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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위문공연, 누구를 위한 '위문공연'인가





뚝뚝 떨어지는 땀과 들썩이는 엉덩이. 화려한 조명 아래 아슬아슬 펄럭이는 짧은 치마. 앳된 얼굴의 여자아이들이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음악에 맞춰 격렬한 몸짓으로 섹시 댄스를 추고 있다.

언뜻 여성 아이돌 그룹의 공연 무대로 보이지만 평범한 여고생들의 공연이다. 게다가 이 공연의 무대는 신참내기 군인들이 모인 논산훈련소다. 여중·고생들이 선정적인 춤을 추는 사이 짧은 머리의 훈련병들이 ‘각 잡힌’ 군인 박수를 연발하는 무대 뒤에는 특정 종교를 알리는 팻말이 걸려있다. 종교 행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광경이지만 최근 매주 논산훈련소에서 열리는 위문공연이다.

최근 한 여고에서 ‘성 상품화 문화’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며 주목받게 된 군대 ‘위문공연’. 이 행사는 특별한 날 국군 장병들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여학생들의 섹시 공연이 난무하면서 과거 악습의 잔재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무대에 올라가는 쪽도, 무대를 보는 쪽도 ‘불편하다’는 위문공연 문화. 과연 누구를 위한 공연인지,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도사린 ‘위험’은 무엇인지 되짚어봤다.

유튜브 영상으로 올라온 논산훈련소 위문공연의 모습. 한 여성 댄스팀이 논산훈련소에서 음악에 맞춰 선정적인 춤을 추고 있다. /사진=유튜브


‘군 위문공연, 누굴 위한 위문인가’란 주제로 제작한 기획 영상 /영상=서울경제DB
노출 수위에도 제재 없고, 종교 행사라는 이유로 거의 터치 안 해

종교행사는 장병의 심신안정과 영적 충전을 위해 제공하는 각 종교별 행사이다. 논산 훈련소의 종교행사 후 외부 공연은 천주교는 월 1회, 불교는 매주, 원불교는 월 2회가량 열리고 있다. 논산훈련소의 위문 공연은 클래식, 국악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여중고생의 섹시 공연도 한달에 한번 이상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위문공연 내 섹시 공연은 ‘군인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종교 가입을 권유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라는 명목 아래 열려왔다.

하지만 무대 공연자의 연령 등에 대한 최소한의 규정이 없을뿐더러 종교 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란 이유로 별다른 제재도 없다. 실제 군부대에 문의해본 결과 종교행사는 군종 장교에 의해 자율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연을 준비했던 고등학생 이모(19)양은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는 군부대 방문 자체를 신기한 경험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무대를 꾸미고 춤을 준비하고 있지만 무대에 올라가는 걸 막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여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행사를 준비하지만 불쾌하다”는 반응이 상당수다. 자매결연을 맺는 학교의 경우 한 학생은 “군부대 위문공연에 왜 참여해야 하는지 의아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자칫 불상사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비판은 군인들 사이에도 나오는 실정이다. 다음달 군 입대를 앞둔 장모씨(19)는 “군대라는 억압된 공간에서 고등학교 여학생들의 섹시댄스 공연은 여러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도 안전장치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영적인 힐링을 추구하는 종교 행사에서 여·중고생을 동원해 선정적 행사를 이용하는 건 옳지 않다”며 종교단체의 윤리성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최모(27)씨는 “(종교 단체가) 선정적인 방법으로 신자를 모으고 군 사기진작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서울경제가 ‘군 위문공연, 누굴 위한 위문인가’란 주제로 군필자, 미필자 등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남성 9명을 인터뷰했다. /영상=서울경제DB




종교 행사와 위문공연? 알면 알수록 ‘불편한 진실’

