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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영의 독무대]발알못 기자의 생애 첫 발레 감상기

처음 접하는 관객에겐 고전 발레의 정수 보여주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등 클래식 발레 적합

줄거리·마임 등 미리 공부하고 가면 이해 도움

공연장 일찍 도착해 프로그램북 정독하면 좋아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치는 카라보스 역의 이재우




이번 ‘서은영의 독무대’에선 클래식 발레의 정수로 꼽히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관람기를 소개합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차이콥스키 3대 발레 작품으로 발레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즐기기 좋은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국립발레단이 지난 22~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4개월 만에 재연한 이 공연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마르시아 하이데가 안무를 맡았습니다.

오로라공주 역의 김리회 수석무용수


D-2.

발레 공연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전 지식을 좀 쌓아두면 작품을 이해하기 쉽겠죠. 발레는 손으로 말하는 언어, 즉 마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두 손을 모으면 사랑한다는 뜻, 턱선을 따라 동그라미를 그리면 아름답다는 뜻. 청혼할 때는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무용수의 상체를 자세히 보면 감정을 읽을 수 있는데요. ‘지젤’같이 슬픈 작품에선 발레리나가 축 처진 나무처럼 손끝을 떨구는 반면 ‘잠자는 숲 속의 미녀’ 1막 생일 파티 장면에서 오로라 공주는 좀 더 활기찬 몸짓으로 희망을 표현합니다.

작품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 지금의 고전주의 발레의 고향이라 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1890년 초연된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백조의 호수’ 첫 공연 실패로 다시는 발레 작품을 만들지 않았던 차이콥스키가 13년 만에 만든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초연 당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음악이 너무 난해하고 복잡해서 춤을 추기 적합하지 않다는 게 평론가들의 평이었다네요. 이 작품이 재평가를 받은 건 그로부터 30년 뒤, 차이콥스키 사후였습니다.

재공연 이후 이 작품은 ‘고전발레의 금자탑’이라는 찬사를 얻게 됐는데 무용수들에게는 고전 발레의 원칙을 세세하게 지켜야 하는 동작들이 많아 체력적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합니다. 한 작품에 무려 80여 명에 달하는 무용수들이 출연합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공주의 탄생 축하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마녀 카라보스가 공주에게 저주를 내리고, 공주는 16세가 되던 생일에 저주대로 물레 바늘에 찔려 잠이 듭니다. 공주의 잠을 깨울 수 있는 건 진정한 사랑의 키스뿐. 물론 죽음을 맞는 대신 100년간 잠이 들게 저주를 바꾸고 궁전의 모든 사람을 잠들게 한 건 공주를 보호하는 라일락 요정의 힘이었죠. 이미 잠든 공주가 어떻게 사랑하는 이의 키스를 받을 수 있을까요. 라일락 요정은 사냥 나온 데지레 왕자에게 공주의 환상을 보여주고, 사랑에 빠진 왕자는 공주에게 키스하면서 잠들었던 모두가 깨어납니다. 다행히도 100년이 흘렀지만 아무도 늙지 않았습니다.

물레 바늘에 찔려 잠든 공주를 감시하는 카라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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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비교해볼 만한 작품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IPTV에서 발레 작품을 찾다가 무료로 시청할 수 있는 매튜 본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VOD로 봤습니다. 하지만 매튜 본의 작품은 고전을 비튼 것이어서 내용이 아주 같지는 않았습니다. 천재 안무가 매튜 본의 작품에서는 카라보스가 죽고 그의 아들 카라독이 공주에게 검은 장미 가시를 주며 저주를 내립니다. 특히 놀라운 건 오로라 공주를 보호하는 라일락 요정이 뱀파이어라는 것. 이미 궁궐정원사 청년과 사랑에 빠진 오로라 공주가 어떻게 100년이 흐른 후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결국 라일락 요정이 청년의 목덜미를 물어 뱀파이어로 만듭니다. 그 덕에 청년은 100년간 늙지 않고 오로라 공주를 기다릴 수 있게 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라일락 요정은 청년에게 성문을 열 수 있는 키를 건네고 청년은 오로라를 깨우러 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오로라를 깨우는 일은 카라독의 방해 탓에 녹록지 않습니다. 이후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생략합니다. 만약 매튜 본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다면 꼭 클래식 작품을 먼저 보고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 해석이 무척이나 흥미로우니까요.

▲매튜 본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중 로즈 아다지오 듀엣

발레가 익숙지 않은 관객이라면 프로그램북을 꼭 읽어보세요.


