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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엄이도종(掩耳盜鐘)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귀를 막고 종을 훔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12월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92일 만에 탄핵안이 인용돼 청와대를 예정보다 일찍 나서게 됐다. 2013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때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파면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조차도 조기 대선이 실시되리라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밝혀지면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차고 넘친다’는 말처럼 눈덩이로 불어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적극적이고 적절하게 대응했더라면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지만 아직도 당일에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또 박 전 대통령은 참모를 동원해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사익 추구를 꾀하고 정유라의 부당 입학과 탈법적인 육성을 가능하게 했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었을 뿐 아니라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의 기를 꺾어 허탈하게 만들었다.

민주주의 파괴와 국기 문란은 과연 막을 수 없었을까. ‘여씨춘추’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막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사람은 원래 스스로를 잘 모른다. 군주는 자신을 모르는 정도가 제일 심하다. 이 때문에 고대의 제왕들은 제도와 사람의 힘을 빌려 자신의 허물과 과실을 알아 치명적인 일이 생기지 않게 조심하려고 했다. 예컨대 요임금은 훗날의 신문고처럼 자신의 잘못을 알릴 수 있는 북을 설치했고 순임금은 자신을 비판하는 글을 쓸 수 있는 나무를 세웠으며 탕임금은 자신의 잘못을 체크해 아뢸 수 있는 대쪽같은 선비를 뒀고 무임금은 자신의 잘못을 경계하고 행동을 신중하게 하는 조그만 북을 세웠다. 하지만 나라를 망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은 군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잘못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아뢰는 사람을 탄압하고 처벌하기까지 했다. ‘여씨춘추’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어리석은 군주를 위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춘추시대 진(晉)나라가 여러 세력에 의해 분열하게 되는데 범씨(范氏) 가문도 멸망의 길을 걸어갔다. 한 나라의 국정을 좌우했던 만큼 범씨 가문에는 사람들이 탐낼 만한 물건이 많았다. 당시 한 사람은 망하는 범씨 가문의 재물 중에서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종을 찾아내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이 사람은 범씨 가문의 저택에 들어가 평소 그토록 원하던 종을 찾았다. 그는 종을 등에 진 채로 옮기려 했다. 하지만 종의 크기와 무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웠다. 잠시 고민 끝에 종을 깨 자신의 집으로 옮긴 뒤 다시 붙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망치를 들어 종을 향해 내리쳤다. 그러자 종소리가 사방에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종소리에 깜짝 놀란 그는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이 종소리를 듣고 와 이 종을 빼앗을까 걱정이 됐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는 재빨리 자신의 손으로 자기의 귀를 가렸다. 자신이 종소리를 듣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전하고 ‘여씨춘추’의 편찬자는 자신의 귀를 가린 사람을 자신의 단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군주에 견줬다. 군주도 사람인지라 다른 사람이 자신의 허물을 들을까 봐 걱정하고 듣는 것을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군주가 돼 누군가 자신의 허물을 말할 때 그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큰 사달이 생기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은 ‘여씨춘추’에서 자신의 잘못을 듣지 않으려다 망한 인물로 들고 있는 대상에다 스스로 덧보태고 있다. 집권 초기부터 언론이나 일반 시민과의 접촉을 늘려 자신의 장점을 말하면 좋아하기보다 단점을 들추더라도 피하지 않고 들었더라면 최순실 같은 비선 실세가 생겨날 토양이 없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줄곧 엄이도종(掩耳盜鐘)의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서 영광스럽게 물러나지 못하게 됐다. 이제 많은 시민은 박 전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듣지 않으니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엄이도종의 결말은 참으로 엄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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