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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빨X남녀] '야생야사' 기자의 초보 야구 걸음마





“봄바람 휘날리며 / 흩날리는 벚꽃 잎이 / 울려 퍼질 이 거리를 / 둘이 걸어요”

Q. 마성의 노래, ‘벚꽃엔딩’이 거리에 울려 퍼질 때면 생각나는 것은?

1. 여자친구와 여의도 벚꽃놀이

2. 시종일관 나른해 자동으로 눈이 감기는 춘곤증

3. 냉이와 달래 등 향긋한 봄나물

4. 기다리고 기다렸던 프로야구 경기



생뚱맞게 등장한 이 퀴즈는 야구에 대한 중독 증세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간단한 설문이다. 만약 다른 문항보다 4번에 눈길이 더 간다면 상당한 ‘야구 중독’ 수준!

이런 중증 야구 중독 환자들은 사회인 야구 리그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고 싶어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생각보다 크다. 마운드에 오르면 ‘끝판대장’ 오승환, 타석에 서면 ‘추추트레인’ 추신수와 같이 멋진 모습을 상상하지만 꾸물꾸물 날아가는 ‘아리랑 볼’과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타구 앞에 좌절한다.

좀 더 전문적인 스킬을 익히고 싶어 하는 직장인은 퇴근 후 전문 코치와 선수 출신 지도자가 일대일로 기술을 가르쳐 주는 스킬 트레이닝을 받는다. 하루 종일 고된 노동으로 힘이 들지만 마운드 위에서 ‘강속구’를 날릴 그날을 생각하면 피곤함은 어느새 공에 대한 집중력으로 변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야구 스킬 트레이닝은 사회인 야구 4부리그에 속했지만 번번이 부족한 실력으로 눈물지었던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곧바로 주위 수소문을 통해 지하철 3호선 약수역 근처 ‘LGB 야구 아카데미’를 찾아냈다.

트레이닝 장소는 입구부터 온통 초록색으로 도배된 흡사 텔레토비 동산. 초록색 그물, 잔디를 형상화한 초록색 바닥, 나 좀 맞춰 달라며 손짓하는 초록색 타깃까지. 초록색의 향연 저 멀리 쇼핑 카드 한가득 들어있는 수십개의 공이 눈에 보인다. 빨간 실밥과 새하얀 몸체가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그득그득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훗, 저것들만 다 날려버리면 끝나는 거군’

그리고 등장한 오늘의 지옥 교관. 프로야구 선수 출신에 선량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우리는 피리에 이끌려 강으로 들어가는 생쥐들 마냥 천천히, 한 걸음씩 트레이닝 장소로 들어갔다.



#STEP_1 야구의_진정한_재미는_역시_배팅!

초급 단계의 시작.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야구 배팅의 세계로 들어간다. 여성 야구인들도 많이 찾는 탓에 무거운 알루미늄 배트가 성인용, 유아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잠시 객기를 부려 성인용을 잡던 여, 이윽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유아용으로 다시 집어든다. 그리고 T배팅에 나섰다. T배팅은 사람 가슴 높이까지 오는 지지대 위에 공을 올리고 궤적을 보며 배팅을 하는 훈련 방법이다. 가만히 멈춰있는 공을 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냐고? 노노~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야구의 생명은 정확한 스텝과 임팩트, 상체의 각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허리의 힘을 얼마만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디딤발을 잘 딛고, 위로 올려치는 어퍼 스윙에 맞춰 허리를 돌려 스윙을 한 바퀴 돌리고 나면 어이가 없게도 지지대 위에 고스란히 앉아 나를 비웃고 있는 공을 발견하게 된다.

친절한 최인영 코치, 몸소 배팅 매커니즘에 관해 보여주러 나섰다./사진=이종호기자


‘으이구, 열 받아!’

T배팅이 몸에 익을 때가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옆에서 트레이닝 코치가 살짝 토스해주는 공을 타이밍에 맞춰 배팅을 가하면 신기하게도 T배팅 때와는 다른 감촉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더 발전 속도가 눈에 보인다면 그물망 저편에서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던져주는 공을 치는 훈련에 돌입할 수 있다. T배팅이나 토스를 통해 치는 배팅과는 다른 맛을 느껴볼 수 있다. 코치의 구령에 맞춰 10~15개 정도 배팅을 하고 나면 손끝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공과 배트가 만나 튕겨지는 파열음이 고막을 연신 때리는 통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댕~ 댕~(장갑 좀 끼워주시지)

#STEP_2 야구는_수비하는_맛도_일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무대에서 봤던 메이저리그 유격수들의 글러브 캐치… 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내 앞으로 오는 공을 멋지게 잡아 1루로 던지는 짜릿한 광경을 몸소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돌입한 수비 레슨.

수비의 정석은 낮은 자세와 스텝. 허벅지가 당길 만큼 몸의 중심을 낮춘 기마자세를 하고 공이 오는 방향으로 글러브 캐치를 시도하면 되는 것.

1단계는 정지된 상황에서 맨손으로 공을 한 번 땅에 튕긴 후, 잡아 곧바로 송구를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1단계가 익숙해지면 곧바로 2단계로 돌입. 2단계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지옥의 펑고’다. 정면, 오른쪽, 왼쪽으로 일정하지 않게 오는 공을 잡아 1루로 가정한 곳으로 송구까지 하는 훈련인데 쉴 새 없이 굴러오는 공을 잡아 던지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한겨울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극히 보기 드문 광경을 만나볼 수 있다.

“글러브 쪽으로 오는 공은 어떻게든 잡겠는데 반대 방향으로 오는 건 어떻게 잡아야 해?”



