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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이영순 이사장 "질식재해 사망률, 일반재해의 50배...근로자에 제대로 알려야"

[서경이 만난 사람] 이영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대담=김성수 사회부장 sskim@sedaily.com

국회 계류 '유해·위험 고지 확대법' 통과 시급

4차 산업혁명 안전문제 더 커져...선제대응 필요

사고사망률 2019년까지 선진국 수준 낮출 것





“지금도 수많은 근로자들이 질식재해 등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습니다. 사업주로 하여금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유해·위험요인을 제대로 알리도록 하는 법안을 이른 시일 안에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합니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안전보건공단 서울북부지사에서 만난 이영순(71·사진) 이사장은 국회에 계류 중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하루빨리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법 개정 못지않게 사업주의 준법 자세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해당 법안은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질식·붕괴위험을 안고 작업할 때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반드시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은 유해 화학물질을 취급할 때만 고지 의무가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질식재해는 일반재해보다 사망 가능성이 50배가량 높다. 일반 사고재해자는 1.2%가량이 사망하지만 질식재해자는 절반을 웃도는 50.6%가 목숨을 잃는다. 붕괴재해도 다른 유형 사고의 3배나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형사고로 연결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발생한 ‘메틸알코올 중독 사건’을 언급하며 유해·위험 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메탄올 중독 사건이 발생한 1차 원인은 근로자가 자신이 취급하는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라며 “사업주나 관리자가 제대로 고지했다면 당시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인천·부천 지역 삼성전자 3차 협력업체에서 근로자 7명이 메탄올에 중독돼 실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휴대폰 부품을 세척하거나 깎는 데 사용하는 메탄올의 냄새나 색깔은 술과 똑같다. 하지만 호흡기 등을 통해 소량이라도 몸속으로 들어가면 시신경 손상을 일으킨다. 과다 흡입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메탄올 대신 인체에 상대적으로 무해한 에탄올을 사용할 수 있지만 사업장 대부분은 값싼 메탄올을 사용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메탄올을 사용하는 사업장은 환기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이 때문에 50인 미만 영세사업장도 대부분 환기장치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근로자들이 이러한 물질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데다 협력업체 사업주가 고비용을 이유로 환기장치의 가동을 꺼리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겨울철에 메탄올 작업 사업장을 방문하면 근로자들이 춥다는 이유로 문을 닫아놓고 작업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한다”며 “상당수 사업장은 환기장치의 전기 사용량이 많다며 아예 스위치를 끄고 작업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최근 안전보건 분야에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선제적 대응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이 안전보건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공단은 지난해 직원 5~6명으로 미래전략추진단을 설립해 4차 산업 혁명이 가져올 안전보건 리스크 요인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전략추진단은 이달 프랑스에서 열리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안전보건 세미나에 참석한 뒤 조만간 중간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로봇이나 인공지능(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새로운 유형의 산업재해 역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앞으로는 기계를 관리하는 근로자가 소프트웨어, 자동화, 사물인터넷(IoT) 등을 총체적으로 알지 못하면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근로자들의 정서적인 부분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이사장은 “사람이 할 일을 로봇이나 AI가 대체하게 되면 근로자들은 육체노동을 덜하게 되는 동시에 대화가 단절될 수 있다”면서 “그러다 보면 자칫 정신건강을 잃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 산업재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근로자 100명당 발생하는 재해자 수를 나타내는 재해율은 공단이 설립된 1987년 2.66%에서 2015년 0.50%까지 떨어졌다”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한 해 9만여명이 작업하다가 재해를 입고 있으며 사망자도 1,900명을 웃돌아 하루 240여명이 부상을 입고 5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산업재해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2015년 산업재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무려 20조원이 넘습니다. 더 큰 문제는 경제적 손실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2009년 17조3,157억원이던 경제적 손실액은 2011년 18조1,270억원, 2013년 18조9,770억원, 2015년 20조3,955억원 등으로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

공단은 2015년 현재 0.53bp인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을 오는 2019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0.3bp로 줄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원청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확대, 유해·위험작업 도급 제한 등 안전보건 책임 명확화 △이동식 크레인 등 안전검사 대상 확대 등 안전보건 대응능력 강화 △법률상 의무 미이행 시 이행강제금 부과 추진 등 안전보건 기반 구축 △안전보건 체험교육장 확충 등 실천 중심의 안전보건 문화 확산 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 이사장은 사망만인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공단 직원들이 월등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장의 사업주와 근로자는 무엇이 위험한지, 그 위험이 어떻게 사고로 이어지는지,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공단 직원은 위험요인을 찾아내 알려주는 것은 물론 대응책도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이사장은 대기업을 향해 평판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선진국 기업들은 안전보건 강화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고 힘을 쏟고 있다”며 “독일 대기업들은 법률 규제보다 이미지 추락을 더 걱정한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기업도 이제는 법을 어겼을 때 내야 할 벌금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안전보건 사고 발생 시 뒤따르게 되는 브랜드 가치 하락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르자 이 이사장은 조심스럽게 인력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냈다. “현재 공단 직원 1명이 담당하고 있는 전국 사업장 수는 1,536개소”라며 “전국 사업장 수는 최근 6년 동안 51.2% 증가하는 등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관리해야 할 기업 수가 급증했지만 공단 인력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공단은 유관기관의 협조와 민간기관과의 양해각서(MOU) 체결 등으로 인력부족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하고 있지만 다소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이 이사장은 공단 본부에 대형사고 대응 전담팀을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내비쳤다. 전남 여수 석유화학단지에 대형사고가 발생할 경우 공단 지사에서 사고수습을 맡는 게 아니라 본부에서 파견된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응팀을 투입하겠다는 의도다. 예전에는 공단에 이 같은 조직이 있었지만 중앙조직 비대화라는 반대 논리에 막혀 사라졌던 터라 전문대응팀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는 게 이 사장의 전언이다. 현재 가스안전공사는 대형사고 대응을 위한 본사 차원의 전담 조직이 있다. /정리=임지훈기자 jhilm@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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