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인터뷰]“인간과 인간이 화합하면서 최선을 다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애착 커”

2016년 초연에 이어 2017년 세종시즌 개막작으로 22일부터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서울시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은 남녀노소 누구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한국형 오페라로 호평을 이끌어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크리스티나 페쫄리(Cristina Pezzoli)의 손길이 닿은 서울시 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은 한국의 어느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풀어 내 보다 정겨운 인상을 준다.

서울시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연출가 크리스티나 페쫄리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크리스티나 페쫄리 연출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굳이 이국적인 분장과 의상을 더해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성악가들이 이태리 분장 및 의상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게 가짜처럼 느껴진 것. 그는 “성악가들이 생긴 그대로 자연스런 분장을 하고 노래했을 때, 더 음악이나 연기가 잘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이탈리아 원작의 오페라는 한국의 고전미가 가득 담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그녀는 작품제작 회의를 위해 국내에 방문했을 때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을 관람하며 연출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당시 박물관에서 서민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 작품들을 보고 16세기 유럽 화가 ‘브뢰겔’의 그림을 떠올렸다고 한다.

두 작가는 당대 서민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옛 시골과 원작의 시골 정경을 혼합해 동서양 고전미가 조화된 작품으로 재탄생시키고자 했다.

이건용 전 서울시오페라단장 역시 크리스티나 연출의 의견에 동의했다. 제작진과 연출진 모두 머리를 맞대고 ‘오페라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고민했던 것. 국제적인 작업에서 충돌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을 잘 조율한 이 역시 넓은 아량으로 단체를 이끈 이건용 단장이었다.

이건용 전 서울시오페라단장(왼쪽)과 서울시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연출가 크리스티나 페쫄리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서경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우리는 항상 이탈리아식으로 분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무대를 많이 봐와서 그런지, 이제는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해요. 예를 들어 이태리 사람이 와서 우리의 마당극 ‘심청전’ 속 심청이와 뺑덕어멈을 연기한다고 상상해 봐요. 우선 외모적으로 어색하잖아요. 크리스티나 눈에 그게 보인 거죠. 그렇게 의논을 한 끝에 ‘이태리 언어만 빼고 바꾸자’라는 말이 나왔고, 결과적으로 무대에서 펼쳐진 이번 오페라가 오히려 내추럴 하게 보인다는 평을 이끌어낸 듯 해요.”

연출가는 “이태리 오페라의 외적인 부분보다는 영혼적인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연출 포인트를 짚었다. 그의 말대로 유쾌하고 발랄한 극의 분위기 속에서 섬세하게 표현되는 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공감도를 이끌냄과 동시에 연출가의 세심한 손길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서울시 합창단의 노력에 박수를 내보였다.

“소프라노 손지혜 박하나 윤성회 장지애, 테너 허영훈 진성원, 베이스 양희준 김철준, 바리톤 한규원 석상근 등 성악가들은 물론이고, 합창단 단원들이 너무 잘 해주셨어요. 그것도 완벽하게 말이다. 예를 들면 1막에서 네모리노가 아디나를 보고 ‘예쁘다’라고 감탄한다. 그럼 합창단들이 ‘쟤 또 시작이야. 그냥 포기해’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 이건 성악가들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해 줄 수 있는 리액션 아닌가. 자신의 합창 파트만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주역들이 주인공을 맡고 있는 상황, 거기에 알맞은 리액션을 보여주더라. 그만큼 충분한 공부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라 뿌듯하더라.”

유독 국내 관객들은 ‘사랑의 묘약’에 환호를 보인다. 성악가들 역시 생애 첫 오페라로 ‘사랑의 묘약’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연출가는 “판타지 드라마를 많이 좋아하는 듯 하고, ‘사랑의 묘약’에 담긴 깊이 있는 희망이 통했기 때문 아닐까?”라며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 놓았다.

이번 ‘사랑의 묘약’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1막 마지막 장면이다. 우비를 걸쳐입은 네모리노가 키를 쓴 채 하늘에서 ‘우두두’ 떨어지는 쌀을 맞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했다.

정작 연출은 “마지막 장면이 마음에 드세요?”라고 되물었다. 이어 곧 “디즈니적인 요소로 해석할 수 있어요. 애니메이션을 보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주인공의 불행한 일을 암시하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 의미로 네모리노가 좋아하는 아디나가 벨코레랑 결혼이 임박하게 되는 상황에서 불행의 극치랄까.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우비 의상은 의상 리서치 하면서 보게 된 건데 흥미롭더라구요. ”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처음 이 장면을 접했을 땐, 하늘에서 떨어지는 ‘쌀’이 아닌 하얀 ‘소금’을 맞는 것처럼 보여 마치 동네 사람들에게 혼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자, 연출은 흥미로운 반응을 내보였다.

