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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연극 '맨 끝줄 소년'] 관찰을 넘어선 개입…그 은밀한 욕망의 섬뜩함

연극 ‘맨 끝줄 소년’에서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왼쪽부터) 후아나 역의 우미화, 헤르만 역의 박윤희가 열연하고 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공연예술인이 누리는 특권 중 하나는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 한 무대 위에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예술의전당의 기획프로그램 SAC CUBE 행사의 첫 무대를 장식할 연극 ‘맨 끝줄 소년’은 애초부터 2015년 초연 연출자인 고 김동현 연출을 기리는 무대로 기획됐다. 리메이크 연출이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타이틀이 만들어졌고 그 역할을 김 연출의 아내이자 초연 당시 드라마트루그(구성 연출)를 맡았던 손원정 감독이 맡았다. 초연 배우들이 대부분 참여했고 교체된 한 명의 배우 우미화마저도 김 연출과 막역해 그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다. 첫 대본 리딩부터 스태프와 배우들은 ‘만약 김 연출이 살아 있었다면 어떤 부분을 다듬고 보강했을까’를 논했다. 손원정 연출은 “2015년 공연이 우리에게 출발점이었다”며 “더 달라질 필요도 없었지만 2015년에 얽매이는 것은 김동현 연출에 대한 예의가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이렇게 다듬고 매만진 손원정의 ‘맨 끝줄 소년’은 고요하면서도 강렬하다. 짙은 어둠과 고요가 깔린 무대를 두 명의 코러스가 입과 손 등을 악기 삼아 슬며시 받친다. 극 중 극의 형식을 위해 무대를 유리문으로 감싸 현실과 상상의 공간이 유기적으로 맞닿게 한 점도 탁월했다.

연극 ‘맨 끝줄 소년’에서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 배우가 열연하고 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손 연출의 표현에 따르면 이 연극은 “맨 끝줄에서 자기 존재는 보여주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소년이 우리에게 선물해주는 세계이자 그 소년이 점점 앞줄로 옮겨오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고등학교의 문학교사인 헤르만(배우 박윤희)이 ‘최근 일어난 일’을 주제로 내준 작문숙제를 채점하면서 시작된다. 실망스러운 글들이 이어지던 중 헤르만은 언제나 맨 끝줄에 앉아 있는 소년 클라우디오(배우 전박찬)의 작문 과제물에서 놀라운 흡인력을 느낀다. 같은 반 친구인 라피 가족을 관찰하며 은밀한 욕망을 짙게 깐 글에 헤르만은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그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이후 클라우디오의 글과 현실이 교차한다.



문학적 글쓰기는 해체를 출발점으로 한다. 해체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게 하는 행위다. 완벽한 중산층으로 보였던 라피 가족이 문학적 소재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은 클라우디오의 해체 작업을 통해서다. 문제는 이 문학의 소재가 실재한 인물이고 클라우디오가 직접 극중 인물로 이야기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 결국 클라우디오의 해체는 글쓰기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가족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헤르만은 이 거침없는 소년의 공범이 돼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이 소년의 눈이 헤르만의 가정으로 향했을 때서야 그는 깨닫는다. 관찰을 넘어선 개입, 상상을 넘어선 경험의 파괴력을.

배우 전박찬의 클라우디오는 섬뜩할 정도로 차분하다.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클라우디오가 무너졌을 때 관객들이 연민을 느낄 수 있도록 오히려 감정의 과잉을 뺐다”며 “초연 당시에는 클라우디오의 관찰 행위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쓰는 행위에 집중하며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의 원작자인 후안 마요르가는 스페인 현대연극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로 김동현 연출을 통해 총 네 차례 국내에 소개됐다. 마요르가는 ‘맨 끝줄 소년’으로 스페인의 토니상으로 불리는 막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는 특히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의 관점에서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맨 끝줄 좌석을 마련했다. 1층 지정석은 5만원이지만 맨 끝줄 좌석은 1만원이다.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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