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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씨의 #그래도 연애]32년째 기승전 '여자'…나, 결혼할 수 있을까?





“서른 넘기면서부터 여자 못 만나겠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애인지 갈수록 모르겠다니까?”

“착하면 되지. 결혼할 여잔 일단 착하고 성품이 고와야 해”

“야~ 예쁜 게 착한거야~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되더라~”

오늘도 여자 얘기다.

신기하다. 벌써 20년을 넘게 모여서 떠들고 있지만 항상 주제는 같다. 남녀관계는 평생을 논해도 끝이 없다더니…

또다시 대화는 기승 전 ‘여자’로 흘러갔다.

“결혼해보니 어때? 추천하고 싶냐?”

뜬금없는 기습 질문에 26년 지기 친구 기동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응. 너도 얼른 해라.”

“왜?”

“이 좋은걸 나만 할 순 없으니까(웃음)”



이 좋은걸 나만 할 순 없다.. 그 중의적인 표현 뒤에 숨은 뜻이 과연 뭘까 생각하던 찰나,

“일단 우린 결혼할 사이였으니까, 어차피 할 거 빨리 해버리니까 안정감도 들고 편해 같이 있으니까”

그렇다. 기동이는 부인 승희와 9년을 교제하다 결혼에 성공했다.

헤어지기엔 너무 오래 만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엔 서로의 삶에 너무 깊이 파고든 상태였다.

무엇보다 승희는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는 미인이었고, 동갑내기인 기동이를 누나처럼 보듬어주는 따뜻한 성격을 가졌다.

기동이 본인이, 또 주변 모두가 결혼을 ‘잘 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면 다른 친구들도 행복할까?

잠시 생각을 해봤지만, 결론을 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승이, 구경이, 용선이, 태중이, 해연이 모두 “넌 더 놀다가 가 임마”라고 만류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귀여운 아들·딸들을 낳아놓고 웃음꽃이 핀다.

매일 같이 모두가 모인 단체카톡 창에 ‘삼촌들 안녕’, ‘오빠들 굿모닝’, ‘삼촌 과음하지 마요’ 등의 메시지와 함께 본인 딸 사진을 자랑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안 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혹자는 내게 ‘연애 고자’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고, 혹자는 ‘너무 잘 알아서’ 여자를 못 만난다고 했다. 더러는 ‘화려한 싱글을 즐기느라’ 만나기 싫은 게 아니냐고도 한다.

수없이 고민하고 분석해봤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이거다. 지금 이 외로움은 저 세가지 함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결과라고.

마음에 드는 사람의 호감을 얻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고, 여자를 너무 잘 아는 것도 탈이다. 가끔은 혼자 지내는 내 자신이 화려해 보인다는 착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항상 ‘여사친(여자사람친구)’ 은경이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은경이는 사회에서 일을 하다 만난 사이지만, 상담을 잘 들어주면서도 귀에 팍팍 꽂히는 독설을 잘 퍼붓는다.

그녀의 남녀심리 진단이나 상황 판단 능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 할 정도로 기가 막히다. 결혼한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처녀 시절의 ‘썸 타는 감(?)’이 아직 살아있는 듯 하다.



그런 은경이는 내게 입버릇처럼 “넌 감정 조절을 못한다”고 말하곤 한다. 상대는 아직 미지근한데 혼자 활화산처럼 타올라 썸 한번 제대로 못 타보고 끝내길 반복한다는 것이다.

“아니 하고 싶은 말,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 딱 절 반만 참아보라고!”

“뭐 하는지 궁금하고, 자꾸 새로운 모습 보여주고 싶은데 어떻게 참어?”

“그런 건 나중에 썸이라도 타고 하란 말이야.. 걘 지금 너 안중에도 없는데 너무 조급해 하잖아”



여자는 남자보다 이성 관계에 신중하고, 마음을 여는 속도도 느리다고 배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남자 만나도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친구들과 수 백 시간의 토론을 거치면서 그를 평가하고 판단한다고 했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감정의 끓는점이 낮은 남자는 그런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 밀어붙이다 제풀에 지치기 마련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소위 ‘연애 고자’일수록 그런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들으면 들을수록 은경이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 지는 이유다.

그렇다고 평생 ‘모태솔로‘로 살아온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성격으로도 지금까지 수 많은(?) 연애를 해봤다.

사나운 여자, 순한 여자, 고집불통 여자, 꾀 많은 여자, 현명한 여자... 나름 산전수전 겪으며 감각을 익혔다. 모든 여자에게 일반화시켜 적용할 순 없지만 내 나름의 ‘인사이트’가 생겼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평소 시를 즐겨 읽으면서 표현력이 좋고, 감성적이며 SNS에 자기 일상을 추상적으로 늘어놓는 여자는 남녀관계에서도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또 누가 봐도 예쁜 외모에 백치미까지 풍기며 부성애를 자극하는 여자가 애매한(?) 태도로 웃으며 친절을 베푼다면, 그것은 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수년간의 경험으로 단련된 ‘남자 요리법’이다.

이런 것들 말고도 머리 속에 박힌 수십 수백 가지의 크고 작은 편견들은 스스로 ‘여자를 너무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지게끔 한다.

가끔은 직접 경험을 하지 않고도 깨달음을 얻는다.

여사친의 친구 입장에서 그들이 남자친구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서, 내 애인이 나에게 하는 짓(?)을 추측해볼 때가 있다.

“고자야 철수랑 똥팔이 불러서 술먹자”

“니 오빠도 남자들이랑 술 먹는 거 아니?”

“아니 오빠한텐 그냥 친구 만난다 했지”

“...”

이런 유형의 대화가 오갈 때 마다 다짐한다. 연애하면 출장도 가지 말고, 그녀들의 친구도 믿지 말아야지...

연애를 못하는 데는 솔로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놓기 싫은 이유도 분명히 있다.

주말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아도 되며, 매일 밤 플스방(플레이스테이션방)에 자리잡고 소리를 지르며 위닝(축구 게임)을 즐겨도 된다.

어디서 누구와 몇 시까지 술을 먹든 보고할 필요도 없다. 안 그래도 피곤한 내 인생, 부대끼며 감정싸움에 휘말릴 이유도 없다.

동호회, 동창회, 친목회 등등 30대 직장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는 다 누릴 수 있다.

가끔은 그래서 외롭기도 하지만, 혼자인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혼자인 게 편해진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오늘도 소개팅은 거절했다. 연애 고자라, 너무 잘 알아서, 화려한 싱글을 즐기느라...



그럼에도 후배의 한 마디에 또 귀가 쫑긋 한다.

“선배, 이 친구 진짜 참해요. 얼굴도 예쁘고 지성미까지 갖췄어요”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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