“너 테니스 해봤지?”

“응, 해보기야 해봤지”

“네가 오른손으로 라켓 잡았을 때, 왼쪽으로 오는 공은 어떻게 쳐냈어?”

“그거야 당연히...백..핸드.., 아!! 공도 백핸드로 잡으라고?”

“응, 그렇게 잡아봐. 훨씬 편할거야”

연신 박수를 치며 백핸드를 되뇌었던 내 회사 동료를 위해 친절한 우리 코치, 백핸드 쪽으로만 연신 공을 보내준다. 결과는…, 처참했다. 마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과처럼 일방적인 수치를 보이며. ‘0:8’

#STEP_3 야구의_시작은_투수의_손_끝에서

야구에서 누군가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경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바로 투수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듯 가장 중요한 야구 훈련도 투구 레슨이다.

투구 레슨은 기본적인 자세를 잡는 것부터 시작한다. 좀 더 멀리, 좀 더 강하게 공을 던지려면 팔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코치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하체를 제대로 써야 부상도 없단다.

기본적으로 런지 자세에서 출발해 허리의 강한 회전을 통해 공을 던지는 연습을 반복했다. 공의 그립도 중요하다. 직구 그립을 잡고 공을 던지면 직선으로 날아간다는 순진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일반인들이 많다. 검지와 중지로 공의 실밥을 잡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공을 받친 후 직선으로 뿌리면 된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지보다 중지가 더 길기 때문에 그렇게 던지면 공이 직선으로 날아가지 않고 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친절한 코치는 의식적으로 공을 앞으로 던지면서 검지 쪽에 힘을 더 실어 약간 휘게 던져야 진정한 직구를 던질 수 있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온몸의 웨이브를 통해 공을 던지라는 최코치의 ‘협박’에 마지못해 공을 던지고 있는 정수현기자./사진=이종호기자


다음으로 한 훈련은 ‘웨이브’를 이용한 투구였다. 발끝부터 어깨, 팔까지 한 흐름으로 연결시킨 후 그 리듬 그대로 공을 앞으로 던지는 단계로 이뤄졌다. 일반인들은 보통 팔로만 공을 던지려 하기 때문에 팔에 과도한 힘이 들어가 어깨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흐름으로 온몸을 사용해 공을 던져야 더 강하게 공을 던질 수 있고 부상도 막을 수 있다.

프로야구 투수 출신인 코치는 웨이브보다 더 민망한 훈련 방법도 강요(?)했다.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린 후 마치 ‘개다리춤’을 추듯 몸의 중심을 앞뒤로 번갈아가며 이동시키다가 그 반동 그대로 앞으로 투구를 하라는 것이었다. 적나라한 소리로 표현한 훈련은 ‘헛차 헛차 헛차 빡’. 코치가 회심의 미소를 보일 때까지 ‘개다리춤’ 훈련은 계속됐다.

투구 레슨의 끝은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 투구판을 밟은 상태에서 공의 진행방향으로 다리를 뻗고, 런지 자세에서 허리의 반동으로 공을 앞으로 던졌다. 처음 던진 공, 코치는 썩 만족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가 내 앞에서 단 한 번의 미소를 띠길 바라며 계속 공을 앞으로 던졌다. 결국 그의 입에서 터진 한 마디.

“나이스. 좋습니다”

“휴 살았다 ㅠ-ㅠ”

#STEP_4 여러분_야구는_과학입니다

친절한 우리 코치. 굳이 훈련을 잠시 쉬는 도중 야구 교본과 휴대폰을 준비해 올바른 자세와 방법을 소개해준다. 물 한 잔 마시며 ‘이제 그만하라’ 아우성치는 온몸의 근육들을 위로하려 했건만 도통 쉬게 내버려 두질 않는다.

‘아유, 친절하셔라. 이러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교본을 보며 코치가 강조하는 핵심은 ‘스윙을 어떤 궤적으로 해야 질 높은 타구를 쳐낼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야알못’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가 위에서 아래로 ‘깎는’ 스윙을 하는 것인데, 이럴 경우 공이 배트와 부딪칠 때 회전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진행하게 돼 타구의 속도가 빠르지 않게 된다는 것. 코치는 부디 실전에 임할 때 직선으로 치는 레벨스윙이나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어퍼스윙을 하라고 강조했다. 그리곤 재빨리 한화 이글스의 이용규 선수가 등장하는 영상 하나를 재생시킨다. 이용규 선수의 스윙이 초고속 카메라로 찍혀 분석된 영상이었는데, 거포가 아닌 콘택트 유형의 타자로 알려진 이용규 선수의 스윙도 아래에서 위로 ‘퍼 올리는’ 어퍼스윙이었다. 단순히 말이 아닌 영상으로 스윙 궤적을 접하니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져 이해가 더 쉬웠다.

#STEP_5 야구인이_되는_길은_고통스럽구나 “악! 내 허리”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속성 야구 스킬 트레이닝. 훈련 끝에 남은 것은 소위 ‘야덕(야구 덕후)’라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야구에 무지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욱신거리는 허리뿐이었다. 훈련 내내 야구는 허리와 하체만 잘 쓸 줄 알면 정말 쉬운 운동이라고 강조하던 코치를 다시 한 번 리스펙트하는 순간이었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으면서도 웃을 수는 있었다. 머지않아 개막하는 사회인 야구리그에서 맹활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으니.

“공부에는 족집게 과외가 필요하듯, 운동도 족집게 스킬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이구나!”

/이종호기자·정수현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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