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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와 언론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미시경제학




지난 9월 중순, 필자는 ‘정보경제학’ 수업 중에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도덕적 해이를 설명하면서 우리나라 언론들을 비판한 적이 있다. 흔히들 우리 사회에 대해 교육계, 종교계, 법조계, 정치권 등 어느 하나 안 썩은 구석이 없다고들 하는데 어느 사회건 언론만이라도 제대로 살아 있다면 그 사회는 자정능력을 발휘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리고 며칠 뒤, 한 종편방송의 보도를 통해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논단의 민낯이 드러나고, 그 후 같은 수업에서 한 학생이 물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우리 언론들이 잘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그래서 오히려 더 걱정이다.”였다. 이 일로 언론권력은 더 막강해질 것이고 그로 인해 언론계의 자체적인 개혁은 더욱 요원해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지독히도 무능하고 오만했던 박근혜 정권은 결국 3월 10일자로 탄핵됐다. 그것도 헌재위원 8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되짚어 보았을 때 앞서의 우려가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사회가 어지러울 때 이성적 기초 위에 그 사회의 중심을 잡아두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일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보도과정에서 우리 언론들은 과연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까. 촛불을 일으킨 언론이 촛불 위에 올라탄 형국. 그에 편승한 정치권의 과유불급(過猶不及), 그리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거리로 나온 태극기의 물결. 대의정치는 실종되고 광장마저 세종로 사거리를 기점으로 촛불과 태극기로 극명하게 갈린 것이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정보경제학’의 핵심주제 중 하나인 ‘도덕적 해이’는 기본적으로 어떤 행위 (또는 결정)를 위임한 ‘본인’과 이를 위임받은 ‘대리인’간의 이해상충의 문제를 의미한다. 경제학에서는 주로 ‘고용인과 피고용인 (예컨대 주주와 CEO)’의 관계처럼 경제적 위임관계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으나 사실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가장 고질적으로 잠복해있는 곳이 ‘국민과 정치인’간의 정치적 위임관계다. 국민은 정치인에게 국민의 복리와 후생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할 것을 위임했으나 정작 대리인인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앞서 가장 고질적이라 한 이유는, 대부분의 위임관계에서는 불완전하게나마 대리인의 행위를 판별할 수 있는 성과지표(CEO의 경우 회사 이익)가 있어 성과급이라는 유인수단을 통해 대리인의 행위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으나, 유독 ‘국민과 정치인’의 관계에서는 정치인의 행위를 판별할 성과지표가 흔치 않으며 설사 있다 해도 그 효과가 단기에 금세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민은 정치인들의 왜곡과 포퓰리즘적 사탕발림에 선동되기 쉬우며 ‘선거’라는 유일한 유인수단이 제구실을 못하기 십상이다.

도덕적 해이는 대리인의 비상식적인 도덕성 결여 때문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합리적 이기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에 엄밀히 말해 그 발생책임은 대리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리인의 행위를 통제할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본인에게 있다. 따라서 정치의 후진성은 그 원인이 정치인의 후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후진성에 있으며 그 배후에는 국민의 후진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제도적 후진성을 메우고 국민들이 합리적인 정치판단을 하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런데 이게 좀 미묘하다. ‘국민과 언론’의 관계 역시 또 하나의 위임관계이므로 언론인의 도덕적 해이 또한 충분히 예측되는 일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누군가 이를 통제해야 하는데 이것이 자칫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대명제를 침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결국은 언론인들의 도덕심과 사회적 책임감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이 점이 바로 언론계 스스로의 개혁노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정치 선진국들은 언론 선진국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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