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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