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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행정고시 폐지

김태룡 상지대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행정학회장

계층 이동 길 사라져...당분간 존치를

행정고등고시 폐지 논쟁이 대선을 앞두고 다시 불붙고 있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중심이 된 더미래연구소가 대선 핵심 어젠다로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7급 공채시험으로 공무원 채용을 일원화한다는 내용의 개혁안을 제안한 후 해묵은 존폐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전국고시생모임은 연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 모여 문재인 대선후보에게 행정고시 폐지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폐지 찬성 측은 수직적이고 경직된 관료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현 행정고시제로는 지식정보사회에 합당한 정책을 수립·결정하는 공무원을 양성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행정고시가 가진 시험제도의 공정성이라는 장점을 완벽하게 넘어설 대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개방형 직위제를 적절히 조화시키며 행정고시를 당분간 유지하자는 신중론이 맞서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행정고등고시(5급 공개경쟁채용시험)가 사법고등고시에 이어 존폐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 제도를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해 최근에는 정치권도 존폐 논쟁에 한몫 거들고 있다. 존치론에 실리는 근거의 핵심은 이 제도가 그나마 가장 공정하고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제도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폐지론은 주로 전문성 부족과 고시 출신 간의 패거리 집단화에 따른 역기능을 들고 있다. 행정고시를 둘러싼 존치론과 폐지론 입장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역설적으로 양 입장 모두 서로의 논리를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행정고시의 존폐를 둘러싼 결론은 명쾌할 수밖에 없다. 아직 이 시험제도가 지닌 장점을 완벽하게 넘어설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급하게 폐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행정고시를 포함한 폐쇄형 인사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김대중 정부 때인 지난 1999년 개방형 직위제도가 도입된 이래 공직에 입문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다원화됐다. 20년 동안 개방형 직위제도는 현재 고위직뿐 아니라 7급까지 확대돼 거의 모든 직위에 적용되고 있다. 그간 개방형 인사제도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이유나 상황에 대해 여러 차원에서 문제점들이 지적돼왔다. 그런데 드러난 문제는 개방형 인사제도로 입직한 공무원들이 왜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논의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인사행정, 특히 채용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공적 가치를 지닌 훌륭한 인재들이 얼마나 입직했으며 이들의 업무성과나 기여도, 그리고 적응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등에 대한 평가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 당시 행정고시 폐지 파동에 따른 여파로 개방형 직위제도의 하나인 5급 경력경쟁채용제도를 도입해 2011년부터 매년 100여명에 가까운 공무원을 채용해왔다. 그렇지만 제도 도입 후 여러 해가 지나도록 개방형 제도로 채용된 5급 인재들이 기존에 행정고시로 입직한 공무원들이나 내부승진 공무원들에 비해 어느 정도의 공적 가치를 지니고 능력 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평가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행정고시가 지닌 부작용과 역기능만을 강조하면서 개방형 인사제도가 만능 열쇠인 것처럼 회자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무릇 정부의 정책 결정은 범위나 영향력 면에서 국민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가 대단히 크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공적 가치로 무장된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지만 개방형 직위제도가 초래한 결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 없이 단지 장점만을 강조해 현 행정고시를 섣부르게 대체하려는 시도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그나마 행정고시가 지닌 가장 큰 순기능이었던 시험제도의 공정성마저 불신을 살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임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현실에서 그나마 정부의 시험제도만은 가장 공정하다고 믿는 것이 그것이다. 사법고시에 이어 행정부에서조차 소위 스펙이나 정서적·실증적으로 검증하기가 쉽지 않은 경력만으로 인재를 선발했을 때 초래될 인사의 공정성 시비는 자칫 한국 정부의 근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행정고시가 지닌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 마련과 개방형 직위제도와의 바람직한 조화를 차분히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지 행정고시를 폐지해야 할 시기는 아니다. 공적 가치와 전문성으로 무장된 공무원을 공정하게 선발하고 조화를 이루도록 인사전담기구인 인사혁신처에 채용제도를 포함한 인사 전반을 장기적 관점에서 준비할 수 있는 기구가 시급히 마련돼야 하는 까닭이 그것이다. 현재 단순히 시험 관리만 하는 국가고시센터를 확대 개편해 최소한 채용과 관련된 장기적인 인사정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가칭 ‘국가시험평가원(원장은 1급 수준의 장으로 임명)’ 수준의 기구로 확대 개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편 행정고시로 선발된 공무원에게 현재와 같이 5급 직위를 계속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예컨대 6급 상당으로 임명하고 승진과정에서 다소 특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직급을 하향 조정할 필요성은 있다. 이와 함께 7급 시험 등으로 입직한 우수한 인재의 형평적인 활용과 사기 진작 측면에서 내부승진 기간을 단축해 이들에게도 중견 정책관리자로 국가 봉사의 기회를 갖도록 승진제도를 과감히 바꿀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행정고시의 존폐 문제는 사법고등고시와 차원이 다를 뿐 아니라 정책 결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교의 준거가 다르다. 공무원을 선발하는 채용제도는 단순히 여론이나 정치적 논의로 결정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인사전담기구의 채용제도에 대한 냉정한 평가 후 백년대계를 위해 신중하고도 장기적인 시각에서 결정될 문제인 것이다. 공무원 채용제도가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기능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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