D-day.

공연 시작 20분 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도착했습니다. 클래식 발레의 상징 같은 작품이다 보니 어린이 관객이 많습니다.

자 이제 프로그램북으로 사전 정보를 얻어볼까요. 발레 공연의 프로그램북은 가성비 갑입니다. 안무가 소개와 무용수들의 인터뷰는 물론 스토리와 등장인물의 의상 콘셉트, 작품해설까지 빼곡하게 담겨 있습니다. 부록으로 들어있는 등장인물들의 실사가 담긴 스티커도 깨알 같습니다.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커튼이 열리기 전 코리아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을 알립니다. 바로 교향곡으로 치면 서곡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시작은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연회. 평화로웠던 파티가 카라보스의 등장으로 삽시간에 어두워집니다. 이때부터 제 눈에는 카라보스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날의 카라보스는 국립무용단의 수석무용수 이재우 씨.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아니라 ‘화가 난 숲 속의 마녀’라 할만합니다. 196㎝에 달하는 큰 키와 검은 드레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무대를 압도합니다. 마녀인 카라보스 역은 남자 무용수가 여자로 분장해서 맡는 대표적인 배역인데 무대를 보는 순간 그 이유를 이해할만합니다. 카라보스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중성의 마녀라고 하네요. 이재우 씨는 5시간 후 오로라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왕자 역을 맡습니다. 저렇게 강렬한 카라보스 역을 소화하고 왕자 역은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해집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무대예술도 돋보입니다. 검은 장막을 카라보스의 망토처럼 활용하면서 동시에 오로라공주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무대 속 무대로 활용합니다. 이 장면에서도 이재우의 연기력이 돋보입니다. 기승 전 이재우 군요.

카라보스의 저주로 잠들었던 공주가 사랑하는 왕자의 키스로 깨어나고 다시 잔치가 열립니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보이지 않네요. 자 지금부터는 줄거리와 상관없이 다채로운 춤을 보여주는 일명 ‘디베르티스망’이 이어집니다. 고전주의 발레 작품에는 디베르티스망이 꼭 들어가는데 아무나 디베르티스망 파트에서 춤을 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독무를 출 수 있는 솔리스트들만 춤을 출 수 있는데 주역을 맡는 수석무용수 바로 아래 무용수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빨간 망토 소녀와 늑대, 알라딘, 라푼젤, 개구리왕자,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등 익히 잘 알려진 동화의 주인공들입니다. 특히 무대 한 편에서 쉴새 없이 연기하고 있는 개구리왕자의 마임이 돋보입니다.

이어 그랑 파드되가 이어집니다. 그랑 파드되는 남녀 주역이 함께 추는 2인무로 고난도의 기술을 계속 이어가기 때문에 발레단의 실력을 가늠하는 파트라고 합니다. 이 파트 역시 고전주의 발레의 특징인데 아름다운 두 주역에게 관객석에서 ‘브라보’ ‘브라바’를 외칩니다. 저도 한번 외쳐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박수로 갈음합니다. 여기서 잠깐. 절대 발레공연에서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무용수들이 박자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돈키호테’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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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중력을 거부하는 춤의 세계에 입문했는데 여기서 멈춰서야 되겠습니까. 발레 초심자가 볼만한 공연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스토리를 잘 알고 있는 공연을 택하는 게 유리합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외에도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동물의 사육제’ 같은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가장 먼저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유니버설발레단의 ‘돈키호테’(다음달 5~9일, 국립극장 해오름)입니다. 스페인의 정열을 느낄 수 있는 경쾌한 작품으로 발레를 처음 접하는 관객도 즐길만한 작품입니다. 이 밖에도 국립발레단은 상반기에는 ‘허난설헌-수월경화’ ‘스파르타쿠스’ 등의 대표작을 선보이고 11월에는 ‘안나 카레니나’를 국내 초연합니다. 보통 발레 공연은 길어야 2~3일 정도이고 원하는 댄서가 주역인 날 보려면 티켓 오픈일에 서둘러 예매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랜 발레 팬들은 다양한 주역의 무대를 보고 싶어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작품명 발레단
4월 돈키호테 유니버설
5월 허난설헌-수월경화 국립
6월 스파르타쿠스 국립
8월 백조의 호수 유니버설
11월 안나 카레니나 국립
오네길 유니버설
12월 호두까기인형 국립, 유니버설


자 이제 즐겁게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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