“네모리노가 동네 사람들한테 혼나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겠다. 그것도 맞는 생각인 것 같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용 전 서울시오페라단장(왼쪽)과 서울시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연출가 크리스티나 페쫄리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서경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장서문 연출 겸 통역(왼쪽)과 사랑의 묘약’ 연출가 크리스티나 페쫄리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서경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자연스럽고 디테일한 연기가 뒷받침 된 오페라를 선호하는 연출가는 “가수가 내 몸을 더 잘 알고 있다면, 스스로를 컨트롤 하면서 노래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성악가들 특유의 고음 포즈를 그대로 흉내내며 “팔백년대 성악가 포즈로만 일관하는 건 드라마 집중을 깨뜨리게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태리에선 오페라 가수 양성 프로그램에 자기 몸을 알아가는 릴랙스 프로그램이 있어요. 릴랙스 된 몸에서 노래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다르지 않을까요. 몸이 악기인 가수들이라 무용수나 연극 배우만큼 유연하게 할 수는 없다는 어려움은 있겠지만, 몸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는 건 소리는 물론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크리스티나 페쫄리는 이탈리아 연극계에서 저명한 여성 연출가이다. 이탈리아 모데나 시립극장에서 푸치니의 삼부작 ‘일 트리티코’를 성공적으로 연출했다. 2018년 앙코르 공연을 예정 중이다. 또한 이탈리아 피스토이아 연극협회와 피스토리아시의 만쪼니 극장의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인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잔니 스키키’, 루카의 질리오 극장에서는 ‘토스카’, ‘일 트리티코’ 등을 연출해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에게 연극은 편한 ‘집’이라면, 오페라는 가끔 가는 ‘휴가’ 같았다. 그는 ‘휴가’라는 의미가 편하게 놀러간다는 뜻이 아닌, “나의 머리가 바캉스를 떠나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오페라가 연극에 비해 훨씬 종합적이잖아요. 음악의 극적인 부분, 무용적인 부분, 드라마적인 부분 외에도 프로페셔널 한 부분이 많아 어려운 점도 있어요. 그만큼 제 머리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어 연극 작업을 할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들어요.”

한국에서 솔 오페라단 과 ‘일트리티코’를 올린 것에 이어 서울시오페라단과 ‘사랑의 묘약’을 올리며 연달아 좋은 평을 이끌어낸 그이기에 다시 한번 한국 프로덕션과 오페라 작업을 할 확률은 높아 보인다. 그녀 역시 기획가 된다면, 한국에서 오페라 ‘돈 조반니’, ‘카르멘’, ‘마술피리’ 등을 올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카르멘’에 대한 연출적 아이디어가 흥미로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이란 뉴스와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시민들이 시위를 하는 걸 보면서, 한국인들의 숨겨진 열정을 읽었어요. 그 전엔 한국인들은 ‘점잖다’는 인상이 강했거든요. ‘카르멘’ 같은 경우엔 열정이 폭발하는 걸 유감없이 보여주는 오페라인데 이 작품을 한국에서 하는 게 흥미가 있을 것 같아요.”

‘휴머니즘 요소’에 관심이 많은 연출가는 “‘마술피리’는 ‘사랑의 묘약’과 마찬가지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그 상황에 공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한번 한국에서 올려보고 싶은 오페라이다”고 설명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사진=세종문화회관


“이번에 1층 객석 뒷부분에 앉아있었는데 7살 어린이 관객이 자막을 보지 않음에도 공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보이더라. 오페라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느껴지더라. 이것만으로 문화의 벽이 허물어진 것 아닌가. ‘다름’ 안에서 공감대를 형 성 할 수 있는 것. 그런 영역을 찾는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런 점에서 ‘휴머니즘 요소’는 궁극적으로 국적, 언어가 달아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오페라 연출가에게 필요한 것 두 가지로는 ‘아티스트적 관점’ 과 ‘화합의 기술’을 꼽았다.

“연출가에게 필요한 자세를 말하자면, 아티스트적인 면과 화합적인 면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어요. 이 이야기를 아티스트적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거기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겠죠. 다음엔 인간의 에너지를 화합시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룰 수 있어요 해요. 그게 쉽지 않은 작업인 것도 분명해요. 어쨌든 연출가도 하나의 리더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어내야 하는 건 영혼의 일치예요. 힘이나 권력으로 얻어내는 것이 아닌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죠.”

“짧은 인생에 최선을 다하면서 남들에게 좋은 걸 베풀 수 있어야 해요.”라고 활짝 웃는 그에게선 좋은 에너지가 전해졌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게 중요해요.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에요. 과정과 결과 둘 중 하나가 별로였다면,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지 못한다고 봐요. 같은 맥락으로 한 작품에서 아티스트적으로 평이 좋은 작품 보다도, 인간과 인간이 화합하면서 최선을 다해 작업한 작품에 더 애착이 갑니다. 이번 ‘사랑의 묘약’ 역시 잊지 못할 작품이 될 듯 해요.”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