위문공연은 대체로 막 자대를 배치받기 전인 논산훈련소나 자대 배치를 받은 후 각 부대에서 이뤄진다. 시기, 규모, 주최 기관 등은 각 부대별 부대장 소관이기 때문에 각 부대의 위문공연 현황을 모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자대 배치 후 위문공연을 관람했던 이모(25)씨는 “부대장 소관으로 아는 지인이나 인근 학교, 단체와 협약해서 위문 공연을 여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러니한 건 종교 행사에서 위문 공연이 주로 열린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종교 행사가 위문 공연의 연결통로인 셈이다. 실제로 국방부에 ‘위문공연’에 대해 문의를 하면 종교 관련 부서인 ‘군종과’로 연결된다. 지난해 제대한 박모(25)씨는 “일반적으로 아이돌 행사를 제외하고 위문 공연이라고 하면 대부분 종교 행사랑 연관된다. 신도를 끌어모으기 위한 유인책으로 학교 댄스팀, 종교 관련 단체에서 학생들을 모집해 데려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위문공연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종교 단체의 설득에 못 이겨 억지로 참여하는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 나이가 10대 후반~20대 초반인 젊은 친구들이 군부대 공연을 할 때 종교 얘기를 하면서 행사를 진행한다”고 답했다.

종교 단체들의 신자 확보 노력도 중요하지만 윤리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년 전 군 복무를 마친 최모(26)씨는 “교회에서 어린 여학생들의 위문공연을 유도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게 군대라는 조직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합리화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앞에서 사탕 나눠주는 것과 같은 격”이라고 지적했다.

위문공연은 대부분 각 종교 단체에서 군인들에게 종교활동을 권유하기 위해 마련한 종교 행사 후 진행된다. 특히 논산훈련소의 경우 막 자대 배치를 앞둔 군인들이 모여 있어 각 종교별 행사에 모이는 인원 수도 최소 100명이 넘는 대규모다. 논산훈련소에서 막 자대로 배치받은 이모(21)씨의 경우 “종교행사는 20분, 그 이후 10분 정도 공연이 열린다. 대부분 섹시 댄스를 추고, 고등학생이 오는 경우도 많이 봤다. 막 군대에 들어가서 보고 있는 내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유튜브에 올라온 걸그룹 댄스 영상에 달린 댓글들 /사진=유튜브캡쳐


서울경제가 ‘군 위문공연, 누구를 위한 위문인가’란 주제로 구글 무기명 설문지를 돌린 결과, 위 같은 이유로 ‘위문공연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정수현·최재서기자


어찌 보면 악습의 일종…다른 형태의 사기 진작 방법도 많아

무대를 준비하는 측도, 보는 측도 불편한 문화가 된 ‘위문공연’. 과연 실효성은 있을까. 실제 서울경제가 설문조사를 돌려본 결과, 일부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즐거움을 찾게 되니 아무래도 즐겁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스트레스 해소 등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군 장병들도 적지 않았다. 2년 전 전역한 장모(25)씨는 “공연보다 차라리 그 예산으로 간식을 주고,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게 낫다. 거의 휴식시간에 오기도 하고, 주말에 군인들 쉬고 있을 때 인원수 채우기 위해 강제 차출되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최근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준비 중인 이모(25)씨는 “솔직히 귀찮다. 별 감흥도 사실 없다. 그냥 관례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쉬는데 차출되면 전투복 입고 나가야 한다”며 ‘위문공연’이 아닌 부담 꺼리라고 말했다.

위문공연 대신 강연, 포상 휴가 등을 늘리는 편이 훨씬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많다. 전방에서 군복무를 했다는 이모(28)씨는 “가장 고생하는 전방에 오히려 위문공연 문화가 별로 없다”며 “차라리 고생하는 전방 측에 핫팩이라도 더 주거나 부대 위생, 복지에 좀 더 신경 쓰는 게 사기 진작에 훨씬 도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취지는 좋지만 진짜 위로가 되는 활동을 해야지 악습의 일종이라 생각한다”며 “종교 홍보일까, 누구 좋으라고 했을까, 왜 왔을까 등등의 의문이 자꾸 생긴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정수현기자·최재서인턴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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